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숙제)
비가 추적이며 오는 휴일 오후에 아내와 길을 나선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차로 가기 편한 곳에 베이커리 카페를 향한다.
차를 달려서 가는 중에 우리는 비의 낭만을 생각한다.
넓은 창가 앞자리에 푹신한 의자와 원두향이 진한 커피,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며 창 밖으로 비가 내리며 그려줄 감성들, 조금은 센티해지기로 할까? 서로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될 정지된 시간들을 그려본다.
주차를 하고 차에 내려 건물까지 가는 수렁길이 작은 난관처럼 당혹스럽지만 이런 날이라 손님이 없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며우산을 핀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들은 인생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잠깐 망각했다.
비가 와서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것처럼 카페는 넓고 시원하고 쾌적했고그래서인지 비가 오는 궂은 날이어도 사람들이 북 쩍 거 린다.
아이들과 늙은 부모를 모시고 가족끼리 오는 일행도 연인처럼 보이는 어린 커플들도 줄지어 들어와 실내를 배회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같은 중년의 커플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아내는 주문을 하며 2층의 창가자리를 얼른 잡으라고 등을 떠민다.
종종거리며 나는 한 손에 읽다가 묵혀둔 소설책을 들고 한 손에는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접힌 우산을 들고 2층을 올라간다.
2층을 올라서니 사람들로 가득하다 창가는 고사하고 구석진 기둥 옆의 자리마다 빈 곳이 없다.
나는 식당의 서빙로봇이 되어 테이블 사이를 몇 번이고 가다 서며 왕복을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눈에 힘을 주고 다시 한번 실내를 훑어 본다.
이내 나는 씁쓸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같은 모습으로 한 손에는 책을 또는 에코백을 들고 한 손에는 우산을 든 중년의 희긋한 남성들이 여기저기 미어캣처럼 목을 빼고 한자리에 서서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한참을 배회하며 집시처럼 우리는 카페 내를 이곳저곳 떠돌며 방랑의 길을 떠났고 자리가 없는 무산계급의 설움을 꼽씹으며 정념에 불타오른다.
창가에 일어서려는 젊은 커플을 매의 눈으로 바라보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무언의 시위를 한다.
끝끝내는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이겼다!
승리감의 도취되어 앉은자리에서 커피와 빵을 해치우기 시작한다.
충분히 시장한 상태인데도 나의 입에는 조금 허탈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마도 강배전에 로스팅을 해서인지 가격에 비해 커피는 충분히 맛있지 못했고 썼다. 빵은 가격이 너무 비싸서 사람들이 장발장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했다.
몇 시간의 행복을 누리려 인생의 쓴맛을 보아야 하는 인생의 서글픔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창 밖으로 펼쳐진 나무들과 산자락을 보이는 자리에 우리는 마냥 기쁘고 행복했다.
나의 마음이 행복했는지 지친 다리팍과 눅진한 엉덩이가 행복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겨두고 아내와 나는 우리가 소유한 짧은 기득권을 자랑스럽게 누리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러했다.
집이 없을 때는 작고 허름해도 내 이름으로 집이 한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카페의 소파처럼 영원히 내가 앉을 수 없는 언젠가는 비워줘야 하는 그런 집이 아닌 평생을 살다 죽을 그런 나의 집을, 자리를꿈꾼다.
집을 가지고 나서는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좁고 추레한 것 같고 남들의 집과 비교를 하고 나는 모자라고 부족한 것 같아 견딜 수 없게 된다.
인생은 부단히 공부하고 자기 계발을 하여야 하는 것처럼 나의 소유물들을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앉을자리 누울 자리, 자리의 욕심은 끝이 없이 펼쳐진다.
그것은 물질적인 자리뿐 아니라 사회생활,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한자리를 해야 꼭 성이 풀리는 것 같다.
그 한자리를 차지해도 더 높은 자리 또 다른 자리를 탐을 내었다.
프로필에 이 삼십 개의 경력과 학위들 자격증을 올려져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배드민턴 선수의 인터뷰를 보고서 알게 된 배드민턴협회의부회장이 6명에 임원이 30명이나 되는 기형태를 보고 아연하기도 한다.
후원금을 한 푼도 안 내고 한자리를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는 나라도 욕심이 날듯 하다.
사격협회장은 올림픽전에 금메달리스트에게 삼억 원의 포상을 한다고 이야기했다가 선수단의 선전으로 그만큼의 금액을 준비할 수 없어서 올림픽기 간 중 협회장을 사의 했다는 가십도 들려온다.
자리라는 것이 역할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어떤 이에게는 고통과 부담스러움일 수도 있다.
자리는 공짜가 없다.
그것이 인간관계든 명예이든 직책이든 직업이든 노력과 시간비용이 없이 차지할 수 없다 또 차지하여도 안될 것이다.
나의 아내를 본다.
오드리 햅번처럼 보였다가 이제는 올리브같이 보여지는 키가 껑충한 중년의 여인.
남들이 몰려가는 방향으로 마구 뛰어갔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는 부모라는 자리를 가지지 못했다.
나는 자식이라는 자리를 잃어버렸다.
어쩌면 나는 내 아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남편이라는 자리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이라는 자리는 그냥 부모자식같이 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은 그것이 꼭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몰랐었다.
카페의 자리처럼 그냥 남편자리가 하기 싫고 재미없다면 훌훌 털고 일어나서 다른 자리를 찾아가면 된다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한 동안 서로를 멀리하며 지내온 시간에서 나는 이리저리 좋은 자리가 없나 두리번거렸던 것 같다.
아마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막상 내가 다가가서 보면 불편하고 불안한 자리들 뿐이었다.
떠나서 보니 내가 앉은자리가 꽃자리였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가 수 없이 싸우고 미워하고 원망하였던 시간이 나는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아내의 눈물이 비용이라는 말하는 나의 잔혹과 비정함에 용서를 구하며 다시 생각한다.
나는 아내 옆의 소파에 앉아 있지만 나의 자리를 찾기보다 그녀의 엉덩이가 기댈 수 있는 아내의 자리가 되고 싶다.
아내의 자리는 내가,나의 자리는 좀 무겁지만 아내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어디를 가든, 어느 계절, 어느 시간에도 우리가 같이 있다면 서로의 자리를 지키게 되리라
우리는 그냥 공원의 빈 의자처럼 나란히 놓여서 조금씩 떨어지는 빗줄기에,낙엽에 스치는 바람에 그렇게 늙어 갔으면 좋겠다.
비는 그치지 않았고 아내는 멀리 창밖을 응시했다.
나는 그런 아내를 유심히 바라보다 시선을 돌린다.
아내의 남은 빵을 포크로 집으며 생각한다
그냥 오늘따라 좋은 하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