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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TV Apr 11. 2022

미리 사서 걱정한다는 것

멀리 보는 사람이고 싶다 ③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

졸업을 앞두고 한창 취업준비에 매진할 때였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취업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주위에서는 공공연하게, “취업하려면 적어도 100여 곳 정도는 이력서를 넣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이 말은 물론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나는 어떤 때는 서류전형에서, 때로는 면접에서 열심히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취업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스트레스는 나날이 쌓여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양치를 하는데 뭔가 평소와 다른 불편함이 느껴졌다. 거울에 비춰가며 유심히 입안을 들여다보니, 혀 중앙에 뭔가 볼록한 것이 크게 나 있는 것이 보였다. 일반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이게 뭐지? 왜 이런 게…’


어쩌면 암 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 나는, 동네 병원에 가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여기고 바로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예약 없이 갔던 탓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진료를 받는 동안, 난 극도의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상태를 유심히 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내가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몇 가지 검사를 해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난 기계적으로 알겠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부산하게 뭔가를 준비하더니 내 혀를 마취하고 조직검사를 했고, 또 어떤 약품을 가져와서 이상 부위에 바르며 관찰하기도 했다. 검사가 끝난 후, 선생님은 일주일 정도 후에 결과가 나오니, 오늘은 우선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로 한 그날까지 난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더 이상 이력서를 제출하지도 않았고, 예정되어 있던 면접에도 가지도 않았다. 그 무엇도 더 이상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내게 닥친 일이 너무 버거워서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혹시 암이면 어떻게 하지? 돈은 어디서 구할까? 교회에 가서 적선이라도 받아야 할까?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부모님께는 언제 말해야 할까? 그런 고민들이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온통 지배했다. 그런 내 걱정을 더욱 부채질한 것은, 검사 결과가 나오기로 한 날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었다.


“〇〇대학병원입니다. 죄송하지만, 검사 결과가 일주일 정도 더 늦어질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는 의사 선생님께서 검사 결과를 환자분께 직접 말씀드릴 테니 병원으로 꼭 와 주세요.”


결과가 늦어진다는 그 말이 나를 더욱더 미치게 만들었다. 갑자기 늦어지는 이유는 뭘까? 굳이 왜 의사 선생님이 직접 설명해 준다는 것일까? 무슨 의미일까? 아… 그래, 난 암이구나. 내가 암이니까, 그러니까 병원에서도 쉽사리 내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이구나. 이제 난 어떻게 하지?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된 것처럼,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고통의 연속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어느새 암 환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 걱정의 나날 속에, 드디어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 왔다. 오늘이 바로 공식적으로 내게 암이 선고되는 날이다.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불안감을 안고 병원에 갔다. 이름이 호명되자 진찰실에 들어가 긴장한 채 의자에 앉았다. 조금 기다리자 문을 열고 의사 선생님이 바쁜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렇게 첫마디를 꺼냈다.


“검사 결과가 뭐 일 것 같아요?”


아니, 이분이 지금 장난하나? 내가 어떻게 알아! 절망에 빠진 환자를 두고 자기 일 아니라고 장난치나? 의사 선생님의 그 첫마디에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었다.


“다행히 암은 아니에요. 앞으로도 크게 문제 될 것 없으니 안심해도 돼요. 집에 가셔도 좋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멍 해졌다.


‘어? 뭐지? 나 이제 괜찮은 거야?’


어떻게 병원 밖까지 나왔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순간 병원 밖이었다. 병원을 나서자마자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그리고 크게 숨을 내뱉었다. 올려다본 하늘이 무척이나 파랬고 아름다웠다. 두근거리던 마음이 이제야 진정되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실감이 났다. 내가 암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 안심해도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때는 이미 예정되어 있던 면접에 불참해서 최종 탈락된 상태였고, 지원하고 싶었던 대기업 공채는 모두 끝나 있었다.




