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화, 계급화, 차별과 경쟁을 넘어선 제도 개혁
지난 12.3 내란 상황에서 보여준 집회현장에서 젊은 남성비율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점과 대선에서 나타난 젊은 남성의 극우화는 한국사회의 성별갈등을 이용하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오랫동안 공들여서 세력을 만들어온 결과이다. 젊은 남성들의 극우화에는 갈등이 증폭되는 원인에는 인위적 갈등조장이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그 갈등을 만든 원인분석이 중요하다.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의 극우화는 다른 나라들의 역사성에 의한 갈등요인보다는 매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특징과 제도적 산물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청년 극우화는 경제 불안, 남녀 성별문제 등 일부 갈등 요소에 힘입어 과거부터 이어온 친일 정치인들의 계산된 의도가 개입하면서 강화된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일베 및 워마드 그룹의 경우 겉으로는 갈등처럼 보이지만 모두 극우적 특징을 가진다는 점에서 설계된 증오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서 보이는 역사적 상황에 따른 원인과 달리 우리는 역사적 맥락에서 단절이 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어쩌면 구조에 대한 저항이 아닌 기득권 질서속에 길들여진 것이 남성 극우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수 있다.
한국 → 극우화 동인이 젠더 갈등에 집중되어 있음. 경제 불안이 성별 대립 프레임으로 흡수됨.
미국 → 젠더 갈등보다 인종·문화 전쟁이 핵심. ‘맨스피어(Manosphere)’가 젊은 남성의 일부를 흡수.
일본 → 여성혐오와 함께 ‘비혼화·저출산’ 문제와 결합. 전통적 성역활로 회귀 주장 많음.
유럽 → 젊은 남성 극우화는 주로 이민·난민 반감에서 출발, 젠더 이슈는 부차적.
오늘날 게임·밈·유튜브·커뮤니티 문화 속에서 트래픽을 유지 위한 과격한 콘텐츠가 많아지며, 남성 중심 온라인 공간에서는 여성 혐오나 과격한 정치 유머가 ‘놀이’로 소비되며, 점점 더 과격한 콘텐츠가 정상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2000년부터 확대된 인터넷 플랫폼은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킬 만큼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높여줬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을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불리어졌다. 왜냐하면, 2000년 이후 커뮤니티의 발전은 과거와 다른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이루어 냈다.
이런 변화에 위기를 느낀 친일극우진영은 이 시기부터 반격을 위한 전략을 모색했다고 보인다.
이명박 정권시절 국정원 심리전단 등은 조직적으로 인터넷 댓글 공작 등 일베 등 많은 인터넷 공간의 왜곡이 시작되었다. 이 시절 여론 공작과 분노·혐오를 자극하는 영상과 글이 클릭을 많이 유도하기 때문에, 점점 더 극단적인 콘텐츠로 사용자를 끌어들이며 갈등을 조장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진보의 반대진영은 보수정치집단이 아니다. 그들은 친일, 기득권으로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에서 친일 정치집단의 큰 영향력 아래에 있다. 교육, 언론, 사법, 정치 등 많은 영역에서 그들은 여전히 기득권에 있지만, 젊은이들은 그런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 없다.
특히, 오늘날 20대의 세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민주정권시절로 그들 눈에는 민주정권이 기득권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그런 시각을 가지게 되는 원인에는 그들에게 이식된 왜곡된 역사와 가치관에 있다.
또래놀이문화에 왜곡된 의식을 의도적으로 심었기 때문에 그들은 역사성도 모른 채 무조건 386, 586 비판을 한다. 마치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서 보여준 빅브라더가 대중들을 모아 놓고 대형스크린에 분노의 대상을 보여주고 대중들을 분노를 하게 만든다. 그런데, 분노하는 대중들은 왜 분노하는지도 모른 채 분노를 한다.
그런 방식으로 젊은이들은 근현대 역사를 모른 채 변화의 세대인 386 세대를 기득권 세력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들이 민주화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도록 학교에서는 근현대 역사를 크게 다룬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 학교교육의 특징은 오늘날에도 기득권인 그들의 역사를 쉬쉬하면서 현재의 문제를 외면하는 방식으로 진실을 감추는 교육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명박 정권시절 극우화를 위해 정책을 준비했고 여러 정책을 세우고 탄압도 했다.
이명박의 대표적 정책은 서열화, 계급화 강화 교육이다. 그래서 특목고를 만들었고, 전국평가를 도입했다. 특목고로 진입하기 위한 과외비로 재산이 어느 정도 되지 않으면 서열이 높은 대학에 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부차원에서 전교조활동을 막아낸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교사가 목소리 내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고, 전교조는 법 외 노조가 되는 등 엄청 큰 탄압을 받았다.
