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가진 돈이 그리 많지 않아 작은 원룸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만,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지금 당장은 벌이가 적어 조금 힘들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저녁이 되면 우리는 갑갑한 원룸을 벗어나 별빛을 바라보며 산책을 했고,돌아오는 길에는 원룸 앞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높다랗게 반짝이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저곳에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자고 서로 다짐하고는 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던가?결혼하고 얼마 후에 예기치 못한 금융위기가 찾아왔고,많지 않던 내 월급도 경영악화로 반 토막이 되고 말았다.하루하루가 힘들었다.먹고 살기 급급해서 저축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외식이나 여행과 같은 문화생활은 당연히 꿈도 꾸지 못했다.그나마 다행인 것은,그런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탓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우리는 힘들면 힘들수록 서로를 위로하며,더욱더 힘껏 부둥켜안았을 뿐이었다.
줄어든 월급으로 어떻게 든 살아보려는 아내의 노력은 눈물겨웠다.당장 줄일 수 있는 고정비란 고정비는 거의 모두 줄였다.심지어 아내는 좁은 원룸에서 유일하게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자신의 휴대폰마저 해약해 버렸다.그렇게 있는 힘껏 허리띠를 졸라맸는데도,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가 쓸 수 있는 일주일 생활비는 고작 2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절망 속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마도 우리의 두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던 것 같다.그날은 집에 들어가기가 참 싫었다.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결혼했는데,정작 나는 아내에게 줄 자그마한 선물조차 살 형편이 못됐으니까.괜히 결혼해서 아내를 힘들게 했다는 자책이 들었다.집에 가야 하는데,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아내에게 참 미안했고,그날 만은 도저히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었다.
퇴근길에 나는 바로 집에 가지 못하고 괜히 거리를 이곳저곳 서성이며 시간을 죽였다.그러다가 저 앞에,늦은 시간인데도 아직 불이 밝혀져 있는 꽃집이 보였다.분위기를 보니 좀 있으면 가게문을 닫을 것 같았다.그 앞에서 잠시 망설이던 나는,이내 마음을 굳히고 가게에 들어갔고,이내 꽃 한 송이를 샀다.아무런 장식도 없이,말 그대로 달랑 꽃 한 송이였다.꽃집 주인을 보기가 너무나 부담스럽고 부끄러웠지만,그것이 내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전부였다.
꽃을 들고 집 앞에 도착한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현관문을 조용히 열었다.그런데,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간 집 안에는 뜻밖의 광경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자그마한 2인용 식탁 위를 밝히고 있는 하얀 촛불 두 개와 접시에 놓여있는 몇 가지 음식,그리고 아내의 환한 웃음이었다.
아내는 내가 건넨 꽃을 받고 무척이나 좋아했다.그리고는 꽃을 가슴에 안고 고생했다며 나를 식탁으로 안내했다.그곳에는 사각형 모양의 투박한 어떤 음식이 놓여 있었다.두부로 만든 스테이크였다.아내는 특별한 날인데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집 앞 골목을 돌고 있는 두부장수에게 천 원을 주고 두부를 샀고,그것으로 스테이크를 만들었다고 했다.하나만 샀는데도 둘 다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무척 크다면서 아내는 뿌듯하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나도 그런 아내에게 정말 커다랗다고,그래서 과연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맞장구치며 아내를 향해 한껏 웃어 보였다.
당시 그렇게 힘들게 살았던 기억 때문일까?
세월이 흘러,이제는 예전과 비교가 안될 만큼 풍족해졌고,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우리는 여전히 저축에 열을 올리며 예전과 비슷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아무리 월급이 오르더라도 매월 써야 하는 고정비는 가능한 늘리지 않으려 노력했고,물가가 올라 부득이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 폭은 최소한으로 하려고 했다.
두렵기 때문이었다.
