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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나무 Jul 17. 2020

한국사회 페미니즘 운동

래디컬 페미니즘과 리버럴 페미니즘

나에게 페미니즘은 팔순 어머니의 생각을 이어받았다.

여자라고 교육 못 받은 서러움이 있던 어머니는 유독 여성 기회 박탈과 같은 차별에 분노하곤 했다.


그런 영향으로 내가 이해하는 페미니즘은 기회의 공정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중심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진보정당 내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가 매우 분분한 것 같다. 사실 페미니즘이란 영어 표현은 역사성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인 것 같다.

본질은 여성주의로서 여전히 남녀가 평등하지 않은 세상에서 여성 관점을 강조하여 균형을 맞추기 위한 측면이 강조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본질을 벗어날 때 발생하는 불협화음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박원순 시장 조문, 안희정 장례식 화환 등 이슈로 정의당을 탈당을 했지만, 사실 그전부터 진보정당인 정의당에서 추구하여야 하는 차별 금지와 배치되는 극단주의적 페미니즘의 모습을 진보정당으로 분류되는 정의당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 솔직한 이유이기도 하다.

노동운동 중심이던 정의당에 진보정당으로서 새로운 사조로 확장하는 기반에는 시대를 이끌어 가는 철학이 뒤 바침 되어야 한다.  이번 혼란을 통해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시민과 정당이 가져야 하는 철학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증오 속 탄생한 한국사회 극단적 여성주의 흐름


한국사회에서 여성주의(feminism : 페미니즘)가 하나의 정치적 흐름으로 나온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정의당 등 진보정당에서 주로 이야기가 나오고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증가되면서 더욱 이슈화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사회의 여성주의는 마치 민주주의가 서구에서 이식되었을 때 형식만 가지고 오고 본질과 철학은 빠진 채로 페미니즘이라는 불리어지는 여성주의는 온라인을 통해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2015 페미니즘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기반으로 ‘#난_페미니스트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 공중화장실에서 한 사람이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된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여성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강남역 공중화장실 살인사건 추모공간(2016)


이러한 배경이 되어온 일들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 일베 등 무례하고 극우적인 사용자들이 인터넷상 증오를 불러일으키며 이에 불편한 여성들은 증오에 대한 반사 개념(미러링)으로 또 다른 증오로서  성별 대결 정서 기반으로 하는 극단적 여성주의(레디컬 페미니즘)로 발전하게 되었다.


여기서 한국사회의 여성주의가 극단적인 형태로 분노를 표출하게 된  배경으로는 여성 대상 범죄와 여성 성착취 물이라고 할 수 있다.

N번방 사건과 함께 양진호 사장의 웹하드는 이런 여성 성착취 물의 유통으로 돈을 버는 존재들이 세상에 고발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많은 여성 대상 범죄는 처벌도 낮고 법원 판결도 비상식적인 경우가 많다.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 우리가 여성주의의 극단적인 것을 메갈리아와 같은 극단적 페미니즘으로 한국사회에서 보게 된 배경에는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성적 대상화와 함께 대결 정서 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대결 정서가 나온 배경으로는 일베와 같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김치녀, 된장녀 등 용어로 여성을 비하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대한 반발 현상이 한국사회 여성주의 운동이 극단적으로 변화시킨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특히, 메갈리아와 같은 사이트에서는 남자에 대해 혐오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가는 측면에서 극단적인 측면에서 일베를 닮아 간다는 것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정치적 측면에서 일베가 극우 보수당인 미래 통합당을 지지한다고 하면 메갈리아는 그 반대편인 정의당을 지지하는 측면이 있다.

일베와 워마드와 같이 남과 여의 성대결을 하는 온라인 싸움은 어쩌면 그 시대의 모든 젊은 남녀를 대표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대표성이 있는 것처럼 미디어와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본질적인 여성인권개선이 아닌 극단적 여성주의 정치 세력화를 통해 대표성을 왜곡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일베와 워마드 로고

문제는 메갈 및 워마드와 같은 극단적 여성주의는 자신들의 욕구에 맞지 않는 남자들은 벌레라는 용어로 한남충과 같은 차별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정서와 이념을 가진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에서 받아들이면 안 되는 정치집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사회에서는 극단적 페미니즘이 확산되면서 오히려 사회적 차별을 조장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2020년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여성이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는 법조인이 되기 위해 숙명여대 법대에 합격한 일이 있다.

