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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Aug 08. 2019

퇴사 후 유럽 -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2018.05.27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의 여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해안가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2차선 도로를 지나오는 길인 데다가, 입국심사까지 있다 보니 교통 정체가 심했다. 거의 다 와서 몇 시간을 움직일 줄 모르는 버스에서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몸살이 날만큼 힘들었다. 그래도 입국심사를 마친 이후에는 정체가 심하지 않아 늦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가 있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까지는 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 이동해야 했다. 조금은 낯선 풍경에서 TV나 여행책자에서 보던 익숙한 도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의 모습을 마주했을 때, 드디어 이 여행의 종착지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여러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구시가지에 자리한 호스텔을 어렵지 않게 찾았고, 체크인을 했다. 도로 정체로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유럽의 태양은 저녁에도 도시를 환하게 비추고 있어서 고민하지 않고 산책에 나섰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인지 길에 깔린 돌들이 반질반질 마모되어 노을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왠지 그 느낌이 좋아서 사람들 틈에 섞여 나도 천천히 걸어보았다. 


마지막 여행지라고 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이제 정말 한국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막막해지는 마음과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풍경에 즐겁고 신나는 마음이 상충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감정들로 복잡해졌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해안가로 향하는 성문이 있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선착장에는 수많은 배들이 질서 정연하게 정박해 있었다. 이따금 물결에 출렁이며 움직이는 배들을 따라 걷는 길 끝에는 작은 등대가 있었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는 등대까지 이동하니 더 이상 걸음을 옮길 곳이 없었다. 해가 지는 듯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과 짙은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바다, 그 바다를 바라보는 산 아래로 오밀조밀 위치한 주거지의 모습들이 참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잠시 그 풍경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꽤 오랜 시간을 그곳에 있었다.

한국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해 왜 이렇게 고민이 많은지를 생각해봤다. 퇴사를 하기 전에 나는 너무 '일'에 매달렸다. 일이 곧 내 정체성이고,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과 관련된 모든 것에 완벽하고 싶었고 실수나 오점을 남기는 게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때문에 항상 타인의 평가와 기준에 쉽게 흔들렸고, 모든 결정과 선택에 '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열심히 할수록 되려 상처 받고 오해만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나는 정말 내가 했던 일을 열렬히 원했고, 사랑했다.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었고 여건이 좋지 않았음에도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은 사라지고 가장 피하고 싶은 직업군이 돼버린 현실이 아이러니하고 안타깝다. 그렇지만 내가 이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아니,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를 생각하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행을 하는 동안 명확해진 사실은 무엇을 하든지 '나'를 중심에 두자는 것이다. 나를 아껴주고, 생각해주는 것은 타인이 아닌 바로 '나'이다. 나의 가치와 정신 건강을 해치는 환경 속에 나를 방치해 두는 일은 다시는 없도록 하고 싶다. 나를 지켜가며, 생계도 이어갈 수 있도록 사는 방법.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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