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아이를 낳고

어머니의 젊은 날이 있기는 했을까?

by yangTV

어느 날, 어머니에게 내가 물었다.


“엄마, 왜 난 실제 생일하고 주민등록상 생일이 달라?”


그 물음에 대한 어머니의 답변은 참 궁색했다. 병원에서 나를 낳았는데, 그때는 태어나면 자동으로 출생신고가 되는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나중에 서야 동네 아주머니가 따로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고 알려줘서 그제야 부랴부랴 등록하러 갔고, 그래서 날짜가 서로 달라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또 물었다.


“그럼 그때라도 실제 생일로 하지 그랬어?”


그러자 어머니는, 늦게 신고하면 벌금이 나오게 된다는 구청 직원의 말을 듣고는, 벌금 낼 돈이 너무 아까워서 그냥 신고하러 간 날로 출생신고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서 가장 먼저 떠올린 기억이 바로 이 짧은 어머니와의 대화였다.


내가 어머니에게 물었던 그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주민등록증을 받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 난 어머니의 그 궁색한 대답을 듣고는, 그저 ‘아, 그래서 이렇게 날짜가 다르구나’ 하고 생각하며 무심히 넘겼다.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도, 크게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생전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이라는 것을 받았는데, 거기에 적혀 있는 날짜가 내 생일과 다르니 궁금해서 무심코 물었던 것에 불과했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많은 기억들이 있는데, 왜 하필 이 일이 가장 먼저 떠올랐을까? 아니, 그전에 이런 기억이 아직까지 내게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그 일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었던가? 그 당시에는 분명히 무심히 넘긴 그저 그런 일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혼자서 그 이유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 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그 일을 먼저 떠올렸는지 말이다. 어머니와 나눴던 그 짧은 대화 속에서, 어린 그 당시의 나로서는 절대 알 수 없었을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느꼈던 것이다. 바로 어머니가 그동안 겪어야 했던 힘겨운 삶을 말이다.


어머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얼마나 낯설고 힘겨웠을까?


어머니는 스무 살에 아버지와의 짧은 연애 끝에 결혼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당시에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서로의 마음만 보고 결혼했던 것이다. 결혼 후에 신혼여행이라고 간 것은, 택시를 잡아타고 도시 외곽을 한 바퀴 돈 것이 전부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할까? 사실 결혼식을 올렸는지도 난 잘 모르겠다.


결혼 후에 어머니는 곧 나를 낳았다. 스물한 살 때였다. 그래서, 나와 어머니의 나이 차이는 겨우 스물한 살에 불과하다.


어렸을 때는, 그런 젊은 어머니가 너무 좋았고 자랑스러웠다. 어린 마음에도 내 어머니가 다른 엄마들보다 훨씬 예쁘게 보였다. 동네 아이들도 그런 내 어머니를 보면 항상, “너희 엄마 정말 예쁘다.” 하며 부러워했다. 그래서 항상 나는 어머니와 같이 다니고 싶어 했고, 언제나 내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마냥 좋아하기만 했던 철없는 내 모습이 너무도 부끄럽다


나이가 들어 마흔 중반이 되어가는 지금 돌이켜 보면, 나를 낳았을 당시의 어머니는 너무도 어리고 여린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기에는 아직 너무도 어렸던 내 어머니가 바라보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머니는 스무 살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타지에서 생활해야 했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포클레인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일거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고, 집에 들어오는 날도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래도 남편이 있다는 생각에 든든했을 것인데, 그나마 의지하고 있던 남편도 얼마 안 있어 큰돈을 벌어오겠다며 해외로 나가버렸다. 어머니가 결혼했던 때는 1970년대로, 해외 인력 수출이 붐이었던 때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남편의 도움도 없이 그렇게 혼자서 나를 낳아야 했다.


스물한 살의 어린 나이에 혼자서 나를 낳기 위해 병원을 향하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해외에 있는 남편이 올 수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타지에서 혼자 병원을 찾아가야 했을 어린 나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옆에서 손을 잡아줄 그 누구도 없이, 차가운 병원에서 혼자 그 아픔을 어떻게 견뎠을까? 나를 낳은 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실에서 그 어린 어머니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중에 어머니에게 전해 듣기로는, 나를 낳았을 때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서 미역국도 혼자 끓여 먹었다고 했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요양은 당연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집안일을 해야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음식을 해야 했을 것인데,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어린 당신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어머니가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곁에는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그것을 알기에는 너무도 어리고 어린 나이인데… 세상 물정을 아무것도 모를 스물한 살 그때, 그 어린 어머니는 당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을 어머니가 눈에 선한데, 그 누가 왜 늦게 출생신고를 했냐고, 왜 몰랐느냐고 탓할 수 있을까?


돈을 벌기 위해 해외에 나간 아버지는 매번 돈을 보내오지 못했다. 말도 안 통하는 아랍국가에서 아버지가 돈을 보낼 방법은 없었다. 그저 모으고 모아서 한국에 다시 돌아올 때 가지고 오는 수밖에는 말이다. 아버지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는 혼자서 어떻게 든 생활 해야 했고, 견뎌야 했을 것이다. 벌금? 그런 상황에서 벌금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을까?


세상에 의지할 사람도 없이 그 어린 나이에 어머니로 살아가야 했을 내 어머니의 삶이 눈앞에 선하다. 얼마나 힘겨웠을까? 홀로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런 어머니에게 스물한 살의 어린 나이를 즐길 여유가 과연 있었을까? 아이를 키워야 했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을 어머니는, 그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많은 희생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나이 때의 다른 여자아이처럼, 자신을 꾸미고,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즐거워하고, 영화를 보러 다니고, 가끔 여행도 가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뭔가를 도전해 보는 그런 삶이 과연 어머니에게 있을 수 있었을까? 아니,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한창 빛나야 할 그 시절을, 어머니는 나를 낳고, 키우고, 그리고 살아가는데 모두 써 버렸다. 당신과는 달리, 부모님에게 응석을 부리고, 대학교 캠퍼스를 누비는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그런 생각에 한편으로는 원망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도, 어머니는 항상 나를 바라보며 그때나 지금이나 환한 미소만을 보여주신다.


어머니는 항상 나를 향해 그렇게 환하게 웃고 있지만, 힘겹고 두려웠을 어린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해, 난 지금 이 순간에도 눈물이 자꾸만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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