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혼자서 김장을 했습니다.
김장 담기가 막바지였던 11월 말, 나도 그 대열에서 벗어나지 않고 김장을 해오고 있다. 매년 언제나 11월을 넘기지 않고 김장을 하는 이유가 딱히 있는 건 아니지만. 무슨 불문율이라도 되는 것처럼 11달에 김장을 마치고 12월을 산뜻하게 맞이하는 게 나만의 루틴이다. 그래야 마음이 홀가분하고 겨울맞이를 하는 것처럼 기분이 새롭다.
12월은 사색의 달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루틴이 있다. 무슨 종교의식도 아니련만 나는 나 만의 원칙을 세우고 삶을 살아내고 있다. 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는 다 때가 있는 것이다. 그때를 잘 맞추어야 중용을 잘 지킬 수 있고 모든 일에는 완벽함 보다도 조금은 모자란 듯 비어 있는 공간이 아름답다. 다 채우고 산다는 것은 오히려 인생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의미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남편은 작년까지 하지 않던 말씀을 하신다. "나이 80십이 넘었는데 이제는 김치 그만 담그고 사 먹지, " 남편 하시는 말에 나는 놀랐다. 나를 생각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을 당신이 이제는 김장할 때마다 곁에서 해야 하는 역할을 하기 싫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곧 있으면 90이 되는 남편은 모든 것이 귀찮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남편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나도 남편 나이가 되면 그렇수 있겠지 싶어 이해를 한다. 세월 비켜가는 장사 없다고 언제나 사람 사는 모습이 한결같을 수는 없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가깝게 다가오는 요즈음 남편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울적해질 때가 있는 건 사실이다.
올해는 지난해 보다 절반 정도인 절임 배추 40k를 마트에서 주문했다. 이젠 김장은 조금만 해야지 하는 생각이 더 절실했다. 나도 이제는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고 지난해 묵은 김치가 지금도 조금 남아있기 때문이다. 주부들은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김장하기를 힘들다고 김장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 말을 듣고 아쉬움이 밀려온다. 김치 담는 일은 물론 힘겹다. 그렇지만 김치를 담그면서 가까운 사람들과 서로 나누고 수육을 삶아 막걸리 한잔하던 훈훈한 문화는 자꾸 줄어든다. 나는 문득 김치 담그는 일도 놀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사부작사부작 즐긴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하다. 김장을 같이 하던 세대도 줄어든다. 이제는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 준비해야 한다.
왜, 나는 예전에는 김치 담그는 일을 노동으로만 생각하고 힘들다고 했을까, 산다는 건 생각하기 나름인 듯, 그러나 나이 들고 세월이 가면서 생각이 바뀐다. 내가 건강이 허락되어 김장 김치를 자식들에게 줄 수 있고 내 입맛에 맞는 김치를 담가 먹고살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인가,
가볍게 가볍게 살자. 사는 것도 놀이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남편은 김장은 하는지 도통 관심 없다는 듯 소파에 앉았다 누웠다 티브이 하고만 놀고 계신다. 올 가을부터 달라진 모습이다. 내가 부르면 마지못해 오시어 모자란 양념을 넣어 주고 가시어 소파에서 누워 계신다. 어쩔 것인가 본인 하기 싫은 걸 강요할 수는 없다. 나는 혼자서 천천히 파를 다듬고 이것저것 양념 준비를 한 다음 주문헌 배추를 기다린다. 작년까지는 안 그러 셨는데...
배추도 알맞은 시간에 도착을 해 주어 얼마나 감사한지, 배추를 소쿠리에 담아 물 빼기를 1시간 정도 한다.
다른 해는 동생이 도와주었는데 올해는 나 혼자서 김칫소를 넣고 김치를 담갔다. 담고 나니 김치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적어 섭섭했다. 딸네 두 집, 우리까지 먹으려면 턱 없이 모자란 양이다. 김치 양념이 남아 다음 날 마트에 가서 배추 한 망 세 포기를 사다가 절이고 담갔으나 양념은 또 남고, 모자란 감치 통을 채우려 했지만 채우지 못했다.
맨날 같이 차 타고 다니는 지인 선생님은 김잠 안 하신다는 말을 듣고 김치를 꼭 드리고 싶었는데, 드릴 김치가 없다. 다음 날, 거실에서 남편이 주무시는 틈을 타 몰래 배추 세 포기를 또 사 왔다. 오후시간, 마트를 걸어가는데 바람이 칼바람이다. "아이고 추워, " 내가 못 말린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할까, 적으면 적은 대로 먹고 말지,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 집안에서 하는 일은 괜찮은데 배추 사러 가는 길이 추워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배추를 밤중에 절여 새벽에 일어나 씻어 물 빼고 아침 먹고 설거지 후 김치를 담가 모자란 김치통을 채우고 지인 선생님 주고 싶은 만큼 작은 통으로 김치를 담아놓고 우리 먹을 겉 절이도 만들어 놓고 이제는 완벽하게 채우고 싶은 데로 김치 냉장고를 다 채웠다. 3일 걸린 김장은 완성이다.
아직은 엄마가 살아 있어 딸들이 가져다 먹을 수 있는 김치, 김치는 엄마의 사랑이다. 어쩌면 고향의 맛일지도 모른다. 귀찮다고 김치를 담지 않으면 고향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마의 사랑, 이제 겨울 준비는 끝났다. 추운 겨울 아삭한 무 김치와 시원한 동김치, 톡 쏘는 여수 돌산 갓김치, 다 담가 놓았다.
눈 내리는 겨울날, 배추김치 머리만 싹둑 자른 긴 가닥을 물만밥에 손으로 쭉 찢어 놓아 먹는 맛이라니 이 보다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밥과 김치만 먹고도 우리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김장 김치를 담가 김치 냉장고를 채우고 나니 마음이 가득해진다. 이제 딸들이 가져다 먹기만 기다릴 것이다.
나는 오늘 부자가 된 기분이다. 부자란 돈이 많은 것보다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루웠을때 부자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