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생, 인생을 말하다

by 팔구년생곰작가




머리말


갑자기 뜬금없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제목조차도 나이에 맞지 않게 뜬금없이 인생을 말한다고 썼지만, 어쩌면 내 또래가 되는 친구들이나 현재 과다 방전되어 살아가는 이 시대 청춘들과 같이 공감하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하였다. 나 또한 현재도 끊임없이 무엇을 할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 성공할 것 인지 항상 고민하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냥 일상생활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들 또 지금의 내 나이의 고민되는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연애, 직업, 결혼 현재 고민하는 것들, 작지만 소소한 이야기나 바쁜 일상 속 우리가 놓치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편하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덤으로 같이 힘 좀 내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달려온 시간, 잠시 멈추다


나는 간호사다. 그것도 생소한 남자 간호사. 몇 년 전만 해도 남자간호사 보기가 힘들었지만, 요즘은 병원에서 버티며 일하고 있는 똑똑하고 책임감 있는 후배님들이 많아져서 여러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병원생활을 그만두고, 공무원 준비를 한다는 핑계에 퇴사하여 공부를 하였지만,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다지 오랜 시간 집중을 하지 못했다. 결과는 보나 마나였다. 남자가 한 말이 있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한다고 하였지만, 그 순간에 나는 솔직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매일매일 병원에서 일은 전쟁터 같았다. 비교적 바쁜 큰 병원은 아니었지만, 응급실 근무 특성상 일하고 퇴근하면 집에서 곯아떨어져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쉬는 날도 온전히 쉬지 못하는 그런 나날들이었다. 일을 그만두고도 마찬가지였다. 쉬고 있지만, 쉬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빨리 취업해서 돈을 모아서 결혼도 해야 하는데, 정작 마음처럼 일이 진행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을 길게 보았을 때, 나는 결코 늦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나의 페이스를 유지할 뿐 당장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되거나, 당장 돈이 없어서 벌어야 되는 어려운 상황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런 시간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고, 나 자신을 위해서 투자하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은 여유로워진 듯하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지 않아서 안절부절못할 필요도 없으며, 불안해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너무 열심히 뛰다 보면, 지쳐서 쓰러질 수 있으니, 잠시라도 숨 좀 고르고 더 단단해져서 다시 뛰는 것이다. 내 페이스대로...




모든 것이 대세다


요즘 들어 친구들이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결혼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대학을 가는 것도 다들 맞춰서 들어갔는데, 결혼도 시기 따라서 다들 가는가 보다. 혹 결혼만 그럴까, 모든 것이 유행 따라서 대세 따라서 가는 것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나라의 특성인 것 같다. 그런 면에 있어서 나는 조금 독특한 변종 같았다. 대학교도 친구들보다 늦게 들어가고 결혼도 머 생각도 안 하고 있으니 말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여자, 주식, 정치, 회사 이야기에 다들 똑같은 인생을 사는 것 마냥 재밌다. 나 또한 친구들과 만나면 재밌고, 신기하다. 너무 딱 들어맞으니 말이다. 나중에 정년퇴직하고 무엇을 할 건지 이야기해 보면 대부분 자영업이다.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열심히 살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정작 늙어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다들 우울해진다. 죽음만큼은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대세를 따라가는 것을 바라는 것은 미친 일이다. 아직도 이렇게 젊은데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무엇이 답인지 모르겠다. 나는 대세를 거슬러 살아보려고 한다. 각자의 살아온 환경 생각이 틀린데 다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언젠가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준비하자, 급하게 하지 말고 천천히.