사실 과도할 정도로 전교조를 탄압의 이유도 한국 내 기득권에 속한 극우세력들은 다음 세대에 대한 권력의지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은 오늘날 극우화된 젊은 청년들을 키워낸 아주 전략적 정치인이었다.
이명박 시절부터 서열화 교육과 계급화등과 함께 갈등을 통한 나누어 통치하기는 오래된 전체주의 시대 식민지 개척 방식이다. 계급화된 젊은 남성들은 그들은 분노를 그들을 경쟁 속에 몰아넣고, 소고기 등급처럼 계급구조 속에 분류해 낸 권력에 증오해야 하지만 분노의 대상을 약자에게 돌리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산업시대 교육의 특징은 , 서열화, 계급화, 암기식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균일한 수준의 노동자를 만들기 위해 말 잘 듣는 교육이 산업화 교육이다. 그러나 인공지능등 시대 변화에 따라 인간은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소통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따라서 학생들은 암기식 수업이 아닌 토론식 수업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만큼 선생님의 역량도 중요해진다.
그리고, 계급화, 서열화에 대한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유럽의 경우 1968년 혁명 이후부터 진행되어 온 교육에서의 차별과 계급을 사라지게 하는 제도적 뒤바침이 필요하다. 대학입시를 유럽처럼 바꾸거나, 대학 서열이 아닌 평준화를 통해 어떤 대학이든 연구능력이 있으면 인정받도록 특성화 강화가 필요하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대학평준화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본질적 교육 개혁의 방향은 고등학교의 입시 위주로 줄 세워서 서열화된 대학에 들어가는 것으로 모든 인생이 한 번의 시험과 성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바꿔야 한다. 사실 이러한 제도가 유지되는 이유는 기득권 교육을 통한 자식세대 신분유지 욕구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인재는 여러 단계에서 나타나기 때문 다양한 기회의 사다리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이 경우 중고등학교 시절 말도 안 되는 암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중고등학교 시절 풍부한 인문학 및 개인 재능을 발견하고 대학에는 누구나 자신의 길을 도전하는 것이 열려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의 서열이 의미 없어야 한다. 넓은 입구로 들어가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도록 하는 것이 고등교육이 가야 할 길이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에게는 자율성에서 창의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경쟁교육이 아닌 협력을 배울 여유가 생긴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이기심이고 경쟁의식이다.
남녀 갈등의 원인도 이러한 남녀 경쟁의 문제도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이 이뤄질 때 우리는 시대에 맞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포함한 인재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교육 현장의 민주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아이들이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배워야 할 공간인 학교가, 현실에서는 오히려 가장 보수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사립학교 개혁을 위해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거센 반발(당시 박근혜 전 대표의 장외 투쟁 포함)에 부딪혀 결국 무산되었다. 사립학교 운영에서 이사장 등 소수 권력자의 영향력보다 교사 공동체의 자율성과 정치 활동의 보장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한 학교 안에서의 정치 교육 역시 필수적이다.
지난해 발생한 교사들의 잇따른 극단적 선택은 교권 문제를 넘어, 교사 집단의 목소리를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단순한 교권 회복에 그쳐서는 안 되며, 학교 민주화와 정치 참여 확대로 나아가야 한다.
역사와 정치 교육이 왜 필요한지는, 역설적으로 극우 단체의 활동에서 드러난다. 일부 극우 집단이 ‘리박스쿨’을 통해 방과 후 교사로 파견되어, 비판 의식이 부족한 어린이들에게 왜곡된 역사관과 정치 이념을 주입한 사건이 있었다. 역사 인식이 왜곡되면, 사회·정치 현상을 올바르게 판단하기 어렵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 Consensus)"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합의는 정치 교육에서 금지해야 할 세 가지 원칙으로 다음 3가지를 제시한다.
① 정치교육에서 주입 및 교화금지 원칙 (특정 의견 강요 금지)
② 논쟁점 반영의 원칙 (논쟁이 있는 사안은 다양한 시각 제시)
③ 학습자의 이해관계 고려원칙 (학생 스스로 이해·판단·참여할 수 있는 능력 함양)
우리 교육에서 역사교육과 정치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오히려 이번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 정권이 극우 집단의 리박스쿨의 방과 후 교사 파견 사건을 통해 나타났다.
