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케시
엄청난 건조함이다.
더위는 적응됐다. 오후 2시 전후에 외출을 삼가고 쉬는 시간엔 강가에 몸을 담가 열기를 식혀준다.
인도에 온 지 2주가 지난 이 시점, 떨어지는 물방울을 본 것은 고작해야 15분가량이 전부다. 그것도 아주 미세하게 흩날리는 분무기 비. 이곳의 건조함은 믿을 수 없다. 40도를 육박하는 초 고온임에도 불구하고 땀 한 방울이 안 난다. 몸이 바싹바싹 마른다. 옷이 땀에 젖을 틈이 없는 건지, 몸이 체온유지보다 수분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에 더 주력인 건지 땀이 안 난다. 덕분에 옷은 항상 뽀송뽀송하다.
이틀간 이어진 산불이 도시를 고소한 탄내와 하얀 연기로 가득 매웠다. + 디폴트로 깔려있는 모래 먼지로 거리는 항상 황야의 서부영화처럼 노란색 필터가 써져있다. 이것들은 이내 엄청난 양의 코딱지를 만들어낸다.
이곳의 코딱지는 한국의 것과 다르다. 한국에서는 말랑말랑한 젤리 같은 식감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으면 마디 끝에 착 하고 달라붙어 떼어내기 수월하지만, 인도의 그것은 증발하고 응축되어 자칫 잘못하면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강도가 된 채로 코 내벽에 간신히 붙들려있다. 가끔은 잘 마른 것이 날숨과 함께 발사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호흡법(프라나야마)과 코 세척이 발달하지 않았나 싶다.
사트 카르마(Shat Karma)는 아유르베다*에서 이야기하는 신체정화 및 세척 방법들의 총칭이다. 코를 세척하는 네티(Neti), 식도를 세척하는 다우티(Dhauti)등 여섯 가지가 있는데 이날은 코세척을 실시했다. 우선 용도에 맞게 제작된 용기가 필요하다. 입소식 때 받은 가방에 웬 주전자가 있나 했는데 이런 용도였구나. 용기에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물 1L당 소금 1Tbs(약 15g)을 탄 소금물을 가득 담아 주둥이를 코에 박아 넣는다. 이 끔찍한 의식은 코 한쪽당 한 주전자의 물이 반대쪽으로 모두 빠져나올 때까지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목으로 넘어가는 양이 꽤 된다(점점 기술이 늘어 덜 먹음ㅎ). 새벽 6시 반… 속이 느글거리고 기분이 매우 언짢다. 약 40분간 코 세척을 한 뒤 교실로 올라가 이런저런 자세와 호흡법으로 남은 콧물 빼기에 열과 성을 다했다. 비강이 활짝 열린듯한, 중독적인 상쾌함. 채은이는 드디어 파파야의 꼬릿한 향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반나절 뒤 다시 코딱지가 잔뜩 생겼다.
*아유르베다(Ayurveda) - 기원전 6세기 수슈루타가 그전에 말로 전해져 오던 인도의 전통 의학과 고대 힌두교의 전통 의학을 집대성해서 쓴 의학서.
오늘은 드디어 일요일!! 아침 7시 근처 사원으로 현장학습을 다녀온 뒤 하루종일 자유시간이다. 하얀 지프에 옹기종기 올라타 신나게 음악을 들었다. 생각해 보니 인도에 와서 음악을 들은 적이 별로 없다. 항상 어떤 소리가 들리는 나라인지라 귀가 지루할 틈이 없는 탓인 듯. 에헤라디야
역시 노는 게 제일 좋아.
갑자기 후굴 대결.
한껏 신이 난 Veronica 이모.
간만에 카메라를 들고 나온 덕에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스스럼없이 도움을 주는 것처럼, 거침없이 부탁을 하는 어머니들의 부름에 마을 청년회장이 되었다. 몇 명은 그새 프로필을 바꿨네. 호호
평일 저녁시간 길에서 마주친 동급생 Uma와 Jaya이모님들께서 이번 일요일, 함께 폭포에 다녀오자 한다. 흔쾌히 좋다 하니 아이처럼 신나 하는 두 사람. 폭포에 가기 전 어떤 사원에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산사태로 돌무더기가 쌓인 다리를 몇 개 건너, 꼬불꼬불 천길 낭떠러지 도로를 한 시간을 달렸다.
올라오는 길에 차가 꽤 막혔는데 모두 이리로 오는 길이었나 보다. 스쿠터를 간신히 주차하고 사원 입구로 향했다. 1시간가량 뙤약볕과 매연에 지친 우리는 사탕수수 주스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정말 언제 먹어도 이상한 맛.
이거 참 곤란하게 됐다. 신발을 맡기고 태양에게 달궈진 바닥을 터벅터벅 밟으며 사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또 다른 엄청난 인파를 마주쳤다. 다들 차분히 차례를 기다린다. 족히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미련 없이 포기.
는 무슨. 슬쩍 고개만 내밀고 안을 둘러보자는 말에 두 인도 아주머니는 “지금부터 우리는 외국인이야. 영어 못 알아듣는 거야”라며 자기 암시와 엄청난 태세전환을 시전 한다. 불같이 화를 내는 인파와 “그냥 뚫고 들어가”라며 웃는 주변 구경꾼을 지나쳐 그들은 안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나와 채은이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밖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돌아섰다.
Shree Neelkanth Mahadev Temple. 이곳은 파괴의 신 시바를 기리는 사원이다. Neel은 ‘파란색’을 Kanth는 ‘목’을 뜻하는데 파란색 목은 시바의 무기 삼지창과 함께 그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태초, 우유의 바다에서 생명수(암리따)를 만들기 위해 모인 시바와 여러 신들은 만다라 산을 가져다가 거대 뱀 ‘바수키’로 묶어 간이 믹서기를 만들고 바다에 약초를 잔뜩 던진 뒤 휘졌기 시작했다. 이때 암리따가 나오기 전 ‘소원을 들어주는 소’, ’천상의 요정들‘, ’사랑과 아름다움‘ 등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중에는 세상을 파괴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독 ’할라할라(HaalaHaala)‘도 있었다. 시바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이 독을 마셔버리고 그의 배우자 파르바티가 독이 전신에 퍼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바의 목을 움켜 잡았다. 그 독이 시바의 목에 머물러 푸른 목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매주 월요일은 시바에게 기도를 드리는 날이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으나 지정된 요일에 기도를 하면 소원성취가 더 잘 이뤄지거나 하나보다. 요일마다 기도받는 신이 다르다. 하지만 오늘은 한 달 중 단 하루, 일요일에 시바를 찾아가도 되는 날이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반납하고 이리로 모이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주변 폭포 중 물놀이를 할 만한 곳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웬만하면 그냥 놀까 했지만 너무나 남탕이라 조금 망설이다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두 아주머니는 한 시간을 더 걸어 올라야만 있는 폭포에 다녀오고 우리는 아랫물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배가 살살 고프다.
계곡 옆 삼계탕집이다. 세계적인 조미료 회사에서 만드는 인도의 국민 볶음면 ‘매기’. 기안84처럼 맛이 한 껏 응축된 라면 냄비를 장작불에 올리고 주머니칼로 토마토와 양파를 잘라 넣어 라면을 끓인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인공눈물과 비타민을 사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니 어느새 저녁.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다. 다음 주에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일출을 보러 간다는데 패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