성공하기 위한 주문


대학교 시절 ‘secret’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비교적 페이지 수는 적었지만 그래도 2시간 정도 속독해서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거기 내용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그리며 항상 생각하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훗날 내가 생각하던 원하는 이미지와 똑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는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놀라운 사례들이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조금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에너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긍정적인 생각과 에너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야 쉽지 말입니다. 지금까지 부정적인 생각이 열에 아홉은 있었을 것 같은데 무의식적으로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항상 갖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일상 자체가 긍정적이고 항상 행복한 삶이나 인생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 우리 집 상황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었다. IMF로 인해서 아버지의 회사 부도로 인해서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형편까지 갔었으니 말이다. 지금이야 형제들뿐 아니라 나 또한 앞가림이나 다들 밥벌이할 정도의 직업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힘들었다. 당연히 한 달을 못 넘기고 그만두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게 어떤 직업을 가지겠다고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냥 어려운 사람들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돈을 벌면 행복할 것 같다는 무의식적으로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 현재 간호사란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고는 있으니, 내 소원이 이루어지긴 한 것 같다. 현재의 삶의 항상 만족을 못하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맞았다. 무엇인가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신이 간절한 소망과 필요가 그곳으로 인도한 것이다. -데미안-


당장 그때 되지 못해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원하고 또 그것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면 결국에는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것을 조금 더 앞당겨서 실현하느냐, 아니면 시간이 더욱 걸릴 것인가 하는 것의 문제는 결국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지금 현재도 나는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 정확히는 아니지만 그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언젠가는 이루어져 있을 테니.




청춘에게 거는 기대는 너무도 크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 청년실업률이 높다는 말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체감 상 틀린 말이 아니다. 나 또한 여실히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9급 공무원 시험을 보러 간 날 그래도 내가 지원한 곳은 도시와 거리가 먼 지역이었다. 응시자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시험실은 수험생들로 붐볐다. 경쟁자가 이리도 많으니, 시험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 이상 그냥 허수 생일 뿐이었다. 심지어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공무원 면접을 보러 갔는데도, 사람들은 붐볐다. 결과적으로 나는 두 가지 시험에서 다 떨어졌다. 나 자신을 위로해 보려 해도 되지가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서는 너 실력이 되지 못해서 떨어진 것이 아니냐고 부채질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학교 성적도 준수하고 자격증도 따고 봉사활동도 나름 하고, 사회생활도 많이 한 것 같은데, 그래도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다른 수험생들 취업준비생들은 더 피나게 노력하고 준비하니, 거기다가 지방대 출신인 나는 수도권 명문대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중학교 친구 중에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의사로 인턴생활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가끔 서울에 올라가게 되면 한 번씩 보자고 얘기해도 거의 나오지 못하거나 나오더라도 눈 밑에 다크 서클이 내려오다 못해서 흘러내리는 피곤한 모습으로 보는 것이 다반사였다. 친구한테 “그래도 너는 의사가 되어서 대형병원에서 일하고 있으니, 성공한 것이다.”라고 얘기를 해주어도 항상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자기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기가 막힌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만 아니라 내 친구들도 이러하니, 정말 우리나라 청춘들은 경쟁사회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전사가 되지 못하면, 살아남기가 힘들어진 것 같았다. 주변에서도 더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오랜 시간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 우리는 이리도 심할 정도로 노력하고 공부하고, 스펙을 쌓아도 불안하고 힘들고 어려운 걸까? TV를 보다가 청년들이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지금도 우리나라 청년들은 충분히 도전하고 노력하는데 무엇을 얼마나 하라는 것인지 분노가 치밀었다. 무언가 성공하지 못해서 나 자신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경쟁하고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낭떠러지와 같은 절벽으로 밀어내는 사회구조에 비판을 해봐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지금도 밤늦게 공부하는 전국의 청춘들 그리고 회사에서 하얗게 불태우고 있는 젊은 청춘들에게 응원한다. “우리는 충분히 노력했고,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라고 말이다.




사랑이라 부르고, 연애라고 부르다.


