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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나무 Jul 10. 2024

혁신 걸림돌 일본식 상명하복 구조

우리는 왜 바보들을 양산하는 구조를 유지하는가 ?

왜 한국사회는 최근 본질적 성장을 못하는가? 이러한 상황은 결국 비효율과 노동생산성 문제이기도 하지만, 주류 산업구조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 못하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비효율을 잘 보면 조직문제에서 비롯되고 의사결정 구조에 의해 시작된다.

한국사회의 의사결정구조는 도대체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비롯되었고, 이 구조는 왜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할까? 그리고 왜 한국사회 조직문화를 혁신을 못하는 이유를 되돌아본다.



뒤쳐지는 한국사회 산업동력


매일 인공지능발전에 대한 미국, 유럽, 중국의 소식을 듣다 보면 세상의 변화가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는 삼성, 엘지, 현대 외에는 두드러진 기업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한국 내 삼성, 엘지등 대기업도 이제는 글로벌 경쟁력에서도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중국 및 대만 등 중화권의 발전은 매우 빠르다. 그런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소통방식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은 전체주의가 가장 발전된 국가구조와 대중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식구조는 생산위주 제조산업까지만 유효하다. 즉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서 일사불란하게 생산하는 제조강국이 될 수 있었다.

생산에 투입될 테슬라 휴머노이드 로봇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미 자동화 생산으로 전환되었고 과거와 다른 소프트웨어산업이 중심이 되며 과거와 같은 생산성에 노동력을 투입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한국사회의 산업경쟁력 약화는 우리 사회가 가진 문화적 특성에서 본질적 문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 갑과 을 문화


나의 경우 회사에 처음 들어가면서 개인도장부터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문서 기안하고 서류판에 문서를 잘 포개서 대리님께 상신하고 과장님께 상신하고 부장님 결제를 받는 절차부터 배웠다.

그리고 이러한 문서를 상신하는 제도가 우리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통용되는 의사 결정 구조인줄 알았다. 적어도 해외사업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우리의 구조를 당연하게 느꼈다.

그러나, 글로벌사업을 경험하게 되고 난 후, 우리처럼 갑을 관계가 아닌 협상을 통한 계약을 경험했다.

갑을관계는 논리보다는 무조건적인 논리가 지배하지만 협상을 통한 계약의 본질적 차이는 논리적 협의가 가능한가 여부이다.


갑 을 병,정 으로 구분되는 위계가 담긴 결제 구조

갑을문화에서는 갑이 지시하면 이유불문하고 따라야 한다. 이것은 회사 내의 위계질서뿐 아니라 도급사와 하도급사의 관계가 그렇게 결정된다. 그런 이유로 인해 한국과 일본에서 아웃소싱을 하거나 자회사의 경우 본사보다 낮은 월급과 안 좋은 대우를 받는다. 갑과 을 관계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서구사회는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개념으로서 서로가 요구하고 요구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다면 받아들인다. 이것이 나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결국 우리가 가진 수직적 문화에 대해 그 시작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수직적 위계 문화의 기원


사실상 한국과 일본은 서구와 다른 근대화 과정을 거쳤다. 아시아의 발전과정과 서구의 발전과정은 다르다는 부분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시아는 중앙집권 제도화 형식으로 발전되었고 조선과 청만 중앙집권적 구조를 완성했을 뿐 일본에서 왕권국가로 전환은 명치유신 이후 진행된 것이다. 결국 일본은 근대화로 알고 있지만 조선에서 이룬 중앙집권방식의 왕권 체계로 전환을 이룬 것이 일본 근대화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서구적 가치를 받아들인 것은 사무라이 계급인데 삿초동맹을 이룬 사무라이 집단에 의해 서구사회를 모방한 군국주의 제도를 만들었다.  

료마

일본의 에도 시대  이때 료마리는 무사가 사쓰마번과 조슈번이 맺은 정치적, 군사적인 동맹을 1866년 3월 7일에 맺었으며, 이들은 에도 막부를 타도하고 천왕제를 만들었다.


따라서 사무라이들이 산업화의 주역이 되었고 이때 사무라이들의 의사 결정구조인 문서 결제 상신 구조를 만들었고 일제 식민지 시대를 통해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후 모두가 알다시피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은 되지 않고 일제강점기 조선인 관료 및 기업가들에게 적산을 물려받을 기회가 있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영향을 받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 대기업등은 여전히 일본에만 존재하는 의사결정과 조직 구조를 그대로 유지히고 있다.

얼마나 우리의



바보를 양산하는 수직구조


최근의 산업은 과거와 달라진 산업구조를 기반으로 다른 방식으로 부가가치가 형성됨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는 대량생산 산업사회 구조에서는 기계를 다룰 수 있는 단순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최소의 교육과 말 잘 듣는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에서 오늘날에도 한국사회 교육은 생각할 줄 아는 고급인력이 아닌 산업사회 단순 노동력에 모든 교육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식민지 이끌어 가려던 유럽사회 토론을 중심으로 한 교육은 철학을 가진 생각하는 리더를 만드는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소프트웨어 및 플랫폼 산업과 같은 산업이 발전하게 되었고, 기업은 단순 기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생태계를 유지하는 소통과 협력이 플랫폼 산업에서 중요한 역량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방해되는 과거의 개념이 수직적 구조와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 조직에는 대체로 수직적으로 문서를 기안하는 행위와 같은 형태로 의사결정과 보고를 한다. 이런 방식이 가지는 수직적 의사결정구조는 필연적인 형식주의와 비효율을 만든다.

