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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가야 할 곳이 줄어든다

남편 생신 부여 가을 여행

by 이숙자

부여는 군산에서 차로 1시간쯤이면 도착을 한다. 우리가 사는 가까운 곳 여행지로 알맞은 곳이다.


둘째 사위 회사에서 직원들 휴가지로 숙박하는 곳에 당첨되어 가게 된 부여 롯데 리조트다. 우리 부부도 함께 보너스 받은 기분이다. 여하튼 공짜는 좋다. 그런데 때론 공짜가 마냥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닐 때도 있지만, 요런 경우는 그냥 좋은 거다.


둘째 딸 부부 셋째 딸 손자, 여섯 명이 부여 향해 출발하는 마음이 가뿐하다. 코로나로 여행의 자유를 잊고지낸 지 한참 되었다. 사람 사는 게 자유로움을 구속받고 산다는 게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답답한 일이다.


추석에도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도 만남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명절이지만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고 큰집 제사에도 못 갔다. 매번 해 오던 일이 멈추고 만날 사람을 못 만나게 되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 듯 허전함이 가슴 한편에 밀려와 사는 재미가 없을 정도로 쓸쓸했었다. 이 나이 되도록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부여 가는 길, 차를 타고 창밖으로 보이는 들녘 풍경은 벼들이 노랗게 고개를 숙이고 있어 황금물결이다. 먹지 않아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하고 넉넉해진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고 한 말이 딱 맞는 말이다.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축복처럼 누리고 산다. 변화되는 계절을 보면서 일 년의 삶이 지루할 틈이 없다.


계절마다 주는 기쁨이 있어 그 계절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축제처럼 지낸다. 내가 올해 코로나를 겪으면서 느낀 일이다. 예전엔 몰랐던 일들도 사람과의 대면이 줄어들고 삶이 한적해지면서 사색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고 삶의 깊이가 더 깊어졌다고 하면 옳을 듯하다.


부여 롯데 리조트 안의 소나무와 담이 정겹다

며칠 전 남편의 생신이었다. 이번 부여 나들이는 딸과 사위가 아빠 생신 겸 가족끼리 먼 곳은 아니지만 가까운 곳에라도 다녀오자고 나선 길이다. 날씨도 선선하고 햇살도 좋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한 동안 집안에서 동네만 돌아다니다가 밖에 나오니 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가벼워져 좋다. 사람은 좋은 사람끼리 삶을 나눈다는 게 무척 중요한 일이다.


산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마음을 기대고 외로움을 덜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삶의 둥지를 만들고 그 속에서
지지고 볶고 수없이 많은 사연을 만들며 평생을 살아가면서 생을 마감하는 듯하다.
그게 인생인 것이다.


인생이란 주어진 자기 삶의 길을 묵묵히 최선을 다 해서 세월을 안고 살아간다. 평범한 생활 속에 삶의 진리가 있다.


오랜만에 호텔 로비에 도착하게 되니 여행 온 실감이 난다. 여행의 산뜻한 맛은 호텔에서 느낄 수 있다. 깨끗하고 품격 있고 멋진 풍경 속에 내가 있을 때 또 다른 세상 속 나를 발견한다. 조용한 곳 푹신한 소파에 말없이 앉아 잠시 우아함으로 치장하고 창밖을 바라보니 나름 좋다. 주말 연휴라서 사람이 많다. 모두가 코로나와 상관없이 움직인다. 눈에 보이는 사람마다 모두 젊다. 우리 부부처럼 나이 든 사람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참 세상이 많이 변했다 예전 하고는.. 어쩌랴~~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다르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우리는 힘들게 살았는데 너희도 그렇게 살라고는 말이 안 된다. 우리가 있어 너희가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축복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자녀들이 나이 든 부모라 내치지 않고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여행은 밤에 느끼는 운치가 더 멋지다. 밤 어둠 속에 빛이 주는 여운이 아늑하다. 가을밤 창가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조차 정겹다. 맨날 집에서 동동거리던 밥 짓는 밥순이 노릇을 안 하니 그것 또한 좋다. 나는 맨날 밥이다. 가족의 생명인 것이다.


부여 역사 문화 관광지

부여는 역사가 깊은 곳으로 이야깃거리가 많다. 호텔 주변에 역사문화 관광지가 깨끗하게 정비되어서 산책하는 재미도 크다. 유물박물관, 역사박물관 볼 만한 곳도 많다. 부여는 몇 번씩 오게 되어 많이 구경했었다. 오늘은 특별한 즐길거리를 찾아 수륙 양명 버스를 타고 백마강을 즐기려 이동했다. 육상에서는 버스이며 물 위에서는 배로 변신을 한다. 나는 TV 외국 관광지에서 본 수륙 양명 버스를 타고 백마강을 유람하는 특별한 시간을 갖는다.

백마강에서 바라보는 고란사와 유람선 타는 선착장

안내하는 문화 해설사 설명이 더 흥미롭다. 마치 예전 사비성과 백제시대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소정방이 낚시를 했다는 전설의 바위와 고란사를 바라보고 낙화암에서 치마를 둘러쓰고 떨어졌을 삼천궁녀도 생각한다.

물위를 달리는 버스

물 위를 버스 타고 달리고 있으나 밖을 보지 않으면 땅 위를 가는건지 물 위를 가는건지 구분이 안된다.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마스크를 쓴 별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사람의 뇌는 자꾸 진화를 해서 상상도 못 하는 일들을 만들어 내고 발전을 한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아직도 체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하다. 지금 세상에 나와 있는 문명의 이기를 어찌 다 만날 수 있으랴~


백마강 물 위의 버스 타고 뱃놀이는 한 시간 남짓 끝이다. 백마강은 수많은 사연을 안고 조용히 물결만 흐른다.

백마강 강변 억새


뭍으로 나와 백마강을 끼고 산책하는 억새길 코스모스 길을 만들어 관광객들 사진도 찍고 가을 정취를 즐기는 곳이다. 모두 가족끼리 아이들 손에 손을 잡고 즐거워한다. 참 이상하다. 이제는 사람 많은 곳 소란스러운 곳이 싫으니 나이 탓일까, 그 속에서 나는 이방인처럼 낯설다. 나이 든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군중 속에 외로움 이라더니 왠지 재미 없고 허전하다.


백마강 강변 코스모스 길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둘째 딸 가족과 헤어지고 우리는 군산으로 돌아온다. 차 안에 앉아 드는 생각이 즐거움 보다 여행에서 느끼는 여운이 싸하고 쓸쓸하다. 가는 곳마다 젊은 사람들 속에서 상대적 외로움을 느낀다. 정말 나이 들면 가야할 곳이 줄어든다. 나이 든다는 것은 외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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