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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70대, 출근하며 돈을 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돈을 벌고 있다

by 이숙자
KakaoTalk_20210510_112624857.jpg 시니어 사무실 올라가는 계단에 보이는 글이 기운을 나게 한다

결혼 53년 차인 나는 처음으로 시니어 클럽에 나가서 돈을 벌고 5개월째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있다. 적은 금액이지만 정말 신나는 일이다. 출근하면서 결심하기를 언감생심 그 돈은 생활비에 쓰지는 않을 거란 야무진 꿈을 꾸었었다. 더 큰 목표를 위해 돈을 쓸 거라는 다짐을 했었다.


그 돈을 어디에 쓸까? 날마다 궁리를 하면서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서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딸들 손자들에게는 "할머니 돈 번다. 내가 맛있는 것 사줄게." 하고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돈이란 쓰고 싶을 때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쓸 때 빛이 난다. 나는 가끔 고3 손자에게 격려차 용돈을 주고 대학 다니는 손자가 찾아오면 그때도 용돈이 나간다. 때로는 딸들이랑 사위와 함께 모일 때면 밥을 얻어만 먹지 않고 나도 의기양양하게 밥을 산다. 집에서 먹는 특별식에도 돈을 쓴다. 이처럼 적은 돈도 유용하게 쓰고 있으니 엄청 기분이 좋다. 돈을 벌어 쓰는 기쁨을 알 것 같다.


어제는 비싸지 않은 옷을 두벌 샀다. 집에서 입는 실내복으로, 한 벌은 동생 주고, 한 벌은 내 것, 맨날 오래된 옷을 입다가 새 옷을 입으니 아이들 마냥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옷도 가끔 새로운 걸 입어야 새 기운이 충전된다. 나이 들었다고 새 옷을 사지 않으니 의기소침하고 사는 재미가 없었다.

돈이란 사람에게 기운을 솟게 하는 힘이 있다. 언제나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쓸 때는 넉넉하지 못했던 마음이 지금은 내가 돈을 번다 생각하니 돈을 쓰는데 조금 너그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정말 적은 돈을 가지고 나는 부자가 된 듯 마음이 풍요롭다. 부식비로 아끼던 돈도 그래 사자, 하고서 산다. 돈은 쓰고 싶을 때 써야 사는 맛이 난다.


그 기분을 모르는 사람은 '그 나이에 적은 돈을 받으려 왜 시간을 버리나' 할 것이다. 그런 말을 할 것 같은 사람이 내 주변에 더러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절대로 자랑을 안 한다. 깊은 사생활을 속속들이 나열하기는 싫다. 내 삶을 자기들 기준대로 평가하는 것은 더욱 싫은 일이다.


사람은 저마다 생각의 가치가 다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대로 나답게 산다. 누가 뭐라 한들 상관없다.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 길을 간다.


나는 늦은 나이에 아침 먹고 설거지를 마친 후 외출복을 입고 치장을 한다. 그동안 옷장 속에 숨어 있던 옷도 빛을 보게 되니 옷들도 좋아할 것 같다. 요란한 옷차림은 아니지만 여하튼 깨끗한 옷차림 하고 준비물 가방을 챙겨 출근하듯 집을 나선다. 남편은 내 출근 기사님이 되어 버렸다.


그 또한 싫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나 일하는 곳 주변에는 널따란 공원이 있다. 일 끝날 때까지 공원에서 운동하고 놀기도 하고, 때론 구시가지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예전 결혼하고 처음 세 살았던 곳들을 순회하듯 찾아다니며 추억을 소환한다. 결혼 53차, 변하기도 했다. 변화된 지금 모습에 놀라워하면서.


일이 끝나고 나에게 들려주는 남편의 이야기들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우리는 정겨운 옛 기억 더듬고 추억이 켜켜이 쌓인 지나간 날들을 이야기하며 만감이 교차한다. 우리가 살았던 시절 활기롭던 모습은 사라지고 폐허처럼 쓸쓸해진 지금, 세월의 무상함이 마음을 시리게 하고, 부부란 함께 살아온 세월만큼 묵은 정이 켜켜이 쌓여 이야기보따리의 무게가 무겁다.


지금은 나이 든 세대는 가고 젊은 세대는 거의 신시가지 아파트로 이주를 해서 구시가지는 공동화된 현상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온기가 없어 금방 무너져 내리고 잡초들이 주인이 되어 버린다. 사람 발자국 소리와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은 폐허처럼 쓸쓸하기만 하다.


집에만 있었다면 대화의 주제가 없었을 텐데.. 내가 일하는 동안 남편은 이야깃거리 만든다. 나이 들면 찾아갈 곳도 마땅치 않아 외롭다. 친구들도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외로워진다. 나는 늦은 나이에 일도 하고 직장인들 속에 활기 넘치는 생활을 공유하면서 세상과도 연결을 한다. 또 날마다 만나는 그곳 사람들과 눈 마주치며 주고받는 인사하는 시간도 즐겁다.


나이 든 사람이 돈을 벌고 자기 일이 있다는 것은 자존감과 활기가 있어 삶에 윤활유가 된다.


나와 같이 일하는 짝꿍 어르신 나이는 팔십이 훨씬 넘었지만 귀엽기까지 하다. 나이는 드셨지만 삶의 자세가 긍정적이고 꼭 필요한 말만 한다. 때론 살아가는 사생활도 같이 공유하면서 위로해 주는 사이로 우정을 쌓는다. 가끔씩 텃밭 농사를 지었다고 상추며 호박도 가져다주시니 받아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는 담당 직원 선생님이 제시해 주는 작업 안에 따라 붓글씨를 쓰며 나는 꽃그림을 그린다. 서로 존중하며 의견도 조율을 하면서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일이 없어 사람과 겪는 갈등 생기지 않아 그 점도 좋다. 일하다 잠깐 쉬는 시간, 내가 가진 다양한 차를 가지고 가서 차맛을 즐기는 시간도 작은 즐거움이다.


담당 선생님도 차를 마시며 엄청 좋아한다. 나는 이 나이에 일해서 돈도 벌고 세상과 연결도 하고 노년을 외롭지 않게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예전 일을 생각하면 멈칫거릴 수도 있지만 과거는 잊어야 한다. 사람은 지금 살고 있는 순간이 중요하다.


시니어 클럽은 정부 보건 복지부에서 노인 복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일이다. 사무실 직원들은 어르신들을 부모님 모시듯 정성을 다해 친절하게 대해주니 마음도 푸근하고 좋다. 시니어 클럽에서는 가끔씩 부서별 교육이 있다.


뒤에 앉아 작업을 하니 자연스럽게 교육 온 어르신들 말소리가 들린다. "집에서 무료하게 지내지 않고 활동하니 얼마나 좋아" 하고 한 마디 씩 한다. "그래 노인이 되면 갈 곳도 없는데 참 감사한 일이야." 말하며 다른 사람도 대화에 끼어든다. 이곳 시니어 일자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이천 육백 명이라니 놀랍다.


시니어 일자리는 외롭고 힘들게 살고 있는 노년의 삶에 활기와 생의 보람까지도 가져다준다. 건강을 유지하고 홀로 자립해서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살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 열심히 살고자 하는 노년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 지금은 100세 시대이다. 나이 들었다고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일이 아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활기차게 살아야 한다.


나도 거부할 수 없는 노년세대다. 내 앞에 다가오는 삶을 오면 오는 대로 거역하지 않고 즐기며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노년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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