수직적 문서 결제 구조


한국사회 문서중심 업무조직은 수직적 위계조직과 형식주의가 만연하도록 만든다. 결국 문서행위에 매몰되다 보면 사안의 본질 보다 형식적 복잡성을 무시한채  문서행위로한 것 만으로 일을 잘했다는 위안을 받는다. 결국 본질은 사라진 형식적 위안과 함께 권위를 만들어 준다. 또한, 중간관리자를 거쳐 의사결정권자로 가는 동안 정보는 왜곡되어 다른 의미로 이해하고 왜곡된 판단을 하게 한다. 그래서 요령있는 문서 작성자들은 이런 표현도 한다. 문서를 올릴 때 수정할 거리를 남겨놔서 결재권자에게 존재감을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수직적 결제 구조는 무능한 관리자 혹은 임원을 만드는 구조가 된다. 대체로 이런 수직적 구조에서 임원으로 있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판단능력이 떨어진다. 대부분 임원들만 자신들이 무능해지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상명하복식 수직적 구조에서는 모두 임원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직적 구조의 임원은 본인의 능력을 실제보다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상명하복 구조에서 지속적으로 보고 받는 임원이 되다 보면 실무자적 감을 잃어버리기 쉽고 판단력도 무뎌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실무 담당자나 중간관리자는 이러한 무능한 관리자를 설득하기 위해 본질적 사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임원을 설득하기 위한 불필요한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따라서 문서작업은 비효율을 극대화 한다.


  일본 사무라이 문화로부터 우리에게 이식된 수직적 의사결정구조는 필요 없는 중간 계급을 두고 비효율적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오늘날 협력이 중요한 산업구조에서 과감하게 문화적 전환으로 과거의 상명하복 구조를 제거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문서기안과 상신 같은 업무를 하지 않고도 담당자의 협업 능력이 있다면 메일과 서로 만나서 의사결정을 합의하는 방식으로 얼마든 명확하고 효율적인 협의가 가능하다.




한국사회 근대화시작


조선왕조는  1887년 건청궁에 전기를 도입하는 등 산업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근대화 정신은 오히려 민중들이 동학을 통해 스스로 열기 시작했다. 1894년 동학이 주창한 사람이 하늘이라는 주제는 오히려 후기근대화 과정인 1968년 이후 서구사회가 이루고자 하는 가치와 닮았다. 서구사회 보다 약 100년 앞서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근대화의 특징인 왕정을 무너트리는 왕정 폐지를 주창한 정여립은 동학을 통해 공화제를 열고자 했다.


만일 동학의 근대화 정신과 조선왕조의 산업화 의지가 만났다면 지금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조선왕조가 외세에 의존하여 내부 변화와 개혁의지를 막음으로 인해 우리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


동학혁명이 멈춰지고 난 식민지 조선으로 강제 병합한 일본은 오히려 왕권중심 사회로 해방 전까지 일왕 중심 왕권사회를 유지했다. 결국 우리에게는 식민지 시대 역시 근대화가 아닌 산업화시대로 생각할수 있고 근대화는 해방 이후부터 시작된 것이다.

건천궁과 최초 전기/전구

따라서, 한국사회 상당수 구성원은 대부분 왕권사회와 전체주의 파쇼 사회만 경험했을 뿐 본질적인 근대화 경험을 한 적이 없다. 또한, 도시지역과 달리 지방은 농업사회와 공동체 사회에서는 공화정과 같은 경험은 매우 낯설게 느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사회는 실제로 여러 시대 사람들이 동시대에 살고 있는 현상이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더 큰 이유는 산업시대 수준에 맞춰진 교육 때문 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가 오늘날 한국사회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수직적 의사구조가 명확한 한국과 일본이 소프트웨어 및 플랫폼 사업에 뒤처지는 이유도 문화적 특성에 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상명하복 구조에서는 필연적으로 임원들이 무능해지기 쉬운 구조이기도 하지만, 무능한 사람이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 명령권좌에 오르면 상명하복 구조에서는 무능함을 감출 수 있다.



1894년 동학혁명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 본다


오늘날 대한민국 무능한 대통령 부부의 잘못된 판단에도 정부의 공무원들과 판사, 검사들, 언론들까지 본질을 왜곡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특징을 가진다.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변명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 멍청해진 모습을 비추기도 한다.


우리가 이들의 발언을 보면 마치 뇌가 없는 사람들 같지만 그래도 서울대 출신 엘리트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언론 역시 애완견이라고 불리어지지만, 이들 역시 상명하복구조에서 기사는 마사지 된다. 즉 상명하복 구조를 유지한다는 것은 실제능력보다 못 미치는 비판의식 없는 바보들을 계속 만들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하게 정치적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사회 구성원 전체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다. 시대는 변화하지만, 한국사회가 과거 산업에 적합한 구조로 남아 있다 보면, 우리 사회는 문화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에서 계속 뒤처질 것이다. 한국인들 내면에는 과거 130년 전 동학혁명을 해온 조선 민중들의 함성이 핏속에 흐른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낼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제도를 아무 생각 없이 유지하는 우리 모습이 자존심 상하지 않는가? 왜 우리가 식민지시절 사무라이 무사의 전통을 아직도 기업의사결정과 공무원 의사결정에 활용하는가? 가장 먼저 공무원 조직부터 이런 폐습을 버리는 솔선수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기업도 살아남기 위해 수직적 상명하복구조를 버리고 역할구조로 전환하고 경쟁력도 높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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