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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May 27. 2024

제사의 나라

리시케시


오늘은 드디어 요가원에 입소하는 날이다.


हिंदी : 압쎄이 멜킐 아차 라가 [만나서 반가워]


뭐지 이 익숙한 느낌. 아! 훈련소에 가기 전 날의 기분이다.
양발 운전 신기해

 체크아웃을 한 뒤 식사를 하며 요가원 매니저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때마침 지금 공항에 픽업 간 차량이 하나 있어 시간 맞으면 타고 오라는 것. 이제 막 릭샤를 타러 나가는 길이었는데, 나이스타이밍. 약간 서둘러 차량에 올랐다. 공항에서 픽업한 젊은 여성 옆에 채은이가 앉고 나는 앞 좌석에 앉았다. Ankita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인도 남부 하이데라바드 (Hyderabad)이라는 지역에서 왔고 직업은 선생이며 그곳의 날씨는 여기보다 10도가량 더 덥다고 한다. 산길을 꼬불꼬불 돌아 강을 건넌 뒤 30분쯤 후 요가원에 도착했다. 본인은 2종 면허증 소지자라 잘 모르는데 원래 운전을 양발로 하나요?

아주 마음에 듦

 위대한 문명의 역사적 증거. 빵빵한 에어컨이 나온다. 이전 숙소는 미지근한 바람만 나와 애를 좀 먹었는데 이곳에선 쾌적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약 한 달간 지낼 곳이니 짐을 모두 풀고 마음 편히 낮잠을 한숨 잤다. 복도바닥은 깨끗한 타일에 매일 물청소를 해서 편하게 맨발로 다닐 수 있다. 아무 때나 내려와서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식사도 제공되며 무엇보다도 정수기가 있다. 얼음장처럼 시원한 물을 일주일 만에 마셨다.

집 앞

 아디요가(Aadi yoga school Rishikesh)는 채은이 지인의 추천으로 오게 됐다. 이곳 리시케시의 일주일은 요가아쉬람(요가원) 스케줄에 맞춰 돌아갈 만큼 이곳은 요가와 종교활동에 정성인 동네다. 이곳은 갠지스강(강가 Ganga)이 시작되는 지점, 인도인들에게 아주 신성한 곳으로 우리 요가원의 인도인 학생들은 첫날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마자 강가에 몸을 담그러 갔다. 듣기로는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는 인생의 통과의례라고 한다. 나이가 마흔이 조금 넘어 보이는 분은 6살 때 들어가 보고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Deep Deep water에 간다 해서 발이 안 닿는 깊은 곳에서 다이빙을 하나 싶었지만 무릎정도 오는 높이의 물에 주저앉았다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동네에선 더운 날 찬 물에 들어가는 게 흔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신기하네.


우리는 200시간 TTC(Teacher Training Course 지도사 과정)를 진행. 이번 기수 대부분은 우리와 같은 시간의 과정을 밟는다. 하루 일정은 이렇다.

5:45 - 프라나야마, 만트라 찬팅, 사트카르마 (호흡법, 주문외우기, 정화)
6:45 - 요가 해부학
8:00 - 하타요가
9:30 - 아침식사
10:30 - 요가철학 (베다경전)
13:00 - 점심식사
14:00 - 자습 (꿀)
15:30 - 아쉬탕가 빈야사
17:30 - 명상

 새벽 5시 기상…. 오늘이 3일째. 철학 수업이 끝나면 그대로 곯아떨어져 어지러울 때까지 낮잠을 잔다. 그래도 그새 사람들이랑 꽤 친해지고 수업내용도 어렵지 않아서 수면 리듬만 잘 맞춰지면 잘 지낼 것 같다. 향이 가득한 음식이 처음엔 기절초풍 꿀맛이었는데 이젠 물려서 못 먹겠다… 요기(요가하는 사람)에게 건강한 음식이란 수련의 일환이므로 식사를 거르기도 눈치 보인다. 휴일엔 사람들이랑 스쿠터를 빌려 폭포에 다녀온 뒤 시내에서 맛있는 것 좀 사 먹어야겠다.

Little budha cafe

굉장히 신성하고 샨티한 느낌. 리시케시에 오기 전 찾아봤던 카페 Little Budha Cafe. 주변에 Om freedome cafe라던지 유명한 카페가 모여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저녁 제사를 지내는 작은 사원 앞에서 구경을 하는데 작은 소 한 마리가 다가온다. 친근한 눈빛에 살짝 손길을 내어주니 바로 다가와 옆구리에 안긴 채로 수 분을 있다 돌아갔다. 토닥토닥 피부가 부드럽다.

2024/05/01

 첫날 시작. 채은이는 바로 춤 선생님 출근. 오늘은 수업의 기초적인 이론과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저녁엔 입소 기념행사가 있다. 인원이 많아 글씨가 잘 안보이자 칠판을 버리고 바닥에 둘러앉아 마루를 칠판 삼아 수업을 들었다. 사진 속 하얀 옷을 입은 호주출신 Tilly는 그냥 누워서 수업을 듣는다. 아주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 하지만 출석률 99% 달성과 마지막 시험(각 과목 30분 시범수업)이라는 조건에 수료를 인정해 주는 엄격함도 있다.

드디어 식사시간.

