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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규 Aug 05. 2022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

스카이캐슬 밖의 이야기 

 수능을 망치고 다음날 등교는 너무나도 괴로웠다. 친구들은 어떻게 봤으려나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 점수가 모두 공개되고 망신을 당할 것 같은 생각에 두려웠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교무실은 발칵 뒤집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점수가 나오자 선생님들도 당황하시는 눈치였다. 힘들게 공부한 시간들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느낌. 나는 교실 내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시로는 지원할 수 있는 의대가 없었다. 원서를 내는 것을 포기했다. 남은 수시 6개 중, 합격했던 대학은 수능 최저등급으로 인하여 탈락이었다. 유일하게 희망을 걸 수 있는 대학이 남아있었다. 건양대학교 의과대학이 언수외 중 2과목만 택해서 원서를 넣을 수 있게 정책이 바뀐 것이다. 나는 기쁘기보다 비장해졌다. 나와 같은 처치가 된 많은 수험생들이 이 사실을 놓칠리가 없었고, 또 지원율이 올라가고 합격 확률이 떨어질 것이 뻔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원서를 확인하고 면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은 너무 간절했다. 이번에도 역시 꿈을 더 생생하게 꾸기 위해선 학교에 방문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전의 끝자락에 위치한 학교는 대학병원이 있고 오직 의과대학과 간호대학만이 덩그러니 있던 학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학원 건물과도 같이 주변 인프라가 없었지만, 학교를 처음 방문한 나는 대학의 싱그러움을 느꼈다. 통원버스에서 내린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건물로 즐겁게 이야기하며 들어가고, 흰 의사 가운을 입은 교수님들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바로 내가 다니고 싶은 의대였다. 나도 아침에 원형으로 된 강의실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고, 흰가운을 입고 옆에 두꺼운 의학전문서를 끼고 캠퍼스를 걸어 다니고 싶어졌다. 


 학교 건물 앞에 히포크라테스 동상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서 문구 먼저 하나하나 살폈다. 

'나는 의술을 주관하는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와 히기에이아와 파나케이아를 포함하여 모든 신 앞에서,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선서를 읽고, 손바닥으로 동상의 차가운 느낌과 눈썹 사이사이의 굴곡, 코의 오뚝함을 다 느낄 수 있도록 천천히 동상을 만져보았다. 이제 눈을 감아도 대학이 주는 초록의 싱그러움과 동상의 모양, 그리고 이 캠퍼스가 주는 느낌을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었다. 이제 준비만이 남았다. 나는 꼭 이곳에 돌아오리라 다짐했다. 


부모님은 부모님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셨다. 여기저기 면접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선배 부모님들과 연락해 알아보기도 하시고, 면접 특강을 준비한 학원도 먼저 등록을 하셨다. 서울에서 온 유명한 선생님이라고 한다. 다른 아이들도 등록했으니 가보라고 하셨다. 그러나 난 수업을 한 번 듣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이건 내 방식이 아닌 것 같다고 말이다. 면접 학원은 면접을 보는 학생들을 옳은 방향으로 찍어내는 듯했다. 나는 내가 가진 예비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이런 획일화된 교육들로 인해 장점을 잃어버릴까 걱정되었다. 나는 과감히 남들이 의대를 가기 위해서 꼭 들어야 한다는 면접 수업을 가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후회 없이 가보고 싶었다. '나를 뽑지 못한 대학이 손해'라는 생각으로 나를 뽑을 수밖에 없도록 면접을 준비했다. 


 부모님은 걱정이 한가득이셨다. 남들은 다 하는데 왜 안 하냐고 말이다. 내 대답은, 그래서 안 한다는 것이었다. 그저 믿어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미 재수까지도 마음을 먹은 나를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면접날도 깔끔히 교복을 차려입고, 차분하게 이미 가봤던 그 학교로 향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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