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Organic Growth를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
몇 달 전 조카(8세) 손에 이끌려 신기한 곳을 방문했다. 포켓몬 카드를 사고 싶다며 함께 간 곳의 이름은 '빵꾸똥꾸 문구야'. 어린이들이 주 고객인 문방구라고 하지만 너무나도 직관적이고 눈높이에 맞는 이름이라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선명한 색채들이 눈에 띄는 간판과 외관까지 한 번 보고 들으면 여간해서는 잊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가게에는 8~13세 정도의 여자, 남자아이들이 대여섯 명 즘 있었다. 포켓몬 카드와 이런저런 문구 상품들, 장난감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내가 가게를 방문했을 때 발견한 포인트는 두 가지였는데, 1. 문방구인데 무인가게라는 것, 2. 포켓몬 카드가 엄청나게 잘 팔리고 있었다는 것. 특히 포켓몬 카드는 다양한 패키징 구성을 하여 판매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조사해 보니 포켓몬 카드상품 판매가 '21년 기준 포켓몬코리아 전체 매출의 75%가량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IP유니버스가 막 나왔던 시점이라 특히 관심이 많았는데 실로 놀라운 수준이었다. 카드 상품이 법인 전체 매출을 하드캐리 하고 있었다. 포켓몬스터에 대해 느낀 부분들은 당시 브런치 글로 발행하기도 했으니 참고.
https://brunch.co.kr/@tommyhslee/99
다시 빵꾸똥꾸문구야로 돌아가보자. 빵꾸똥꾸문구야는 오피스넥스라는 사무용품 법인에서 2021년 8월 론칭한 문구점 신사업이며 놀랍게도 무인매장이다. 다만 문구점의 주 고객층인 초등학생들은 무인결제에 크게 어려움을 못 느끼는 듯했고 도난이나 파손은 발생할 수 있지만 인건비, 관리와 등 관련 경제적 손익을 고려하여 이렇게 설계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양한 구색을 갖추어 주로 bed town에 위치한 빵꾸똥꾸문구야는 초등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오픈 10개월 만에 100호점을 돌파한 뒤, 2023년 8월에는 300호점을 넘어섰다. 매우 빠른 성장 속도다. 100호점을 돌파하는데 10개월이 걸는데 이후 불과 12개월 만에 200호점을 추가로 오픈한 셈이니 말이다. 오피스넥스의 선장덕 대표는 '23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빵꾸똥꾸문구야의 목표 매장을 2000개라고 밝힌 바 있다.
선 대표는 "전국 초등학교 중 학생 수 500명이 넘는 곳이 2000개 정도 된다. 이 정도 규모여야 점주 손익이 맞춰진다. 2000개 매장까지 늘릴 계획"이라며 "10대 손님도 이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 시스템을 구축했고 모바일 상품권을 개발하고, 자체 포인트 '빵똥포인트'를 도입해 재구매율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매일경제)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5140694?sid=101
목표라고는 하지만 현재까지 빵꾸똥꾸문구야가 나타낸 성장속도를 감안하면 전국에서 적어도 지금보다 많은 빵꾸똥꾸문구야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무용품 유통기업 오피스넥스]
빵꾸똥꾸문구야의 운영법인인 오피스넥스는 2000년 설립된 사무용품 유통기업으로 올해로 25년 차 중소기업이다. 사무용품 유통업계 1위는 아니지만, 아래의 표를 보면 매년 빠른 속도로 회사의 매출 볼륨을 끌어올리고 있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특히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회사의 CAGR은 +39% 수준이며 특히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에는 72%라는 놀라운 매출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오프라인 사무용품 업체가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매출 성장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
또한 회사는 2019년 흑자전환 이후 작지만 영업이익 규모도 점차 늘려가고 있다. 1~2%대의 낮은 영업이익률이지만 매출확대와 영업이익 확대를 동시에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그럼 오피스넥스가 업계에서 특출 나게 비즈니스를 잘했던 것일까? 이 경우 오피스넥스와 유사한 기업들의 상황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업계 전체가 호황이었다면 오피스넥스가 특별히 뭔가를 잘했다기보다 산업 성장의 낙수효과를 누렸을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업계와 경쟁사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는데 내가 업계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거기까지 파고들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고 오늘은 경쟁사를 숫자 중심으로 살펴보자.
