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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그 하루

by 이숙자

추석날이다. 전년 같으면 새벽 일찍 일어나 큰집에 제사하러 가는 날이 추석날이었다. 큰집에 가면 맛있는 음식이 푸짐하게 준비되어 있고 형제들과 조카들도 모여있어 집안이 훈훈하고 온기가 가득했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감사하며 우리는 함께 한 가족이라는 하나된 정서적인 교류를 나누게 된다. 그런 모습이 우리 집안 명절 분위기와 문화였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 때문에 가족들이 모이지 않고 제사도 못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참 많이 쓸쓸하고 적응이 안 되면서 마음이 허전하다. 명절이 아닌 듯한 느낌이다. 코로나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줄고 비대면을 하고 살아야 하는 별난 풍경이 되었다. 요즘 코로나 블루라는 말을 한다. 정말 공감이 간다. 이건 사람 사는 정상적인 환경이 아니다. 몸이 힘들어도 함께 만나서 음식도 만들고 떠들썩한 그런 날들이 그립다.


우리는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남편은 "여보 우리 산소나 다녀오지?" 하고 물어온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럽시다" 제사도 못하는데 산소라도 다녀와야지 섭섭한 마음을 채울 듯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트에 가서 시 아버님 좋아하시던 막걸리 한 병 시어머님 좋아하시는 환타 한 병 그리고 과일과 떡을 좀 챙기고 산소를 향해 달렸다.


부모님 산소는 집에서 20분 정도 차로 달리면 도착을 한다. 얼마 동안 집과 마트, 운동하는 곳, 일상적인 생활 반경을 벗어나지 않고 지내왔다. 매일매일 안전문자로 코로나19로 주의사항이 오게 되니 멀리 외출할 엄두를 못하고 생활을 해온 것이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화되는 일 중에 하나가 멀리 외출이 귀찮아지는 일이다.


시내를 벗어나 시골길을 오게 되니 길거리에는 코스모스가 피어있고 들판과 논에는 벼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반갑다. 정말 가을이 왔구나 실감이 난다. 황금들판의 벼들을 보게 되니 금방 마음이 넉넉하고 흐뭇하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의 먹거리인 쌀농사를 지으신 농부들의 구슬땀이 새삼 고마웠다. 우리는 매일 식탁에 올라오는 먹거리를 돈 주고 사면 그만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하고 살고 있지만 그 뒤에 수고하고 땀 흘리는 농부의 손길이 있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다.


산소 가는 길은 큰집이 보이는 길. 가까이에 있는 큰집 옆을 지나가는 마음이 이상하다. 행여 서로가 불편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산길을 걸어 올라서 마을 아래 큰집을 한번 바라보니 마당에 차가 한 대도 없다. 예전 같으면 차가 몇 대가 있어 주차가 모자랄 정도였다.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하지, 서글픔이 살짝 밀려왔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나. 참 세상이 이상하게 변해 가고 또 어떠한 일이 다가올지 예상이 안된다.


시 부모님 산소가 있는 산에서 꺾어온 야생화와 가을 열매



산소에 도착을 해서 어른들에게 절을 하고 옛날 시부모님을 추억해 본다. 앞에 보이는 산자락을 한번 바라보면서 훗날 우리도 이곳 와서 누울 자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지난해 같으면 가족 모두가 모여 함께 인사를 드리고 정담을 나누었건만 역시 둘이 있는 오늘은 쓸쓸한 마음이다. 시아버님, 시어머님 묘를 둘러보고 묘지 위에 있는 잡초도 뽑아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모님을 추억한다. 나중에 우리가 가고나면 자식들은 우리를 찾아볼까? 남편과 나누는 대화다. 쉽지 않겠지~~ 처연해진다. 어쩌랴, 상황에 맞게 살아야지.


산길을 내려오면서 작은 알밤도 줍고 산길에 피어있는 가을 열매가 달린 예쁜 꽃꽂이 소재가 될만한 들꽃을 꺾는다. 나는 매년 추석 산소에 올 때마다 들꽃을 만나는 것도 기쁨 중 하나다. 남편과 둘만이라도 산소에 오기를 잘했다. 그렇지 않으면 허전함이 더 했을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꽃병에 꽃도 꽂아 놓고 산소를 다녀오고 들꽃을 보며 작은 것에 위로를 받는다.