 아침식사는 항상 과일 + 한 가지 메뉴가 나온다. 사진에 있는 것은 쌀을 으깬 뒤 찐 Poha(Rice Flake)를 여러 볶은 채소와 같이 섞은 것이다. 고소하고 쫀득한 볶음밥 같은 맛. 아침식사는 항상 입맛에 맞게 나온다. 문제는 점심, 저녁 식사…. 달(콩 수프)은 같은 베이스에 강낭콩을 넣은 것, 렌틸콩을 넣은 것, 기타 등등 콩을 넣은 것 등 항상 이런 식이야. 이제는 정말 맛있게 먹기가 힘들다… 그래도 여기 요리사친구가 손맛이 좋아 맛은 좋다. 단지 제육볶음 먹고 싶을 뿐…

종묘제례악

  입소식이 시작됐다. 모두 각자 흰 옷을 입고 미리 준비된 자리에 앉아 향신료가 가득 든 접시를 받았다. 무슨 향인가 싶어 코를 갖다 대니 냄새를 맡으면 안 된다고 한다. 향을 맡는 것은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음식을 훔치는 일이라고… 대화를 멈추고 차분이 자리에 앉자 이내 의식이 시작됐다.

선생님

 긴 머리에 핑크색 옷을 입은 남자는 아마도 전문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사제인 듯하다. 의식을 위한 물품이 양손 가득 박스로 서너 개가 넘는다. 가장 우선으로 이마에 터머릭으로 보이는 노란 가루와 정체 모를 붉은 가루를 기(ghee)에 개어 이마에 점을 찍어준다. 부가적인 설명이 없어 의미는 알지 못했지만 맥락상 건강과 지혜의 축복이라 대충 유추해 본다. 결혼한 여성이나 그저 멋으로 찍는 빈디(Bindi)와 마찬가지로 미간에 찍는 이유는 ’제3의 눈‘을 활성화 하기 위함이다. 이후 명상선생님에게 듣기로 ‘제3의 눈’은 그저 상징적인 표현일 뿐 각 두 눈으로 보는 양분화된 세상을 하나의 깨닮음으로 보라는 가르침이다.

 이 남성은 카스트제도가 공식적으로 남아있다면 ‘브라만’ 계급의 사람인 듯하다. 정치와 군사를 담당하는 ‘크샤트리아(왕, 군대)’ 보다 높은 브라만은 종교의식과 제사를 담당하는 최상위 계급이다. 과거 시타르타(부처)가 브라만의 아들인 점을 시사해 봤을 때 어린 시절 그가 출가해 승려의 길을 걸은 것은 집안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맨날 똑같은 일만 하고 의미 없다”라는 생각은 풍요롭고 명예로운 삶에서 그가 느낀 염증 같은 것이었을 테지. 지금으로 치면 김정은의 하나뿐인 아들이 지도자 위치를 세습하지 않고 농부가 된다는 발언일 것이다. 그 견고한 세계관의 시대에서 참으로 깨어있던 현자인 듯하다.

 오른쪽의 남성이 명상선생님인데 아주 멋진 사람이다. 가볍지만 단단하고 지혜롭지만 여유롭다. 무언가 깨달음을 갈구하는 사람의 표본 같은 느낌. 여러 경험을 통해 복잡한 사고에서 자신만의 간단하고 명료한 답을 찾아낸 듯한 말을 많이 한다. 패션감각이 좋고 음악을 사랑하는 아저씨.

캠프파이어 인도어

 한국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다. 4층짜리 건물 실내에서 장작으로 불을 피우고 각종 가루를 휘날리며 다 같이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오후 4시. 아까 받은 향신료접시는 제사장의 신호에 맞춰 각자 한 줌씩 불속으로 던진다. 학생들과 선생님, 숙소 관계자들까지 모두 공양을 마치고 꽃이 한가득 든, 촛불이 올라간 철제 접시 하나를 세 명씩 짝 지어 불구덩이 위에서 세 바퀴씩 돌린 뒤 기도하는 의식이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조상들께 제사를 올릴 때 제사술을 촛불 위에서 돌리는 행동과 매우 비슷하다. 우리는 술을 신이 되어버린 인간에게 바치듯이 이들은 준비한 꽃(말라)을 불 근처에 두어 이 세계의 신들에게 정성을 표한다. 안정성과 완벽의 숫자인 3에 어떤 종교적 의미를 담는 것도 깨나 닮았다. 채은이는 ’ 엄마가 봤으면 큰일 났을 일‘이라며 상황을 잘 요약해 줬다.

이미 35도가 넘는 뙤약볕 날씨의 불 열기까지 더해지니 모두 땀을 흠뻑 흘리며 의식에 몰입했다.

Aadi

 Aadi yogi(아디 요기)는 산스크리트어로 ’첫 번째‘를 뜻하는 Aadi와 요가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Yogi가 합쳐져 ’첫 번째 요가 수행자‘라는 뜻이다. 유지의 신 ‘비슈누’의 배꼽에서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탄생할 때 비슈누의 이마에서 탄생한 신이 파괴의 신 시바(Shiva), 그가 지구뿐 아니라 온 우주를 위해 만들어 낸 것이 요가다. 그러므로 최초의 요기는 요가 창조자인 시바가 된다. 그리고 재미난 게 시바에게 요가를 배워 두 번째 요기가 된 것은 태양의 신 수리야(surya)다. 때문에 요가시퀀스에서는 태양에게 인사를 드리는 ‘태양경배 (수리야 나마스카라 Surya namaskara)’ 가 선행된다.

 아무튼 앞으로 배울 내용이 한가득이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쉬는 시간마다 자꾸 동네를 구경 다니는 것이 딱 대학교 입학했을 때 느낌 같기도 하다. 친구들과 차근차근 친해지고 같이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MT도 가고, 과제도 하고.. 밤도 새고….  앞으로 한 달간 잘 지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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