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대개혁과제에 마주한 우리들의 시대정신
한국사회의 엘리트주의는 최소한 합리성이라도 가진 근대에도 못 미치는 전 근대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전근대성을 넘어선 시민중심의 사회대개혁과제를 이끌어갈 시대정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란으로 마감된 윤석열 정권의 특성은 모두 서울대 중심의 사법권력이 중심일 엘리트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법 엘리트 출신들이 군대를 동원한 게엄을 시도했고, 시민들에 의해 실패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관료들의 내란, 그리고 사법 쿠데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들 모두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고, 대체로 서울대 동기 동창, 선후배로 연결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모두 그들 주장으로는 서울대학교를 나왔다. 특히, 정부 내각에는 전체 인력의 53% 이상이 서울대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SKY출신으로 확대하면 76% 라고 한다. 그래서 서울대 내란과 라는 이야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서울대 출신이 우리나라 모든 관료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문명이 후퇴하고 있다. 과학기술 예산을 줄이고, 우주개발 기회도 날리면서 문명이 후퇴하게 되었다.
그뿐인가? 10.29 참사 대응 및 남북관계 후퇴. 전쟁위기, 수출감소,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전환 등 모든 것이 후퇴하고 있다. 또한 굴욕적 대일외교와 대중외교문제로 우리 경제는 위협받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군벌이 권력 잡은 후진국에서나 있을법한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테러와 함께 사법적 권한 남용이 매일 벌어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 정도 절대적 비율로 서울대 출신이 우리 사회 관료층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합리적 판단은 서울대 출신 사람들의 평균적 능력과 수준을 의심하기보다는 구조의 모순을 생각해 봐야 한다. 실제로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평균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검증하기 어렵다. 단지 입학시험에서 좋은 암기력에 의해 유리했을 수 있지만, 그들이 모두 평균적 일반인 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대부분 내란에 종사했다고 평균적 일반인 보다 악하거나 저능아라고 할 수도 없다.
문제는 사회시스템이 특정 집단에 대해서만 유리하도록 구조와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검증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계층이 사회에서 많은 독점적 지위를 가진다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독점적 환경에서 나타나는 것이 귀족 주의 또는 엘리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이재명이라는 소년공 출신 대통령 후보 정치인에 대해 선거권 박탈을 하려고 하며 경기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이유도 엘리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귀족에 해당하는 자신들이 노동자와 노동운동하던 천민에게 권력을 위협당한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모욕일 수 있다. 마치 신분제 사회에서의 귀족이 천민을 보던 멸시의 감정이 아니면 설명이 안된다.
그래서 검찰 및 언론은 스스로를 귀족계급으로 여기면서 이들이 가장 경멸하는 천민 출신 정치인에게 온갖 모략과 언론호도를 해왔다. 이런 현상이 오늘날 윤석열 내란 이후에도 사법부의 내란, 관료들의 내란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즉 제도 자체가 그들의 귀족성을 지킬 수 있는 제도가 일제강점기 이후 변화되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엘리트 기득권은 스스로를 엘리트라고 인식하고 있고,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전 근대성을 가지고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전 근대 시대 귀족사회와 오늘날 한국사회 엘리트 계층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 점점 무능해지고 어느 순간에는 포악해지게 되어 있다.
심지어 이들에게는 무속을 숭배하는 본질적 전근대성도 남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소수 기득권 카르텔의 구조에서 기생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 해결능력이 없고 무속에 의존하는 것 외에는 신경안정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유럽사회에도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여러 차례 혁명의 과정이 있었다.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조선 건국을 한 민본주의 철학과 조선말의 동학혁명과 같은 혁명은 모두 인류의 발전과 진화의 방향을 따른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우리의 본질을 잃어버린 폐해와 집권층이 주로 일제강점기 일제에 영향받은 집단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개혁은 우리 역사 속 정신의 맥을 되살리는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이들 사법세력의 쿠데타로 인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시민 통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조국혁신당의 일명 지귀연 방지법은 사실 고 노회찬 의원이 발의했던 법왜곡죄를 조국혁신당이 발의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유럽 국가에는 기본적으로 법왜곡돼 가 있고 독일 변호사법(BRAO, Bundesrecht sanwaltsordnung)에 따르면 공공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를 저지른 자는 변호사로 인가될 수 없다. 또한 인가 이후라도, 형사처벌 등으로 인해 공공 신뢰를 상실한 경우 인가를 철회할 수 있다.