그러나 학내의 극단적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학생들이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에서 반대의사를 통해 입학을 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정의당에서는 극단적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보다는 교육당국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고 본질을 벗어난 논평을 통해 극단적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을 피하고 있었다.


대학 내의 극단적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이들은 여성 인권을 이야기하면서도 여성이 아닌 나머지 모두에 대한 차별을 조장한다는 면에서는 독일의 나치즘 또는 파시즘 같은 인종 차별적 성향을 가졌기에 외국의 경우도 극단적 여성주의는 페미나치(Feminazi) 라고도 불려진다.


최근 박원순 시장의 장례 참여 여부, 그리고 안희정 모친상에 조화 등 여러 가지 사안에서 성범죄자라는 프레임 속 조문 거부, 대통령 조화 제공에 대한 정의당의 논평은 일반 대중들의 죽음에 대한 공감 인식과 많은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많은 시민들은 왜 민주진보계열에서 성범죄가 많이 있는가 의문을 가진다. 그러한 이유는 여성단체 및 정당 내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의 경우 민주계열과 진보계열에서는 비판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반대로 전체주의 성향을 가진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집단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에 대하여는 선택적으로 무반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보수적인 권력집단의 경우 여성들이 내부고발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용납되지도 않고 만일 목소리를 내는 당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바로 매장당하기에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


그리고 성추행 등 명백한 증거가 있어 문제 제기를 한다고 해도 한국사회 언론들의 집중포화로 인한 사회적 매장 두려움과 보수적 사법집단의 비호로 인해 처벌을 피할수 있다는것을 알고 있기에 선택적으로 보수적인 권력 집단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에 대해 관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정의당에서 필자를 비롯한 당원들이 탈당하게 된 배경에는 선택적 정의와 극단적 여성주의는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이라는 근본적 진보적 목소리와는 거리가 있다는 상황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과 약자에 대한 착취 역사


우리 사회에서 여성주의인 페미니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업혁명시대 영국을 봐야 한다.

산업혁명시대는 생산을 위해 모든 인적자원아 돈벌이 수단으로 환원되는 시대였다. 그렇기에 잘 순응하고 다루기 좋은 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노동현장에 투입했다.

영화 서프러스제트를 보면 남성 중심의 노동 착취하는 산업혁명 과정 속 여성노동자가 스스로 참정권을 찾아가는 투쟁 과정이 나타난다.


영국의 여성 투표권 운동

우리나라에서는 1960~70년대 청계천 봉제공장 노동현장과 같은 매우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청년 전태일은 죽어가는 시다 소녀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런 전태일이 노동에 대한 환경 개선을 요구한 것은 노동운동이기도 하지만 여성인권을 지켜주기 위한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시대와 장소적 간극은 있지만 산업 자본 시대를 거치면서 위험한 환경 속의 여성과 어린이들은 착취의 대상이 되어 온 현상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우리의 비참한 과거였던 일제강점기 우리의 여성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었는지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젊은 처녀와 어린 소녀들은 정신대라는 형태로 노동현장과 함께 일본군 주둔 군부대 위안소로 가서 노동착취와 성착취를 당했던 역사가 있다.


이처럼 전쟁 중 여성과 아이들의 인권은 최악에 다다르게 되며, 그것이 지금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고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 것으로 대표되는 여성인권 운동이고, 일본군의 학대 속 살아남은 여성들은 노인이 되어 그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고 있는 것이 현재 정의 기억 연대의 고령의 여성활동가분들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등에서는 여성 할례 전통이 있으며, 여전히 분쟁이 끊임이 없는 아랍권의 여성은 억압이 구조화되는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구 상 국가들은 전쟁 중 어려운 상황에서는 공통적으로 약자인 여성에게 더욱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가 나타난다는 것을 보면 전쟁에 대한 반대와 분쟁 없는 평화는 여성과 약자에 대한 존중이라는 측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사회 정의 기억 연대의 국제적 전쟁 여성 평화 인권 운동은 세계적 상식의 여성인권운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여성 인권활동


얼마전부터 세계 여성의 날 고 노회찬 의원이 해오던 것처럼 나는 우리 집의 아내와 딸에게 장미 주는 행사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들에게 발렌타인데이는 알려져 있지만 세계여성의날(3.8)은 알려져 있지 못하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여성운동의 뿌리는 너무도 미약하고 진보정당 자체도 혼란을 겪고 있다.


