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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Mar 30. 2024

시아버님 제사상에 올린 봄

어제는 시아버님 기일이었다. 며칠 사이 봄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다. 남편과 큰집으로 향하는 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기저기 꽃들이 피어 봄이 왔다고 인사를 하는 것만 같다. 세월은  어찌 그리 어김없이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지는지  자연의 흐름을 보고 있으려면 세상은 아름답다.   


시댁은 종가 집이라서  일 년이면 제사가 명절까지 일곱 번을 지내야 한다. 제사를 아주 정성을 다하여 지낸다. 남편 형제는 거의 빠지는 일이  없을 정도로 형제가 서로 아낀다. 우리 부부는 오래 결혼 55년째다 그렇지만 제사를 한 번도 빠진 일이 없었다. 어쩌면 제사라는 명분아래 형제들은 만나서 가풍과 형제의 정을 이어 오는 남다른 집안이다.


코로나가 오고 큰집 형님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많았던 제사는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일곱 반상이나 지내던 제사는 줄이고 줄여 시아버님과 시어머님 제사만 지낼 거라고  큰집 조카에게 연락이 왔다. 어쩌겠는가 젊은 사람의견따라야지, 우리 나이 든 사람은 예전 삶을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걸 안다.


큰집 형님 나이 85세가 되셨다. 몇 년 전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인지 기능도 떨어져 치매가 오기시작했다. 물론 나이 들면 사람은 아프지만 나는 형님의 살아온 일생을 결혼하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옆에서 지켜보아 왔다. 늘 가족을 위한 힘든 일을 견뎌 내셨다. 예전은 다 그러고 살아왔다. 나이 들고 병든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아프다.  


며느리라는 이름 아래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왔던 나날들, 힘겨운 삶이었다.


제사라면 종교의식처럼 중요하게 여겼던 시댁이지만 시대의 변화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큰집 형님이 요양원에 계시니 조카며느리는 제사에 대한 부담이 될 수 있어 내린  결론이다.  시아버님과 시어머님 제사만 지내기로 했다 하니 그것이라도 감사한 일이다. 다 같이 행복해야 한다. 내려놓음은 행복이다. 다른 의견을 내면 거기에서 오는 갈등이 오기 때문이다.


사람관계는 언제나 작은 일에서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서로 배려는 사랑이다.


이 봄날 갈 곳이 있고 함께 할 사람이 있고 내가 움직일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내 앞에 오는 현실을 쉽게 수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곧 내 마음 안에 있기에 나는 나를 다스리면 되는 일이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 해 가면서 마음을 비워야 내가 편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사람 사는 일은 여러 가지 욕구가 있겠지만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으뜸이다.


큰집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차로 15분이면 도착을 한다. 시골 동네 산자락을 돌아 가는데 진달래가 환하게 피어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진달래 꽃을 꺾는다. 마른나무 가지에서 어쩌면 이리 예쁜 꽃을 피워낼까. 아름 다운 색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색이다. 꽃을 꺾으면서 생각나는 소월의 진달래 꽃 시를 두런두런 외워 본다.


꺾어온 진달래와 화전을 부치기 위해 꽃술을 따 놓은 꽃잎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소녀 적부터 좋아했던 소월의 진달래 꽃 사연이 궁금하다. 꽃을 꺾어 들고 큰집으로 들어가 병에 꽂아 놓는다. 금방 시들면 화전을 부칠 수 없기 때문이다. 꽃을 보면 누구나 마음이 환해진다. 다른 전을 부치고 화전도 부쳤다. 그리고 제사상에 올려놓았다. 평소에 사랑이 많으신 시어머님이 좋아하실 것만 같다.


                     '진달래 화전이 예쁘구나' 하시며 활짝 웃어 줄실 것만 같다.


차려 놓은 제사상, 다른 때는 올라가지 않는 화전은 마치 봄을 올려놓은 듯 화사하다. 제사 음식도 많지만 진달래 화전은 봄을 알리는 상징처럼 예뻤다. 형님 안계지만 이번엔 제사상을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했다. 아들 삼 형제 절을 올린 후 우리 여자들도 절을 올리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님 어머님 이곳은 봄이에요. 지금 까지 저희 가족들 잘 살펴주시고 복을 주셔 잘 살고 있습니다."

 

진달래 한 줌으로  화전을 부쳐 나는 저승에 계시는 시부모님에게 사랑과 행복을 전한다. 거실에 앉아있는 삼 형제에게도 화전과 찻상을 내고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동서와 조카의 입에도 화전을 넣어 주면서 봄을 전하다. 행복을 작은 곳에서 피어난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도 저희가 차린 음식과 화전 드시고  편안하시고  행복하시면 좋겠습니다. 


봄은 우리에게 축복의 계절이다. 봄이 있어 나는 축제처럼 일상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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