특히, 특정 범죄(특히 직무 관련 범죄)로 유죄가 확정되면 자동적으로 변호사 등록이 취소되기에 법 왜곡죄를 범한 경우, 사실상 변호사 자격 유지 또는 복귀는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직은 물론, 사적 법률 서비스 제공(변호사, 공증인 등)도 제한된다. 우리 역시 독일처럼 법률가로서의 도덕성과 신뢰성에 대한 무관용 원칙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 즉 사법 개혁을 위한 시민판사 제도 및 법원 분권화 구조 등으로 개혁과 동시에 권한에 대한 책임이 클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바른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 학계 및 언론계는 기득권 이익을 지켜주는 방식으로 본질을 왜곡하고 강아지처럼 먹이를 주는 주인에게 얌전하기만 하다.
한국사회 엘리트 계층 자본 형성과정을 보면 한국사회 독재권력 혹은 자본을 가진 주류세력에게 어떻게 관리되어 왔는지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언론인들을 위한 기자촌(진관외동 175번지 일대에 있던 마을, 1969년 )을 만들어 준 박정희 대통령은 기자들이 집단으로 입주해 형성한 데서 집단 주거지를 조성하며 특혜를 줬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촌지를 주는 관행과 현재는 기관별 취재처를 두고 기자를 관리한다. 특히, 언론사는 상당수가 건설사 소유인 곳이 많다.
또한, 한국사회 지식계층은 어떤가? 서울대는 우리나라에서는 최고 대학으로 알아준다고 하지만, 실력이 있는지 의심될 만큼 세계 36위 정도 되는 대학이다. 사실 그 순위조차 무의미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는 한국사회에서는 학맥으로 알아주는 대학이다. 최근에는 모든 기관과 행정부처장은 대부분 서울대학교 출신이다. 즉 졸업생이 좋은 자리에 많이 가있어 학맥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카르텔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럼 이러한 우리나라를 후진국형 기득권 카르텔을 만든 서울대 교수들은 어떤가? 서울대학교가 동숭동에 있을 때 대학생들이 시위를 많이 하다 보니 박정희 정권은 서울대를 관악으로 몰아냈다. 그리고, 현재 대학로의 서울대학교 땅을 교수들에게 저렴하게 분양하였고 건물주가 된 서울대 교수 집단 상당수가 거부가 되었다. 그런 서울대 교수입장에서 감사해야 할 대상은 그들의 학문적 가치보다 개발 군사독재 권력일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 근본문제는 과거로부터 시작되었다. 현대 한국사회 기득권은 일제강점기 기득권의 연장선에서 해방 후 교육분야, 사법분야, 언론분야 등을 중심으로 강화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만의 카르텔을 통한 인맥 중심사회는 우리 사회가 학력은 높아졌지만 지성이 퇴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다 보니 남의 나라 주장만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사대주의적 생각에 빠져있다.
우리는 더 이상 만들어진 엘리트 계층에 대해 그들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들이 평가권력이 되고 서열화시키는 교육제도를 더 이상 인정할 가치가 없다. 당신보다 생각이 못 미치는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을 수 없지 않은가? 따라서, 우리는 서열화된 교육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경쟁보다는 협력을 추구하는 개념으로 교육 설계가 되어야 하고 새로운 시대 지성인을 키우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독일의 교육모델 등 유럽의 경쟁을 배제한 교육시스템에 대해 이제는 실천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대학 입시부터 유럽처럼 서열이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이명박시절 만든 일제고사를 철폐해서 서열 없는 교육을 만드는 실천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 서열도 없애고 본질적 연구성과를 내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가짜 권위와 서열과 경쟁을 걷어내고 본질적 실력과 협력의 소통을 교육과 지성인을 키우는 중심에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