내가 20살 때 1살 연상의 누나를 만난 적이 있었다. 술자리에서 친구의 소개로 만난 여자였는데, 웃는 모습이 예뻤었다. 당연히 1년 동안 좋다고 따라다녔는데, 그 당시에는 사랑한다고, 결혼하자고 했다가 군대를 가는 바람에 결국에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슬픈 기억이 있다. 전역하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여러 사람을 만나보니, 그때처럼 순수하게 사랑한다고 했었던 연애가 몇 번이나 되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문득 20살 때 만났던 누나에게 어린 나이에 사랑에 대해서 무엇인지도 모르고 얘기하며 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재밌게 웃을 수 있는 기억이 되는 것 같다. 그때는 많은 것을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사랑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보다 연애를 하는 것에 더 익숙해진 듯하다. 어떻게 보면 현재 내 연애 방식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만났었던 여자들을 떠올려보면 그래도 나를 배려해 주려고 했던 착한 사람이 많았는데, 오히려 나는 배려를 많이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랑에 대해서 지금 현재에 내가 얘기하기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고, 서툴지만 연애를 하면 누가 더 마음을 주냐 안주냐를 떠나서 그냥 후회 없이 아껴주고 사랑하면, 나중에 헤어지더라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 부르고 나중에는 연애라고 부르지 말자.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라고 부르자.




어머니의 뒷모습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혼나기도 많이 혼나고 정말 많이 맞았었다. 그만큼 엄하고 강하게 키우셨다. 하긴 다섯 남매를 키우려면 강하게 키우지 않고서는 힘들었을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덩치도 같이 커지니 어느새 어머니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졌다. 사춘기 시절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방황도 많이 하고 사고도 많이 쳤었다. 어머니는 당시에도 나를 혼내기도 하였지만, 엄마한테 많이 반항하고 화를 내었던 것 같았다. 그런 날을 위해서 항상 교회에서 기도를 하셨다. 현재는 기도의 힘인지 목사님이 되셨지만, 아무튼 속을 썩인 만큼 어머니 이마의 주름도 하나씩 늘어가기 시작하고, 흰머리도 듬성듬성 많이 나기 시작하셨다. 지금은 그때처럼 질풍노도가 아니니 속을 썩이지 않을 법도 한데 약속이 있어서 나가면 술이 많이 되어 인사불성이 되는 것이 일쑤였다. 평일 날 새벽에 출근하려고 집에서 급하게 나와 보니, 중요한 물건을 두고 온 것이 아닌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되돌아가는데, 눈이 많이 내렸던 날 집 앞에서 물건을 들고 나오셔서 직접 가져다주시려고 택시를 기다리고 계셨다. 미안한 마음에 왜 눈도 많이 오는데 밖에서 이러고 계시냐고, 괜히 투덜거리고 출근을 하였지만, 돌아가는 어머니 뒷모습에서 어느새 나이가 많이 드시고 어깨가 작아지신 것을 보며, 마음이 하루 종일 안 좋았던 기억이 있다. 현재는 좋은 아들이 되려고 술, 담배도 끊고 열심히 살지만 더 일찍 철이 들어서 잘해드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늦은 것이다.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고 행복하게 해 드리자.




친구란


고등학교 시절 지금 기억으로 정말 공부랑은 거리가 먼 놀기 좋아하는 학창 시절을 보냈었던 것 같다. 당시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이 동아리 친구들이었다. 따로 떨어져 놀기도 하고 다섯이서 재밌게 놀기도 하면서 사고도 쳤지만, 지금은 다들 어엿하게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는 나라에 역군들이 되어있다. 머 그때나 지금이나 만나면 똑같이 장난치면서 놀기도 하지만, 늘 곁에 있어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서로 사회생활하며 각자의 삶이 있으니 바빠서 연락도 많이 못하고 서운할 데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달려와 주고 서로 도와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결국은 서로에게 진심으로 대하며 배려해야지만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는 결국에는 진심이 통해야지 지속되는 것이 사실이며, 꼭 학창 시절 친구들 뿐 아니라 지인들, 가까운 직장동료들과도 그런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 그런 생각이 든다면 상처가 되는 말보다 서로에게 웃으면서 진심을 다하는 것이 어떨까?




끝맺음 말


글을 마치면서, 처음 글을 쓰려고 시작할 때는 무언가 거창하게 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내 이야기만 많이 써버린 것 같아서 송구스럽다. 혹여 문제 될 수 있거나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도록 신경을 썼지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는 핑계일 수 있으니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편하게 읽어주었으면 한다. 앞으로 글을 계속 써갈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피드백도 환영한다. 길지도 않은 짧아도 너무 짧은 글이지만 같이 공감하고 싶고,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또 이 시대에 청춘인 나와 여러분들이 힘을 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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