한번 늘어나버린 소비는 다시 줄이기 어렵다.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다시 줄일 수 있을 것 같지만,내가 겪어본 바에 의하면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의 도전이었다.인간의 뇌는 항상 즐거움을 찾는데 그런 뇌의 명령을 의식적으로 거부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맛집 투어를 즐기던 사람이 한순간에 더 이상 외식을 할 수 없다면,퇴근 후 시원한 맥주 한잔을 즐기던 사람이 갑자기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된다면,그 누가 그런 현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더구나 잠깐도 아니고 그 기한이 언제 끝날지 전혀 기약할 수 없다면?소비를 줄인다는 것은 그와 같았다.그동안 내가 누려왔던 그 모든 즐거움을 기약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과 같았다.결코 쉬울 리가 없다.아니,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그냥 고통이었다.어느 늦은 밤,참다못해 치킨 하나를 주문해 정신없이 먹고 나서는,빈 상자를 쳐다보며 참았어야 했는데 참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서로 부둥켜안고 운 적도 있었다.
그런 일을 또다시 겪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당연히 어디에도 없다.그러니 어찌 두렵지 않을까?
세상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풍족하더라도 언제 또다시 그때와 같은 일을 겪을지 알 수 없다. 아니,적어도 나에게는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것이다. 특별한 굴곡이 없는 삶을 살더라도, 나와 같은 직장인이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생각보다 짧으니까. 그러니, 지금 당장 수입이 크게 늘어났다고 그 기준에 맞춰 대책 없이 고정비를 늘릴 수는 없다. 언젠가 수입이 크게 줄었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버거울 것이 분명하니까. 아는 맛이 무섭다고, 알기 때문에 무서웠다.
물론, 그렇게 두렵다고 해서 지금도 여전히 예전과 같은 극단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될 일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그런 극단적인 절약의 삶이 얼마나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또 병들게 하는지 너무도 절절히 느끼고 있으니까.이제는 더 이상 치킨을 먹고 나서 참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다.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때로는 큰 소비도 마다하지 않고 과감히 쓴다.건강한 삶을 위해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남을 위해 내 것을 베풀기도 한다.
단지,이전의 나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좀 더 먼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 정도?
현재를 중시하는 욜로(You only live once)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현재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쏟아 바로바로 만족을 얻으면서 그렇게 현재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껏 먹고,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껏 사면서 현재 주어진 삶을 충분히 즐기며 사는 사람들을 보고, 나와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잘못됐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누가 뭐라 해도 인생은 한 번뿐이고, 게다가 지나가버린 ‘지금’이라는 시간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으니까. 세상에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일도 분명히 있으니,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현재에 충실하자는 그들의 생각도 어떤 면에서는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런데, 현재를 충실히 살고자 하는 욜로의 삶이 꼭 지금 당장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과소비를 해야만 얻어지는 것일까? 지금 당장의 만족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만이 욜로의 삶일까?
내게 주어진 하나뿐인 삶이란, 분명 지금 이 순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내게 다가올 수없이 많은 ‘지금’들까지 포함한 모든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라 믿는다.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모두 내 하나뿐인 이번 생의 일부이니까. 그러니,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산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만의 만족이 아니라 앞으로 내게 다가올 수많은 “지금”들의 만족까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현재의 어떤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모든 것을 전부 써버리고는, 미래의 나에게 뒤처리는 알아서 하라는 듯 대책 없이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니까. 책임을 갖고 내 모든 삶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욜로의 의미는 아닐까?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들이 내게 말한다.
지금 당장의 만족을 쫓으면서 얻는 즐거움도 물론 좋지만, 좀 더 멀리 내다보며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그 계획을 위해 지금 이 순간 하나씩 하나씩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서 얻는 즐거움은 그 보다 훨씬 더 크다고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준비할 때, 난 언제나 설레고 기뻤다.선물을 받고 좋아할 그를 떠올리면, 준비하는 과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전혀 힘들지 않았고, 그 무엇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