세상을 사는 동안 내게는 참 많은 걱정거리가 생기고는 했다.


친구가 나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이번에 성적이 떨어졌는데, 부모님 얼굴을 어떻게 볼까? 혹시 선생님에게 혼나면 어떻게 하지? 친구가 이 사실을 알면 나를 어떻게 볼까? 과연 내가 원하는 대학에 붙을 수 있을까?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할까? 혹시 사랑을 고백했다가 차이면 어떻게 해?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병에 걸리거나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취업은 할 수 있을까? 내 잘못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어떻게 하지? 이 일로 혹시 누군가에게 협박당하는 건 아닐까?


정말이지 걱정거리는 무궁무진했다.


어릴 적에는 친구관계나 학교 성적이 인생의 최대 걱정거리였고,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진로와 취업, 그리고 연애가 최대 걱정거리였다. 사회에 나가 이제 막 직장인이 되었을 때는 일에 대한 인정이나 동료와의 인간관계가 걱정거리였고,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나니 결혼과 내 집 마련도 걱정이 되었다. 결혼 후에는 또 어떤가? 건강 걱정, 돈 걱정, 노후 걱정… 정말이지 걱정은 내 삶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항상 내 곁에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크고 작은 걱정은 끊이지 않았다. 마치, “네 삶이 계속되는 한, 넌 내게서 벗어날 수 없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너의 숙명이야.”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했던 그 많은 걱정 중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거의 없었다.


도저히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고통에 몸부림쳤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 일어나지 않거나, 때로는 별다른 노력도 없이 의외의 곳에서 쉽게 해결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걱정이 기우에 지나지 않았던 점은 두말할 것 없이 정말 다행이지만, 그럴 때면 한편으로 허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나는 온갖 걱정으로 하룻밤 새에 한 50년은 늙어버린 것 같은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그동안의 내가 했던 고생이 헛된 것 같은? 다행인데 어쩐지 억울한… 이런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지…


나는 왜 이처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미리 걱정을 하는 것일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이것저것 걱정하며 대책을 생각해 보는 것도 물론 전혀 의미 없는 일은 아니지만, 너무 몰입해서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기보다 좀 더 여유를 가질 수는 없었을까?


아무래도 그놈의 상상력이 문제인 것 같았다.


어떤 문제가 내게 일어났을 때 제멋대로 무한한 날개를 펼치는 그놈의 상상력은 나에게서 자꾸만 여유를 빼앗고 점점 더 암흑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다. 그래서 별일 아닌 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속에서 스스로 점점 더 그 덩치를 키웠고, 어느새 내가 절대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이 되어 버리고는 했다.


혼자만의 상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는, 그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다. 그곳은 오롯이 나만 존재하니까.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말은 내가 있는 그곳까지 절대 닿지 않고, 결과적으로 내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소심한 사람에게 소심한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들 소심한 성격이 바뀔까? 걱정하고 있는 사람에게 잘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한 들 걱정이 없어질까? 유일한 방법은 오직 스스로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다.


때문에, 뛰어난 상상력(?)으로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매번 나 자신을 암흑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나를 위해 한 가지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따라 생각해 보려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절망이면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통제할 수 없는 절망이라면 차라리 그 시간을 즐기자.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다면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아등바등 걱정한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차라리 그 시간을 느긋하게 즐기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앞에서 말했듯, 내가 했던 많은 걱정 중 대부분은 그냥 기우에 불과했고, 때로는 걱정이 무색하게 의외의 곳에서 저절로 해결되기도 했으니까. 매번 걱정으로 불안해하기보다는 그게 백배 낫지 않을까?


그리고, 설사 정말 어떤 크나큰 시련이 내게 닥친다 해도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용기를 내려한다.


그 어떤 시련이든, 내 인생 전체에서 보면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학창 시절에 성적은 스스로의 삶을 비관하게 만들 만큼 내게 삶의 전부였지만, 지나고 보니 사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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