부정하고 싶지만 한국의 최초 여성교육과 신여성상의 정립은 일제강점기 김활란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 규정지어졌다.  김활란은 이화여대 총장이기도 했고 일제강점기에 여성 제자들에게 일본군 종군위안부로 전쟁에 참여를 독려하는 등 친일 행위를 해왔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서 탄생한 대한부인회는 1949년 2월 반관, 반민인 우익 여성단체로서 국가봉사, 국민 문화 향상, 여성지위 향상을 목표로 결성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고등 교육받은 신여성은 여성 스스로의 독립적인 가치를 키우는 것이 보다 남성 중심사회 좋은 결혼상대를 만나고 내조 등이 강조되면서 기득권 계층에 편입을 위한 자격 가진 여성으로서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는 사이에도 청계천 봉제공장에서 좁은 작업장에는 수많은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1970년 소모품처럼 죽어나가는 소녀들을 보고 전태일은 지켜지지 않는 노동법을 품에 안고 분신했다.

전태일과 바보회


전태일처럼 여성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싸웠던 것은 과거의 관변 여성단체의 활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에 대한 예의와 소녀들과 약자에 대한 공감이 기본이 된 노동운동이고 여성인권 개선을 위한 싸움이었던 것이다.


이후 1979년 가발 수출업체인 YH 무역의 여성 노동자들에 의한 생존권 투쟁으로 회사 폐업조치에 항의하여 야당인 신민당 당사 농성시위를 벌인 사건으로 여성 스스로 생존권을 지키고자 한 역사적인 기록이다.


또한, 고 노회찬 의원의 경우도 국회 여성 청소 노동자들에게 사무실을 빌려주기도 하며 세계 여성의 날 장미꽃을 주는 상징성을 통해 여성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활동을 했다.


세계여성의날 노회찬의 장미


모든 진보 정신의 근원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 공감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도 세상이 전쟁 등 황폐화될 때에는 여성과 어린이 등 약자의 인권은 무시당하고 착취의 대상이 된다. 힘만으로 작동하는 세상에서 물리력이 약한 여성과 아이들은 지배의 대상이 되었던 역사를 보면 평화를 이루는 것은 약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여성주의 인권 운동은 남과 여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인간존중이 기본 틀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지점에서 고민할 지점은 여성주의인 페미니즘은 약자들의 인권이라는 범주 속에 포함되고 인간과 생명에 대한 존중에 속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가지 가치가 상충될 때는 상위의 가치를 따라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마치 법률 위에 헌법이 있어 우리는 헌법의 가치를 추구하듯 인간존중 생명존중 가치를 우선하는 페미니즘은 있을 수 없다.


최근 연이어 나오는 정의당 여성의원 들의 대응은 하위의 가치에 치중하는 극단적 페미니즘 형태를 보이고 있거나 최소한 옹호하는 모습이라 우려스럽다. 그래서 진보정당이라면 적어도 극단적이고 종교화된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을 멀리해야 한다.


대학가에 확산된 극단적 페미니즘은 오히려 김활란과 같은 친일을 옹호하기도 한다. 사실상 외국에서는 극우적인 페미니즘 성격으로 규정되고 있고  래디컬 페미니즘(극단적 여성주의)과 함께 제도 개혁 등 공적인 여성지위 향상을  통한 성평등을 추구하는 리버럴 페미니즘(자유주의적 여성주의)으로 구분하고 있다.


고 노회찬 의원과 노동자 전태일, YH 무역 여성노동자들이 추구했던 페미니즘은 인간 존중 가치 속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 있으며 리버럴(Liberal)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리버럴(Liberal)은 민주당 지지자나 진보주의자를 뜻하는데 우리의 민주. 진보계열을 이야기한다. 바로 이지점이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에서 페미니즘과 같은 여성운동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시작될 지점이다.   