아래 그래프는 업계 선두기업들인 오피스디포와 알파문구의 매출, 영업이익이다. 업계 1위인 오피스디포의 경우 2022년 매출액이 1,900억으로 오피스넥스보다 3배 이상 크다. 명실상부한 사무용품 업계의 톱티어다. 매출 성장도 꾸준하다. 매출액이 1,200억 원 수준이던 2018년부터 2022년까지 CAGR은 12%다. 오피스넥스보다는 낮지만 오피스디포의 절대 매출이 오피스넥스보다 훨씬 높은 점을 감안하면 4년 동안 7백억 원가량의 매출이 늘어난 셈이다. 오피스넥스 법인 2개와 맞먹는다. 오피스디포도 비즈니스를 좋은 모습을 보여온 셈이다.
반면 알파는 조금 아쉽다. 2018년 매출액이 1,192억 원으로 오피스디포와 거의 같은 수준이었지만 이후 매출액이 꾸준히 감소해 2018년~2022년 CAGR은 -4%로 역성장했다. 특히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에는 -13%의 역성장을 보였다. 2022년에는 매출액이 997억으로 1천억 원 대가 무너졌다. 원래도 정체되어 있던 시장에서 코로나 이후 유의미한 성장 또는 회복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알파문고가 특별히 운영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오프라인 사무용품 업계의 일반적인 손익 성장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모든 산업이 그렇듯 단연 온라인이다. 각자 회사의 사무용품 구매 과정을 생각해 보자. 회사가 오피스디포나 알파, 오피스넥스 등 사무용품 업체와 B2B 계약을 맺거나 개별 부서에서 B2C채널을 활용해 용품을 구입하기도 하겠지만 상당수가 쿠팡, 11번가 등과 같은 온라인몰 채널을 통해 사무용품을 조달한다. 이는 숫자로 증명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온라인 사무/문구 용품 거래액은 약 1.8조 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2019년 약 9천억 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10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CAGR을 집계하면 +19%에 이른다(2023년은 10월 누적치를 월할 하여 연단위로 계산했다). 사무/문구 용품 시장이 성장산업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4년간 온라인 CAGR이 19%라는 건 십중팔구 오프라인 market share를 빼앗아온 것이며 당연히 오프라인이 메인인 사무용품 업체들은 역성장을 보일 수밖에 없다. 보통 성장률이 정체된 시장의 경우 통상적으로 GDP Growth만큼 시장이 오른다고 예상한다. 전체 경제가 성장하는 성장률이 모든 산업의 평균 성장률이 되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무용품 산업은 여기에 속한다. 국내 GDP가 2~3%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요즘은 이것도 어렵지만) 사무용품 시장역시 적게는 이 정도에서 많아도 5% 정도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듯하다. 그렇기에 온라인이 19% 성장한다면 반대로 오프라인은 시장규모가 줄어들었을 것이고, 알파문구의 매출액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오프라인 사무용품 회사들도 온라인에 진출했을 텐데, 거기서 성장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각 업체들이 온라인 매출을 따로 발라서 공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는 판단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래 그래프에 있다.
국내 통계청은 정말 좋은 곳이다.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각 카테고리의 종합몰과 전문몰(혹은 버티컬몰) 매출 비중을 함께 공개한다. 위 표를 보면 2019년 71% 수준이던 사무용품 카테고리의 종합몰 비중은 2023년 10월 누적으로 87%까지 증가했다. 반면 전문몰 비중은 29% -> 13%로 급락했다. 쿠팡, SSG, 11번가 등 종합몰의 시장 장악력이 더욱 거대해진 것이다. 오피스디포, 오피스넥스, 알파문구와 같은 업체들은 전문몰에 속한다. 여기서도 유의미한 성장 동력을 찾기 어려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피스디포와 오피스넥스 매출성장의 배경 : In-organic Growth]
글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본 내용이다. 오프라인 사무용품 업계 3社 중 오피스디포와 오피스넥스가 성장하는 가장 큰 동인은 바로 In-Organic Growth다. 사업전략에서 회사의 외형을 성장시키는 가장 큰 두 가지 방법이 Organic Growth와 In-Organic Growth인데 Organic Growth는 말 그대로 유기적 성장으로, 회사가 영위하는 본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 추가 매출과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고, In-Organic Growth의 경우 M&A나 신사업 투자 같은 비 유기적 성장 전략을 말한다. 오프라인 사무용품과 같이 성장이 정체된 시장의 경우 Organic 한 방법으로 Growth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결국 가격경쟁, 비용절감 같은 방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이는 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구축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저성장 산업에서 In-Organic Growth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한다.
