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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품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그림일기를 씁니다

70 대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삶의 즐거움

by 이숙자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길만 건너면 동네 서점이 있다. 가까운 곳에 서점이 있어 절친 친구가 옆에 사는 듯 친근하고 반갑다. 유안진 교수님의 책에 '지란지교'에서 처럼 "저녁을 먹고 나면,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있다. 얼마나 소박하고 정겨운 표현인지.


서점은 바로 내게 그런 친구와 같다. 서점에 가면 매대에 누워 있는 책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말을 걸어온다.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할 때 서점에 가면 위로받을 수 있는 책이 있어 마음의 피난처가 되어준다. 가끔씩 서점에서 작가들 강연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혜택도 본다. 코로나 19가 심하지 않았을 때는 자주 있었던 일이다.


지난 5월 말, 이곳 서점에서 '호랑이 바람' 외 다수의 그림책을 출간한 김지연 작가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다 자란 우리 집 환경에는 그림책과 친할 일이 없었다. 김지연 작가의 강연을 듣고 책이 나오기까지, 자연에 대한 관심과 애정, 특히 판화로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하나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보이지 않는 이 면 이는 많은 노력과 수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강연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도전하도록 안내해 주었다.


70대의 나이에 그림일기에 도전하다


▲ 여름 대바구니에 차 도구를 가지고 다닌다.ⓒ 이숙자


김지연 작가는 강연이 끝나고 희망자에 한해서 그림일기 쓰기 지도를 해 주신다고 했다. '어머나' 이건 무슨 횡재란 말인가!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 했나. 나는 예전부터 글을 쓰고 글 옆에 간단한 삽화 하나쯤 그려보고 싶은 희망을 늘 했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은 글쓰기를 시작할 때 미국 모지스 할머니가 지은 <인생에 늦은 때란 없습니다>란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 일이다. 그분은 76세부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미국의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사람은 원래 탁월한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손재주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한번 하려고 결심을 하면 노력하고 집중한다. 정말 사람 사는 일은 의도치 않아도 느닷없이 우연으로 만난다. 우연은 또한 필연이 되기도 하고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강연 끝난 후 서점에서 만난 어떤 분 신청을 받았다. 신청한 회원이 만나는 장소는 그림책 엔이란 책방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금요일 모인다고 했다. 다음 주 시작하는 날 참석해 보니 모두가 프로처럼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써서 초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림일기를 쓰고 매주 작가의 칭찬 한 마디가 날개를 달게 해 주었다.


작가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따라 우리는 일주일에 3일 정도 그림일기를 쓰고, 만나서 읽고 설명을 한다. 일기라는 것이 자기 생활을 기록하는 것이라서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니 때론 눈물범벅이 되어 같이 울어주고 서로 위로가 되어 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안고 살아야 하는 본인의 십자가가 있기 마련이다.


김지연 작가는 라이브 방송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공감하면서 울고 웃는다. 그런 시간을 가질 때마다 마음이 울컥울컥 할 때가 많다. 사람은 서로가 응원하고 공감해 줄 때 느끼는 감동이 크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이기심이 많아도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삶의 가치를 갖고 사는 사람도 있다. 바로 김지연 작가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자기 삶을 내어 주는 일이다. 그래서 마음으로 체감하는 울림이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서로가 긴 세월을 같이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인연인 듯 친밀하다. 삶을 나누고 공감하니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것을 세상과 연결해서 산다는 것은 영원히 남는다는 말이 있다. 자기만을 위한 이기심은 자기와 함께 소멸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세상과 연결을 하고 살아갈까. 나머지 내 삶의 숙제일 것 같다.


"사람은 나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중간중간에 반짝이는 것 때문에 살아간다. 그게 그림이었다. 내 삶을 구현하기 위해 끓임 없이 공부하고 훈련을 해야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발원이 무엇인지 계속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김지연 작가가 본인의 인스타그램에서 하신 말이다. 머리를 꽝 하고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울림이 왔다. 작가는 그림일기 한 가지를 택해서 자기화를 시키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코로나 19가 나에게 건네는 말


▲ 틈나는 대로 수를 놓고 소품들을 만든다.ⓒ 이숙자


내가 수놓기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 걸 아는 김지연 작가가 권유한 책 <할머니의 자장가>를 읽고 생각했다. 책 내용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품인 수놓은 것, 레이스 뜬 것과 할머니의 살아온 삶을 손녀가 할머니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듯 쓴 책이다.


나는 오랫동안 수놓고 바느질해 온 내 삶의 흔적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코로나 19의 재확산으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목표를 가지고 시간을 잘 조율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확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놓아두면 자칫 사장시킬 수 있는 내 손길이 베여 있는 시간들을 기록하고 싶어 졌다.


수놓은 작품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삶은 역사로 이어지고 기록으로 남는다. 처음부터 완벽함을 바라기보다는 천천히 내가 살아온 날들을 기록하려 한다. 내 유품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 새로움에 도전한다. 삶은 도전이다. 도전을 하고 살아가는 삶은 항상 꿈을 꾸게 한다.


나는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사느라 바쁘다. 내 삶의 길이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몰라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딱따구리가 겨울을 나기 위해 고목나무에 구멍을 내고 도토리를 저장하듯' 내가 가진 보물을 내 동굴 안에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 꺼내어 세상과 연결하는 끈이 되고 싶다. 코로나는 나에게 시간의 덩어리를 잘 만들라는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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