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딱히 어떤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뭔가 특별한 날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저 그런 일상이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나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아무런 예고도 준비도 없이 어머니에 대한 오래된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5년 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그날, 겨우 잠든 아버지를 병실에 홀로 두고 어머니와 함께 어둡고 차가운 새벽을 거닐었던 그때의 기억이…
바쁜 일상 속 그렇게 스쳐 잊혀 가는 많은 기억들처럼 평소에는 떠올려 본 적도 없었던 그날의 기억이, 왜 5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새삼스레 떠올랐을까? 먹고살기 위해 바쁘게 살고 있던 평소의 나였다면, 아마도 난 그 기억을 애써 붙잡지 않았을 것이고, 우연히 떠올린 다른 많은 기억들처럼 그대로 흐트러지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뭔가 달랐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나에게 기억의 끈을 놓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때마침 바쁜 회사 업무가 끝나 커피 한잔을 마실 여유가 생겼고, 차가운 바람에 그 많던 미세먼지가 사라져 하늘은 오렌지 빛으로 선명하게 물들고 있었고, 주변에는 그런 내 사색을 방해할 그 무엇도 없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 자그마한 기억으로 시작된 생각의 파편이 퍼즐을 맞추듯 점점 더 커져갔던 것은…
내 기억은, 2014년 그때로 문득 되돌아 갔다.
2014년 8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딸이 손자와 함께 오랜만에 집에 내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차를 몰고 가던 중, 커브길에서 차가 미끄러지면서 전복된 사고였다.
취업을 위해 먼 타지에 나와 있던 나는, 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바쁜데 올 수 있겠냐며 조심스레 물어보는 어머니의 목소리 뒤로, “당장 내려오라고 해!!” 하고 울부짖는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아내와 함께 부랴부랴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전에도 몇 번 사고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별 탈은 없었기에, 이번에도 그러기를 바라고 바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바람과는 달리 상황이 너무도 심각했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아버지는 다행히 의식은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다리가 제대로 붙어 있냐며 우리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자신의 다리를 찾는 아버지에게 우리들은 아무런 말도 해 주지 못했다.
응급실 의사들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우리 가족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의사에게 매달렸다. 정신이 없었다. 뭐부터 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고,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조차도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나,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나와 내 아내였다. 우리들은 경찰 진술부터 보험처리까지 우선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나서, 담당 의사에게 아버지의 상황을 물었다.
의사의 말로는, 당장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했지만 마비된 하반신이 회복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추가적인 수술을 고려할 수도 있지만, 회복된다는 보장도 없고 위험한 수술이어서 여기서는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아버지의 몸에 부담이 갈 것을 알면서도 좀 더 큰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해서 수술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대학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는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병원에서 미리 연락을 해준 덕분이었다. 수술을 하는 동안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나와 내 아내는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아니, 어쩌면 우리들이 느낀 시간이 그만큼 길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수술실 불이 꺼지고, 의사가 나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무사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회복 여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들은 수술이 잘 끝났다는 말에 우선은 안심했다.
수술이 끝난 후, 나는 내 아내와 여동생을 돌려보냈다. 어린 조카를 데리고 온 동생이 병원에서 밤을 지새울 수는 없는 일이었고, 허약한 내 아내 또한 며칠씩 병원에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와 나만 남아 아버지를 지키게 되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평소 성격대로 아프다며 온 병원이 떠나갈 듯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담당하던 간호사도 질렸다는 듯 제발 조용히 좀 시켜 달라고 했다. 어머니와 나는 그런 아버지의 투정에 밤새 시달려야만 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든 아버지를 잠시 놔두고, 우리 둘은 지친 몸을 이끌고 병원 앞을 같이 걸었다. 주변은 차가운 새벽안개가 자욱했고, 빛이라고는 드문드문 세워져 있는 흐릿한 가로등 불빛이 전부였다.
그때였다. 나와 함께 병원 앞을 거닐던 어머니는,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녘 하늘을 잠시 멍하니 올려다보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생각해 봤는데… 엄마가 돼서는 지금까지 아들한테 제대로 해준 게 하나도 없더라. 그래서 아들한테 너무나 미안해…”
어머니의 이 한마디 말이 시작이었다.
내가 생각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아니 놓고 싶지 않았던 이유… 지금까지 잊어버렸다 생각했던 기억. 그럼에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기억의 파편.
그날 새벽, 어렵게 꺼내던 어머니의 쓸쓸한 목소리. 안쓰러웠던 어머니의 표정. 그때의 짙고 차가웠던 새벽안개. 흐릿한 가로등 불빛, 그리고 그때의 내 마음…
당시에는 별소리를 다한다며 무심히 넘겼던 그 말이, 5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기억 속으로 들어와, 난 눈물이 왈칵 나올 것만 같았다.
왜 이제야 갑자기?
소설로 써도 될 법한 어머니의 기구한 운명이 너무도 안쓰러워서? 아니면, 이제까지 제대로 해준 게 없어 미안하다는 어머니의 그 말이 너무도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아니다. 어머니의 그 말이 계기가 되었을 수는 있지만, 이유는 될 수는 없었다.
그저, 이제 난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그 말을 했는지, 그리고, 어렵게 꺼낸 그 한마디 속에 담겨 있는 어머니의 마음이 무엇인지… 왜냐하면, 그때 어머니는 당신의 삶을 통해 자식만이 알 수 있는 언어로 이미 내게 모든 것을 얘기해줬으니까…
문득, 어머니에 대한 글이 미치도록 쓰고 싶어 졌다.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미칠 듯한 감정을 내가 또다시 잊어버리기 전에, 그것이 무엇이든 글로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지금 당장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면, 지금의 내 마음을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이렇게 가슴이 뭉클해지는데, 왜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어머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를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인데, 난 왜 어머니의 삶이나 감정에 대해 그동안 그렇게 무심했을까?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어머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었다. 어머니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좀 더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 바보 같은 나 자신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문득, 5년 전 그때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왜 해준 게 없어... 이렇게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줬는 걸. 엄마 기운 내. 그리고 엄마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