시골 시부모님 산소에서 꺾어온 야생화


며칠 같이 지내던 손자가 분당 본가로 돌아갔다. 가족과 헤어짐은 언제나 섭섭하다. 자고 있던 방을 청소하고 이불을 모두 꺼내어 빨고 부지런을 떤다. 가을 햇볕이 좋아 빨래해서 널고 있으려니 마음이 뿌듯하다. 가만히 일없이 앉아 있으면 명절이 쓸쓸할 것 같아 일감을 찾아 바쁘게 움직여본다. 집에 있는 밤을 까고 딸 좋아하는 찰밥도 밤을 넣어 찐다. 딸은 손자와 카페에서 일하고 둘만 있는 집은 조용하다. 언제나 곁에 있는 남편은 친구이면서 동반자다.


딸에게 카톡이 왔다. "엄마 우리 저녁때 장자도 노을 보러 가시게요" 딸은 진즉에 친구하고 한번 다녀오고 느낌이 괜찮았나 보다. 딸은 언제나 친구들하고 다녀오고 나서 그곳이 좋으면 우리 부부를 데리고 구경을 시켜준다. 나이 든 우리 부부만 살면 절대로 안 움직일 터인데 딸이 있으니 그런 것이 좋다.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남편을 살살 구슬린다. "여보, 딸이 가자고 하니 갑시다. 언제 가겠어요." 남편은 언제나 쉬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그때그때 즐길 수 있는 것은 즐겨야 한다는 주의를 가진 사람이지만 남편은 다르다.


군산 시내에서 장자도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나는 낮에 쪄놓은 찰밥과 김과 김치 물만 챙기고 옆에 사는 여동생과 딸 손자와 함께 오후 5시에 장자도로 달린다. 새만금 방조제에는 가을 낚시꾼들이 낚시를 바다에 드리우고 낚시들을 즐기고 있다. 추석 날이지만 딱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 듯하다. 밀폐된 공간을 모두 피해야 한다고 자꾸 문자가 오니 조심할 수밖에 없다. 여하튼 밖을 나오면 답답함이 없어 좋기는 좋다.


선유도 야미도에서 나오는 차량들도 많다. 추석이라 가족끼리 나들이 나온 듯하다. 장자도는 선유도 보다 제일 멀리 있는 조그마한 섬이다. 몇 년 전에 들렸을 때 보다 건물도 많이 생기고 관광객을 위해 카페와 음식점도 생겼다. 추석 날이라서 그런지 사람들도 꽤 많다. 우리는 차를 주차하고 바닷가 쪽에 자리를 깔고 음식을 꺼내여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해물 우동과 가락국수, 여러 가지 먹거리를 사 오고 야간에 소풍을 나온 느낌이다. 가을 해는 금방 어둠이 내려앉고 밤이 되어 별빛이 비춘다.


해가 저물어가는 장자도 바닷가 풍경


구름 때문에 노을은 볼 수 없이 밤으로 가고 만다. 우리는 바닷가 파도 소리를 들으며 별난 추석을 보내고 저녁을 먹고 있다. 멀리 바닷가에 반짝이는 전깃불이 전설 속 이야기에 나오는 불빛처럼 아득히 먼 곳에서 깜박거린다.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금방 추석 보름달이 떠오른다. 우리는 와아~~ 보름달이다.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 소원하는 것 빌어 보게요." 말하고 웃는다. 살다가 이런 일도 있구나 싶다. 바닷가에서 추석날 보름달을 바라보는 마음이 특별하다. 어두운 밤바다를 바라보고 하늘에 뜬 보름달을 보면서 여러 생각에 잠긴다.

장자도 밤 바닷가에서 보는 추석 보름달


참 세상 사는 삶에 모습은 다양하다. 조금 전까지 소란했던 사람들도 많이 줄고 어둠 속에 바다는 고요하고 가끔씩 작은 물소리의 파동만 들린다. 밤에 바닷가에 앉아 있으니 깊은 심연 속에 잠긴 듯 이상하다. 우리는 오늘 특별한 추석을 보내고 훗날 만나게 될 기억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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