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라면을 끓인다
물이 끓기 전에
힘주어 봉지를 뜯고
계란과 파를 꺼낸다
오늘 하루
허기를 결판 내리라
생사에 결연하게
맞서서
무디어진 날을 세운다
파르스름한 빛 속에
남자의 얼굴이 비친다
파 한쪽을 뉘어놓고
인생이란 고단함도
같이 썰어봄 짐 하다
무엇을 썰어야 할까
한참을 망설이던
남자는 옷 섬을 풀어헤친다
두 번째 늑간즘
칼끝을 집어넣고
채 몸에서 떨어지지 않은
홀애비의 군둥한 서글품을
끄집어낸다
손목에 힘을 주자
서걱 거리는 소리에
소스라친다
그리움이란 게 조그맣게
도마 위에 떨어진다
왜 그런지
눈이 퀭하고
심장이 뛴다
더 이상 무엇이든
베어낼 용기가 없다
냉동실에
얼어붙은 삼겹살처럼
아픔인지 기쁨인지
슬픈 건지 후련한지도 모를
다 들러붙은 덩어리였다
아직도
세상은
두렵고
부끄럽고
차마 썰어내지 못할
것들이 인생에
어디 한 곳뿐일까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남자의
딸꾹질 소리가
냄비 속에서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