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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Dec 22. 2021

불안의 생존 방식

불안의 가중

112 신고를 마친 여자는 초조하게 경찰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고하기로 마음먹기까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만큼 주변 정황과 증상이 확실했다. 전화를 끊은 지 3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여자는 초조함을 더 견딜 수 없어 다시 112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출동 중이라는 경찰이 전화를 걸어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신고하신 분이 맞나요?”     


잠시 후 초등학교 앞 골목길로 순찰차가 들어오더니 경찰이 내렸다. 여자의 눈에 태평하게 다가오는 경찰의 모습이 별로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으므로 여자는 턱으로 자기 집 처마 아래에 설치한 CCTV를 가리켰다.      


“누군가 CCTV를 만져 각도를 틀어놓았어요.”     


여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찰은 느긋하게 여자가 가리키는 CCTV를 살펴봤다. 카메라의 앵글이 하늘을 향하고 있어 처음 설치했을 때의 각도는 아닌 것이 확실했으므로 여자는 경찰이 자기 말을 금방 이해하리라 기대했다. 여자의 집은 초등학교 정문 앞 문방구 집이었는데 간판과 유리문의 색이 바랜 것으로 보아 운영하지 않은 지 꽤 오래돼 보였다. CCTV는 문방구의 유리문과 벽에 하나씩 두 개, 그리고 유리문과 각을 이루는 다른 골목길을 면해 있는 대문으로 들어가는 안채 마당의 현관 앞에 설치돼 총 3개의 카메라가 있었다. 그러니까 여자의 말은 자신이 3일 전 설치한 CCTV 카메라 각도를 누군가 하늘을 바라보도록 각도를 임의로 조정했다는 것이었다.     


“현관은 대문을 통해 들어와야 하고 카메라는 사람 키가 닿지도 않네요?”     


세 곳의 CCTV를 천천히 살펴보던 경찰은 여자에게 엉뚱한 걸 물었다. 여자는 그래서 더 불안한 거 아니겠냐고 대답했는데 왠지 경찰의 질문이 자기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다소 신경질적으로 들릴 수 있는 여자의 대답에 경찰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누군가 그 CCTV를 만진 거 같아 더 불안해졌다는 말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 같았다. 여자는 오늘 아침 자신의 휴대폰으로 CCTV를 볼 때만 해도 카메라가 모두 정상이었는데 오후 들어 누군가 카메라 각도를 돌려놓은 것이라고 다시 답답한 경찰에게 처음부터 설명해야 했다. CCTV는 휴대폰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모델인데 요즘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심지어 그 모델은 원격으로 카메라를 조정할 수 있어 적은 수의 카메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사각지대가 없다는 식으로 홍보하는 것이었다.     


“문방구 영업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된 거 같은데 굳이 CCTV를 설치한 이유가 있나요?”     


올해 육십의 여자는 오랫동안 문방구를 운영했었다. 백 원, 이백 원짜리 지우개며 연필을 팔아 근근이 살림을 유지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학교에 아이들 숫자가 줄기 시작했다. 인근에 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그곳에 새로운 학교가 두어 곳 생기더니 한때 전교생이 2천 명이 넘던 학교가 한 학년에 한 개 반을 겨우 운영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엄마가 마트나 인터넷에서 주문해준 학용품을 사용할 뿐 더 이상 학교 앞 문방구를 이용하지 않았다. 쇠락해 가는 동네의 문방구 점포는 다른 용도로도 쓰임새가 없어 임대가 나갈 리 없었고 여자가 인근 시장에서 옷 수선 가게를 시작한 것이 3년 전이었다. 


처음에는 수선집이 잘 된다고 생각했다. 문방구에 비해 여자의 적성에도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장 상가는 주변 여자들의 출입이 잦았고 사실상 여학교 생활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하나둘 성격이 맞지 않는 여자들과 서너 번 서먹서먹 해지는 관계가 생겼다. 어느 날부터인가 여자는 작업실에 앉아 재봉틀을 돌리는 것보다 주변 상인들과 지내는 일이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이 다른 가게에 모여 있는 걸 보면 자기들끼리 여자의 흉을 보며 수군대는 걸 알 수 있었다. 수군대는 말을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여자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인데 그들의 표정과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었다.     


“시장 사람들이 집까지 찾아올까 봐 CCTV를 설치했단 말이에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 경찰은 여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CCTV를 설치하고 불과 3일 만에 누군가 손을 댄 건 분명했다. 카메라 각도가 하늘을 보도록 돌아가 있다는 건 경찰도 직접 눈으로 보고 인정한 것이었다. 누군가 카메라를 피하려고 앵글을 돌려놓은 게 틀림없었다. 그때 여자의 문방구 건너편에서 초등학교 정문 안을 자꾸 들여다보며 서 있는 젊은 여자가 있었는데 여자는 경찰과 얘기하면서 자꾸 그 젊은 여자에게 눈길을 주었다. 경찰도 눈치채고 여자와 건너편 젊은 여자를 번갈아 가며 의아하게 쳐다봤다.      


