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이기를 거부한 여자

인형의 집 - 헨리크 입센

by 자애

1879년. 내가 떠올리기도 어려운 그 시대를 살아냈던 그때의 여자들은 목마름을 느끼고 있었다.

자립에 대한 목마름.

자유에 향한 목마름.

진정한 사랑에 대한 목마름.


그 시대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의 모습인 헬메르에게 노라는 완벽한 아내이다. 완벽하게 젊고 아름다우며 남편을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훌륭한 장난감이며 장신구이다.

헬메르가 노라를 어린아이 같은 낭비꾼으로 보는 데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증명하는 것처럼 보여준다.

하지만 노라에게는 이와 다른, 여러 해 동안 감추어온 비밀이 있음을 노라와 린데 부인과의 대화를 통해 들려준다. 노라는 여러 해 전 헬메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하여 크로그스타드라는 변호사에게 돈을 빌렸고, 그 돈을 갚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돈을 절약하고 모아 왔다.

남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이를 비밀로 하려던 노라에게 실제적인 위기가 닥치는 것은 실직의 위기에 처한 크로그스타드가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라를 협박하면서부터이다. 그는 노라가 돈을 꾸었을 뿐 아니라 서명을 위조했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며, 남편이 자신을 해고하지 않도록 설득하기를 노라에게 요구한다.


자신의 힘으로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없는 노라는 남편에게 희망을 걸며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이 상황에서 놀라운 일을 기대하는 것은 노라가 아직까지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존재임을 드러내 보이는데, 그것은 남편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그제야 노라는 자신과 남편의 관계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음을 깨닫게 된다. 즉, 사건의 결말이 드러났을 때 헬메르는 노라의 편을 들고 그녀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아이들에게서도 떼어 놓으려고 한다. 그러나 노라가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헬메르는 말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건을 축소해야 해. 우리 부부사이는 전과 똑같은 것처럼 보여야 해. 물론 세상의 눈에만 그렇다는 거지. 당신은 계속 이 집에 있어야 해. 오늘부터 행복은 없어. 나머지를, 나무 밑동과 껍질을 건지는 것만 남았어.”


그는 노라를 아내로, 아이들의 어머니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상황을 은폐하고 표면상으로만 온전한 가정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런 ‘거짓 행복’은 그 당시의 사회가 개인에게서 요구하는 겉모습이며, 개인의 명예와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는 표면상으로 그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헬메르의, 그 시대의 남자들의, 지금의 시대에도 있는 몇몇의, 그리고 어쩌면 나의 아버지의, 나의 남편이었던 자의 실제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이혼을 거부했던 주장에 대해서도, 쇼윈도 부부로도 괜찮다고 이야기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남편의 반응을 접하고 기대가 깨진 노라는 이 실망을 통해 자신의 결혼이 어떤 것이었는지 깨닫는다. 자신이 남편에게 장신구였으며 장난감이었을 뿐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 노라는, 외적인 문제가 제거되었다고 해도 이 상황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음을 인식한다. 그녀는 아버지와 남편이 지금까지 자신에게 부당한 일을 했다는 것을 파악한다. 법률과 사회와 종교에 의해 자신의 ‘책임’과 ‘거룩한 의무’로 부여되었던 아내로서의 역할은 인간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책임’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것임을 깨닫고 먼저 인간으로서 자신에 대한 책임을 찾기 위해 그 역할을 내려놓는다. 그것들과 결별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기로 한다.


이 작품은 노라가 집을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나며 이후 사건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는 보여 주지 않는다. 독립에 성공을 했건 안 했건, 인형처럼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살기를 거부하고 집을 떠나는 노라는 독립적인 여성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부터 주체로서의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작품으로 수용되었다.


헬메르는 종교나 법률이나 통념에 호소하여 노라를 붙들려하지만 노라는 어릴 때 들은 목사의 가르침, 법률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행동, 이런 것들이 옳은지를 이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한다 ‘고 말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고뇌의 시간에서만이 얻을 수 있는 가르침은 어느 누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닌, 스스로 찾아내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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