오피스디포를 먼저 살펴보자. 오피스디포는 2017년 엑셀시어라는 PEF에 매각되었다. 매각 전까지 오피스디포의 매출액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1천억 수준 왔다 갔다 하며 정체된 모습을 보였으나 매각 이후에는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출성장에 가장 큰 기인은 2019년 추진된 무림오피스웨이 인수다. 오피스디포는 매출액이 600억 원 수준이던 경쟁사 무림오피스웨이를 인수 후 합병했다. 엑셀시어가 일종의 Bolt-on 전략을 활용한 것이다. PEF 아래에서 오피스디포는 자체 비용절감, 매출 확대를 이뤄내기도 했지만 매출 성장에 가장 큰 부분은 인수합병이었다. 아까 오피스디포를 이야기할 때 이 회사의 매출액이 2018년 1,200억 원에서 2022년 1,900억 원으로 700억 원가량 늘었다고 했는데 상당 부분이 무림오피스웨이의 영향이었을 것으로 보인다(19년 2월 인수, 7월 합병으로 별도 매출은 기간 분할하여 반영된 것으로 추정).
추가적으로 이런 오피스디포를 '21년 또 다른 PEF인 어피니티가 보유한 서브원에서도 인수하려고 시도하는 등 볼트 온한 회사를 또다시 볼트온하려고 하는 재밌는 상황도 있었다.
다음은 오피스넥스다. 오피스넥스의 경우 M&A와 신사업 투자라는 수단을 모두 동원했다. 신사업의 경우 앞서 오늘 사무용품 산업 이야기를 시작한 계기였던 빵꾸똥꾸문구야가 대표적이다. 회사는 정체된 사무용품시장에서 벗어나 문방구 시장으로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을 확장했다. 물론 문방구 시장 역시 줄어드는 학령인구로 장기 성장성이 높은 시장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나는 오피스디포라는 사무용품 회사가 갖고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잘 살릴 수 있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규모를 줄이고 무인점포로 비용을 낮춘 후 이를 통해 가맹허들 역시 낮춰 빠르게 지점을 확대하는 것 역시 좋은 전략이었다. 기존 오피스넥스의 사무용품 매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평수에 입지도 CBD같은 사무지구에 입점했었다면 문방구는 상대적으로 작은 매장과 주거지역에 입점하게 되니 회사 입장에서 노하우와 경험은 활용할 수 있지만 시장은 겹치지 않는, 즉 cannibalization이 발생하지 않는 영역을 잘 공략한 것이다.
신사업은 빵꾸똥꾸문구야 뿐만은 아니었다. 2023년에는 디지털 단말기를 통해 사무용품과 간식 등을 판매하는 팬트리 24라는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각 회사에 팬트리 24 단말기를 설치하면 사무용품이나 간식을 직원들이 주문하고 회사는 이를 해당 사무실에 배송해 주는 형태다. 직원 개개인의 수요와 취향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과 직접 구매하러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온라인의 장점을 잘 반영한 사업인데, 비즈니스가 잘되는지 안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꾸준한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In-Organic Growth 전략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회사는 M&A에도 적극 나섰다. 2019년 오피스웨이를 인수하고, 2020년에 오피스큐도 인수했다. 과거 내용은 전자공시가 없어서 정확히 얼마큼의 매출 기여가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작게는 20억에서 많게는 40억 정도의 매출액 기여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 든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8/0004629117?sid=101
[마무리하며]
사무용품 업체들을 통해 정체된 산업에서 기업들이 각각 어떤 모습을 보여왔고, 어떤 In-Organic Growth 전략을 전개해 왔는지 아주 간단하게 분석해 보았는데 많은 시사점이 있었다. 사실 이런 In-Organic 전략이 Organic Growth 전략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고 가치가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종종 만난다. 본업에서 잘하고 본업에서 성과를 내야 진짜지 다른 회사 사 와서 붙이거나 다른 영역에서 성과를 내는 게 큰 의미가 있냐는 식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마블(Disney), 페이팔(ebay), 안드로이드(Google), 유튜브(Google), 인스타그램(Meta) 등은 모두 M&A를 통해 회사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기업에게 성장은 필수적이고 그 목표에 Organic과 In-Organic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회사의 본질을 잘 지키면서 외형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는 그 무엇이라도 넓게 보고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성장이 정체된 회사라면 더더욱이 그렇다.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무용품 시장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정말 빠르고 바쁘게 움직여가는 기업들을 만날 수 있다. 생존을 위해, 성장을 위해 밤낮을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기업들의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는 듯하다.
*기타 참고자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8/0004356224?sid=101
https://www.p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3391
https://www.thebell.co.kr/free/content/ArticleView.asp?key=20230913151847748010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