“저 여자도 의심스러워요”     


젊은 여자는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척했지만, 아까부터 이쪽을 흘끔흘끔 쳐다보고 있었다. 행동이 굼뜬 경찰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자가 시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사람들도 여자의 가게를 슬슬 피하기 시작한 건 벌써 꽤 됐다. 그때부터 시장 사람들은 유리문 너머로 재봉틀에 앉아 있는 여자를 한 번씩 쳐다보고 지나가곤 했다. 그때마다 여자는 사람들이 자기를 감시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관광객들의 전통시장 방문이 늘면서 대부분 상가가 먹는장사로 업종을 변경하고 있었는데 여자의 점포 주변까지 그 영향이 미쳤다. 자연스럽게 상인들끼리 영역 싸움을 하는 것처럼 다투는 일도 자주 있었다. 여자는 옷 수선 가게를 고집하는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상인회장은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은근히 여자에게 업종을 바꿔보든지 아니면 가게를 내놓는 건 어떻겠냐며 말한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여자를 평생 문방구만 하던 순진한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여자는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날이 하루, 이틀 늘어날수록 여자는 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오늘 아침까지는 카메라가 정상 각도였다는 거지요?”     


경찰은 여자에게 마지막으로 CCTV가 정상인 것을 확인한 것이 언제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 시점 전에 하나의 카메라에서 다른 카메라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자고 했다. 그러니까 1번 카메라는 유리문 앞쪽을 향하고 있고 2번 카메라는 그 유리문의 측면을 향하고 있는데 1번 카메라가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한 시점부터 2번 카메라의 녹화영상을 역으로 재생시켜 누군가 1번 카메라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자는 것이었다. 여자는 경찰이 아직도 자기 말을 믿지 못하는 거 같아 답답했다. 카메라가 저 혼자 돌아갈 리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누군가 손으로 만진 것이 분명한데 경찰은 자꾸 답답한 소리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찰의 말을 반박할 순 없었다. 한참을 2번 카메라의 역재생을 보던 경찰이 뭔가 잡아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카메라를 만진 사람은 없어요”     


경찰은 또 여자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했다. 아무도 1번 카메라로 접근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도대체 카메라의 각도가 저 혼자 바뀌었단 말인가? 여자는 답답했다. 경찰은 여자가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면서 카메라 각도가 바뀌었을 거라고 다시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하지만 여자는 설치 기사에게 설치를 의뢰했을 뿐 카메라를 조작하는 방법은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설치를 끝낸 기사가 여자의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 불안할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촬영이 잘되고 있는지만 확인했을 뿐인데, 자기가 조작을 했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여기 화면을 보면서 제 말을 잘 들어보세요.”     


경찰은 여자의 휴대폰에서 CCTV 모니터링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카메라가 비추는 영상화면 아래에 둥근 모양의 버튼이 있고 그 버튼에는 동서남북 방향의 화살표 네 개가 있었다. 경찰의 말은 그 화살표를 누를 때마다 카메라의 각도가 움직인다고 했다. 실제 경찰이 화살표를 누르자 1번 카메라가 전 혼자 윙윙대며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런 기능이 있다는 건 여자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기억을 못 하시지만 아마 카메라를 확인하면서 이 버튼을 만지신 것 같아요.”   

  

여자는 억울했다. 자기는 그런 기능이 있는지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조작한 기억이 전혀 없는데 경찰은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 거 같았다. 그러면서 이 일에 대하여 누군가와 의논해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시장에서 주변 상인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여자의 남편 외에는 아무와도 얘기해 본 적이 없었고 남편은 그냥 이겨내야 한다고만 말했을 뿐이다. 원래 여자는 자기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잘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말에 경찰은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그럼 자기가 비정상이란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여자는 불쾌했다.      


“됐어요.”     


여자는 더 이상 경찰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경찰답게 CCTV만 잘 보면 됐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경찰이라고 생각했다. 경찰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다. 그때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수업을 마치고 달려 나오는 아이가 환하게 웃는 엄마를 만나는 모습이 보였다. 초등학교 2~3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가 자기 엄마를 보고 반갑게 달려와 안겼던 것이다. 그 모자는 반나절 만에 만났는데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안부를 주고받으며 여자의 문방구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여자의 집을 흘끔흘끔 바라보던 그 젊은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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