우리는 세계적 운동에서 논의되는 이야기를 참조할 필요도 있다. '미투' 운동의 창설자인 미국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인터뷰에서 "미투 운동은 배타적 대립을 보여서는 안된다"면서 "성폭력을 겪은 이들 모두를 위한 것이지 여성운동이 아니다"고 밝히면서 "남자들은 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크는 누구나 말할 자유가 있지만 성폭력 등을 고발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개인적으로 한국사회 여성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다는 측면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이전에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바라고 있는 자유주의자이다.


한국사회가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혁신이 있는 실리콘밸리는 다양성 속에서 실력이 우대받는 기회의 공간이다.  애플의 CEO는 게이이고 구글 CEO는 인도 노동자이고 테슬라 CEO는 아프리카 이민자인 집단인데 우리라면 가능할까?


우리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류 진화와 진보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다양성이 조화되는 사회가 변화를 만들고 진보적 미래를 만들어간다.


한국사회가 성평등 면에서 후진국이라는 것을 해외에서 직접 경험한 부끄러운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몇 년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기술 컨설팅을 하면서 그곳 공무원중 한명이 우리 일행을 보며 왜 한국기업에는 여성 컨설턴트는 없고 모두 남자들만 있냐는 질문을 했다.

솔찍히 대답하기 매우 곤란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우리 회사에서 파견된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다.

그러나 르완다 정부의 협상팀은 남녀 성비가 균등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들은 르완다 정부는 남녀 공무원 성비가 1:1이라고 했다. 유럽 영향을 받은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의 대부분 직장과 공공 영역에서 그런 성평등 측면에서는 뒤떨어졌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이 가장 분노하는 뉴스는 한국사회는 여성 성범죄 판결에서 여성들이 받는 고통에 비해 가해자가 죗값을 치루어야 하는 경우 솜방망이 처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원인으로 남성 중심 검사, 판사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 된다.

그러므로 검찰, 및 법원 등 여러 곳에 여성 진출이 필요하다. 그래야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여성범죄에 대한 공감으로 상식적인 판결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비록 한국사회는 여성교육 및 여성단체의 시작은 친일, 극우 환경에서 시작되었고, 진보적 여성운동(리버럴 페미니즘)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시기도 부족했다. 그러나 전태일과 노회찬에서 진보적 여성운동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온라인상으로 일베와 대응해 만들어진 극단주의적 페미니즘은 근본적 여성인권 향상에 도움 주기 어렵다.  

특히 메갈리아와 같은 극단적이고 극우에 가까운 페미니즘이 진보운동의 중심이 될 수 없다.


진보 시민사회가 추구하는 페미니즘은 사회변화를 이루고 오히려 여전히 여성의 사회진출이 적은 한국사회 구조를 개선하고 제도적 변화를 꾀하는 페미니즘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세상은 좀 더 기회가 공정하고 평등해진 사회를 추구하기 위해 잘못 걸어간 길을 되돌릴 용기도 필요하다.



2021년 알릴레오를 통해 나온 내용을 추가하여 정리하고자 한다.현재 여러갈등이 존재하는 페미니즘은 여러단계 물결을 거치면서 다양한 형태로 재정의 되는 단계에 있으며 같은 페미니즘내에서도 여러 논쟁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페미니즘은 서구사회와 근대사회 문명사적 변화와 맥을 같이 해왔던 변화라고 할수 있다.

유시민작가는 지난 100년동안 인류문명의 변화를 돌아보면 현재의 제도 관습은 앞으로 몇십년뒤 변화되거나 사라질수 있다. 사라질지도 모를것에 집착하며 다투기 보다는 자기자신이 부당하다고 느끼며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현상에 대해 좀더 경청하며 바꾸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시각을 통해 보면 작은 어쩌면 현재 갈등은 작은 파동일수 있다.


추가로 한국에서 왜곡된 페미니즘 흐름에 대해서 남성중심 일베, 펨코만큼이나 경계하여야 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남녀를 분리하여 권력을 탐하는 구조에 대한 경계를 말한다. 마치 과거 영호남 동서 갈등 또는 남과 북 이념 갈등을 통해 정치적 힘을 얻으려던 과거 정치세력의 폐해를 보아왔지 않은가? 
우리는 의도적 분열에 맞서야 하고 젠더의 갈등이 아닌 폭력없는 세상을 이루어가는데 힘써야한다. 



https://youtu.be/InmSMUSYKAY   2021. 11. 19.



https://youtu.be/DcBGQgKbIVI 2021.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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