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삶을 도전하고 나 답게 하는 것들

작가 공모전

by 이숙자


나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 주부였었다. 그러나 가정에서 조용히 살기에는 내 안에 용암처럼 끓고 있는 뜨거운 열은 잠시 묻어두고 살아야만 했다. 가정이란 테두리 안에서 벗어날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 스물여섯에 결혼해서 딸 넷 낳아 기르고 아내로 엄마로 오십 년이 넘는 긴 세월은 정신없이 살아냈다. 딸들은 대학을 서울로 가면서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가고. 집안이 쓸쓸해지고 가슴 안에 휘몰아 치듯 스산한 찬 바람이 불어오는 날은 그리움이 스멀스멀 올라와 마음이 아려왔다.


딸들이 떠난 자리는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은 우울함과 연결이 된다. 나는 그때 절박한 마음으로 이렇게 살면 안 겠다 싶어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일회 일기의 삶인 것이다. 단 한 번뿐인 내 인생을 나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길 잃은 양이 길을 찾아 헤매는 심정이었다.


일없이 가만히 가정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불안해졌다. 내 마음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방황은 시작되고 끓임 없이 이것저것 많은 취미활동을 접해 보았지만 쉽사리 나의 내면을 채워주는 일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더욱이 엄마의 역활은 나를 위한 시간을 내어 주지도 않았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딸들이 대학을 서울로 가고 나는 반찬을 만들어 서울로 나르는 일이 만만치 않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었다. 그 시절은 택배도 없을 때이다. 오로지 손수 아이들 먹거리를 만들어 버스로 날라야 하는 수고로움이 이어졌다. 낯선 곳, 서울에서 딸들이 공부를 하고 있으니 안전에도 신경이 쓰였다.


나는 서울을 오고 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시간은 힘들기도 하지만 또 다른 세상을 살아보는 듯 좋았다. 항상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딸들이 아니면 내가 서울을 올라가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작은 지방 도시에서 살다가 서울이란 곳은 별난 세상이었다.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과 문화를 접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끓임 없이 머릿속에 맴돌며 나를 주시했다.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고 마음 안의 소리를 들여다보는 날이 많았다. 깨어 있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그러던 어느 날 우연처럼 찾아온 다도는 내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지금은 내 삶의 동반자가 되어 차를 마시고 공부하고 그와 연결된 음악을 듣고 자수를 놓고 차 만들기도 하고 계절에 맞는 전통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삶을 즐긴다. 내 삶의 방향을 찾은 것이다.


인간은 사색과 명상을 통해서 평온해진다. 또한 자기로부터 해방을 찾을 수 있다. 차는 정신적인 풍요와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 주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자기만의 문화와 삶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다도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부합하는 부분이 맞아서 더 매료되었고 차의 정신을 좋아한 듯하다. 차를 마시며 마음 안에 번거로움을 내려놓고 자연을 즐기며 소박한 삶을 사는 게 나는 좋다.


인생이란 살다 보면 '헛것이고 헛것이로구나'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사람 사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마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 비우고 또 비우는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이 들어가면서 하게 된다. 날마다 평상심을 갖도록 명상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고 행다를 하면 다관(찻잎을 우려내는 찻그릇)에서 따르는 물소리가 곧 명상이 된다. 차를 하고 날마다 습관처럼 하게 되는 나만의 삶의 방식이다.


다도 나에게 많은 걸 도전할 기회를 주었다.

대학공부를 할 수 있었고 자수를 배우고 자수 선생님이 되도록 환경이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차는 종합예술이었다. 자수도 소품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다도를 통하여 다양한 삶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나는 둘째 딸아이의 아들을 데려다 7년 동안 키우면서 원광대 차 문화 경영에 입학을 하고 4년 동안 온라인 수업으로 공부를 하고 학사 졸업장을 받았다. 내 나이 59세 때 일이다.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도전이었다. 야생화 자수 놓기도 10여 년 동안 했었다.


차는 일상의 내 삶이다. 날마다 차를 마시고 조용히 마음을 다스린다. 나는 모임을 가는 곳마다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차 나눔을 한다. 한편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문화를 공유한다는 생각을 하고 즐긴다. 야생화 자수 다포를 깔고 들꽃 한 송이 꽂아 놓고 차를 마신다. 차 마시는 시간은 단 오분이지만 마음은 천년의 여유를 느끼게 해 주는 마법 같은 시간이다. 사람들이 더 좋아해 주니 내가 더 기쁜 일이다.


막내딸까지 결혼하고 나니 내 삶에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운 자유로움이었다. 내게 찾아온 한가한 시간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겨울부터 글쓰기 수업을 하고 지금은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여유로움을 누린다.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살고 있는 듯 기쁘다. 언론사에 송고한 글이 채택이 되어 원고료가 쌓이고 있다.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늦은 나이에 글도 쓰고 돈도 생기고. 그 돈은 적은 돈이지만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지금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김지연 작가와 함께 하는 그림일기 시간은 또다른 특별함이 있다.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쓰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색다른 일이다. 그런 매력에 나는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쓴다. 때로는 시간이 나면 수를 놓아 작은 소품을 만들어 지인에게 선물도 한다.


날마다 일상이 바쁘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내가 만들어 놓은 나의 동굴 안에 내 삶을 나답게 살아가려 한다.


나이 많은 사람이지만 젊은 사람과 친구하며 젊은 사람으로 산다. 내 삶이 다 하는 날까지 나는 내 이름을 가지고 나로 살아갈 것이다. 나의 삶은 늦은 나이의 도전이지만 인생에 늦은 때란 없다 생각으로 살아내려한다.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지 않을까... 나는 나답게 산다.


행사장에서 차 나눔을 하기 위한 녹차 찻자리 세팅

keyword
이전 09화나도 카페에서 글을 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