리박스쿨에서는 왜곡된 사실을 비판의식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강요를 했다. 이러한 강요는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의하면 특정의견 강요 금지와도 맞닿아 있다.
2023년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의 영향으로 교사들의 집회가 들불처럼 번지던 시절 윤석열 정권의 대변인은 ‘공교육 멈춤의 날’ 대규모 집회와 관련해 교원노조를 겨냥해 “신성한 선생님을 스스로 노동자로 격하시킨 단체”라고 말했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106992.html
한국사회 주류 기득권이 교육주체에 대해 가지는 입장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과 과거제도를 계급을 나누는 수단처럼 생각해 온 전통이 있다. 조선시대 서당공부를 하여 과거급제를 하면 신분이 달라졌고, 이중에도 문과, 무과로 나누고 차별을 두었다.
전 근대 사회 특징은 이처럼 직업차별을 통해 신분을 나눈다. 신성한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이 구분된다는 의식이 있고 여전히 우리 언어습관에도 남아 있다.
교사는 고귀한 직군이라는 관점은 교사가 노동자로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억눌러온 오래된 논리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기득권 집단은 교실 민주화를 막기 위해 계급을 나누는 이데올로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또 다른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의 행렬이 지속되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만들어 내는 노동 가치로 당당하게 사회에서 자립하는 법과 노동자로서 서로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지만 식민지 교육 구조에서는 어떤 학교에 들어가는가에 따라 누구는 지배자가 되고 누구는 피지배자가 되도록 평가를 통해 분류하고 질서에 순응하도록 가르친다.
마치 교사는 고귀한 직군이고 노동자가 아니라는 주장 역시 따지고 보면 나누고 분리하여 지배하는 식민지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학생과 교사 간 이간질 하고 갈등구조와 비극만 양산하는 구조를 만든다.
2023년 일어난 교사 시위에서도 본질에 해당하는 교사의 노동성 회복을 통해 교사들도 스스로 보호받고, 학생들도 노동가치를 배우는 노동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목소리 높였으면 했지만 그 이상의 변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본질은 교실의 교사, 학생의 대립 관점이 아닌 교육공동체의 민주화가 본질적 목표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교육 변화를 위해 현재처럼 대학순위로 평가받지 않고 대학 수평화와 학벌을 넘어서는 탈 권위사회 구조 변화를 외치는 등 근본적 변화를 위한 목소리도 함께 하면 좋을 것 같다. 이젠 우리도 서구사회에서 이룬 1968 혁명 변화를 실현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인류의 역사는 진화와 변화의 연속이며, 우리는 그 과정 속에 있다. 현재 세대는 미래 세대에 새로운 과제를 남길 수밖에 없고, 그 과제를 함께 공감하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전체주의 사회를 묘사하며, 권력에 종속된 교육이 어떻게 비판 능력을 빼앗고 순응만을 강요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교육은 그 반대편, 즉 비판적 사고와 자율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민주적 교육이다.
사회 변화에는 인류 역사의 진화흐름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볼 때 방향성이 보인다. 한국사회의 청년극우화처럼 미래세대가 철 지난 파시즘의식을 가지며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득권에 의해 왜곡된 시대의식이다. 과거로 회기 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근대, 근대, 후기근대라는 시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서구사회가 1968년 경험한 홍역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며, 교육전환을 할 때 우리는 미래세대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시대적으로는 근대화를 넘어서 후기 근대화 단계이지만, 우리 사회는 오랜 전체주의 정권이 지속되면서 전체주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 보니 과거로 회기 하는 현상을 겪고 있다.
70년 세대는 젊은 시절, 1994년 서태지의 노래에서 처럼 저항했지만 교육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멈춰진 이 지점에서 젊은 세대는 시대흐름을 바라보며 역사의 바통을 넘겨서 저항하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젊은이들은 이명박과 같은 구세대가 만들어낸 서열화된 질서속에서 순한 양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 질문 해야 한다. 젊은 이들은 오히려 그들에게 저항했던 부모세대와 함께 그 이전세대가 만든 구조를 바꿔내는 저항해야 한다.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매일 아침 7시30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9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곤 덥썩 모두를 먹어삼킨 이젠 지겨운 교실에서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주겠어
니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해멜까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 이제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 족해(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터로 넘겨 넌 보기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 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겉모습은 가린채 근엄한 척 한 시대가 지나버린 너 좀 더 솔직해봐 넌 할 수 있어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주겠어
니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비싼 네가 될 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해멜까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해멜까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 됐어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https://www.youtube.com/watch?v=f3Ops9MQL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