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가족과 중국에서 같이 살던 손자 친구 가족이 우리 집에 왔다
지난해 12월, 방학을 보내기 위해 캐리어 하나 끌고 한국에 들어온 셋째 딸네 가족은 아직까지 중국에 돌아가지를 못했다. 지금까지 우리와 같이 살고 있다. 같이 산다고는 하지만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처럼 살고 있는 상황이다. 사위와 고3이나 다름없는 큰 손자는 본가인 경기도 죽전과 외가인 우리 집을 열흘에서 보름 간격으로 오고 가며 생활하고 있으니 불편함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한국에서 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어제는 울산에서 손님이 오셨다. 셋째 딸이 중국 중경에서 살 때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이웃이라고 했다. 이웃이라도 보통 인연이 아닌 매우 가까운 분들, 날마다 삶을 같이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기대며 살았던 사이였다니 가족이나 다름없을 듯하다. 어쩌다 고약한 코로나라는 몹쓸 전염병 때문에 삶의 자리를 놓아두고 한국으로 나왔으니, 그 어려움이 보통 아닐 것이다.
그분들도 한국에 나온 후 코로나19로 중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울산에서 직장을 구하고 새롭게 한국생활에 적응 중이라고 한다. 그 집 아들은 둘째 손자의 두 살 터울 친구 같은 형이다. 그곳에서 날마다 어울려 놀았으니 많이 그립고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런 연유에서 울산 그 먼 곳에서 군산까지 달려온 것이다. 토요일 쉬는 날을 이용해서.
딸은 "엄마 그분들 울산에서 밤에 도착해 잠만 자고 가는데 호텔비 아깝잖아요. 그래서 호텔 예약하지 말라고 했으니 우리 집에서 잘 수 있도록 침구만 준비해 주세요" 하고 부탁을 한다. "그럼 그래라, 그런데 엄마 힘들어 아침밥은 못해 준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서둘러 청소하고 이불 정리해서 잠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딸에게 그 말을 들을 때는 그분들과의 관계가 그처럼 단단하고 친밀했는지 몰랐다.
딸은 손님을 맞아 밖에서 저녁을 먹고 9시가 넘어 손님부부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그분들은 들어오면서부터 민망해서 어쩔 줄 모른다. 딸네 가족과 친밀하다고는 하지만 처음 찾아온 낯선 곳이 얼마나 서먹할까, 불편해도 하룻밤 쉬고 가시라는 말만 남기고, 남편과 나는 안방으로 들어와 잠자리에 누웠다.
잠을 청하려니 여러 생각이 머리에 겹친다. 딸네 가족이나 그분들도 중국에서 잘 살고 있었을 텐데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로 삶의 터전들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많이 애쓰고 힘들겠구나 싶어 마음 한편이 짠하다. 반찬이 없으면 어떠리 내일 아침밥을 해서 먹여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참 사람 사는 일은 내일도 모르고 산다. 그저 다가오는 데로 치열하게 온 힘을 다해서 살아내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 같이 살고 있는 딸도 바쁘게 일을 하며 초인간적 힘을 발휘하며 시간을 나누어 살고 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볼 때면 참 대견한 마음이 들고 안쓰럽다.
산다는 것은 오름도 있고 평지도 있다.
고통 없이 사는 삶이 어디 있으랴, 그저 담담히 견디다 보면 세월은 지나갈 것이다. 그러리라 믿는다.
아침 일어나 마음이 분주하다. 내 집에 온 손님 따뜻한 밥 한 끼 먹여 보내지 않으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서둘러 일어나 쌀 씻어 밥솥에 밥을 하고, 사다 놓은 콩나물과 멸치맛 국물을 내어 국 끓이고 가지나물하고 브로콜리 데쳐놓고 냉동실 얼려두었던 갈치를 꺼내어 굽고 김치와 깍두기에 밑반찬 몇 가지 더하면 아침 한 끼 먹겠지 싶어 상을 차렸다. 사람 먹고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겠지 싶었다.
손님들은 아침 새벽에 출발한다고 했지만 전날 잠을 못 자서 늦잠을 자고 있다고 깨우지 말라고 딸은 일어나서 부탁을 했다. 간단히 밥상 차려놓고 우리 부부는 안방에서 국에 밥 말아 살금살금 소리 내지 않고 도둑 밥 먹듯 아침을 먹고 운동복 갈아입고 운동하려 가기 위해 나오는데 딸 친구분은 깨어나서 인사를 한다.
"반찬 없어도 밥 해놓았으니 드시고 출발하세요. 그리고 우리 딸과 좋은 인연으로 지내시길 바랍니다."라고 인사말을 남기니 "너무 고맙습니다." 대답을 하는 모습이 순박하고 참 정스러워 보인다. 우리가 나가야 자유롭게 밥을 먹겠지 싶어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내가 조금 수고하고 마음만 내면 되는 일, 그냥 보냈으면 그 서운함을 어찌했을까 싶다. 그분들 보낸 뒤에야 딸은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중경 살 때 그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라는 말을 한다. 밥 해 먹여 보낸 일이 정말 잘했다. 사람이 복 짖는 일 중에 가장 좋은 일은 남에게 밥 먹이는 일이라고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몽골 유목민들은 자기 집을 찾아오는 손님을 그냥 보내는 일이 절대로 없다고 한다. 드넓은 초원에서 사람을 만나면 먼 거리까지 쫓아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정을 나눈다는 말을 들었다. 인생은 "일회 일기"라고 말하며 이번 한번 만나면 언제 또다시 만날까 싶어 헤어질 땐 애달파 인사하고 또 인사하고 그게 몽골인의 문화다.
비록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사람 사는 도리와 정은 문명의 혜택을 받고 사는 현대인들 보다도 더 따뜻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훌륭하다. 사람의 기본 도리인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큰 은혜다. 음식은 곧 생명인 것이다.
우리나라 조상들도 예전에는 그렇게 살았다. 낯선 사람이 집에 와도 재우고 음식을 나눠먹고, 따뜻한 정이 많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발전하면서 사람관계는 개인주의로 변했다. 지금은 이웃 간에 왕래도 없어 진지 오래다. 아파트에 살면서 나이 든 분도 언제 돌아가셨는지 알 수가 없다. 보이지 않아 소식을 엘레 베이트에서 물어보면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금 사는 세상은 정이 없고 삭막하다.
나는 가끔이면 예전 살았던 그날이 그립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이... 나이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