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TV Apr 19. 2022

어머니의 시간

멀리 보는 사람이고 싶다 ④

젊었을 적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글 또한 참으로 공허한 이야기일 뿐이리라.




아무리 노력해도 세월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일까? 평소 나름대로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는 편이었는데도 마흔 중반의 나이가 된 지금 신체적 노화를 문득문득 체감하고는 한다.


피부는 확실히 탄력을 잃었다. 피부에 좋다는 콜라겐도 꾸준히 복용하고 있는데 문득 바라본 내 손에서는 과거 내가 봐왔던 중년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고, 내 얼굴 피부는 살이 찐 건지 예전보다 볼 살이 두꺼워지면서 점점 아래로 내려앉고 있다. 몸매도 가관이다. 예전에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고 또 쪘다고 해도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제 몸매로 돌아오고는 했는데, 요즘은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되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뱃살을 보며 요즘에는 그냥 지금 정도만 유지되어도 좋겠다 싶다.


체력도 바닥이다. 대학교 때는 밤새워 술을 마셔도 다음 날 멀쩡하게 수업을 듣고는 했는데, 요즘에는 맥주만 조금 마셔도 다음날 아침에 벌떡 일어날 수가 없다. 침대에서 일어나야 할 때면 어김없이, “아이고~”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내장 건강도 마찬가지다. 요즘에는 건강검진이 무섭다. 위 내시경을 하면 어김없이 역류성 식도염이 나오고 대장 내시경을 하면 또 어김없이 용종이 나온다. 건강검진 결과표에 쓰여 있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은 슬프게도 매년 그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 사람은 이렇게 소견서의 길이만큼 조금씩 늙어가는구나 싶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직장 탓에 전국에 흩어져 지내고 있는 내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일 년에 한 번 겨우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그들도 나처럼 늙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처음 우리가 모였을 때는 주로 학창 시절 우리들이 겪었던 추억을 이야기했는데, 어느 순간 아내와 자식들에 대해 이야기하더니, 이제는 오직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살찐 사람을 두고 게으르다고 늘 비난했던 어떤 친구는 이제 그 자신의 배가 두둑하니 나왔고, 유난히도 승진에 목말라하던 친구는 스트레스로 인해 큰 병을 얻고 난 후로는 지금 상황에 만족하며 근무하고 있다. 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마음만은 처음 만났던 그때 그대로인데, 몸은 어쩔 수 없이 점점 늙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내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도 마찬가지다. 유전 탓인지 30대 중반부터 하나 둘 나기 시작한 새치는 이제 더 이상 새치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흰머리가 가득하다. 염색을 자주 하면 좀 나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염색만 하면 피부 알레르기가 생기자 겁이 난 것인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다.


어느 날인가 장모님 댁에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그때 아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거실 바닥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는데, 장모님은 그런 아내의 뒷모습을 소파 위에 가만히 앉아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든 건지 아내의 머리카락을 잠시 쓰다듬더니 정성스럽게 머리를 땋아 주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장모님의 모습을 옆에서 빤히 바라보고 있자 장모님은 나를 보고 잠시 멋 적은 듯 웃음 짓더니, 예전에 당신의 딸이 아주아주 어렸을 때 이렇게 자주 머리를 땋아 주고는 했다고 내게 말했다. 긴 머리를 내리고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그렇게 머리를 올리니 아내의 흰머리가 더 가득해 보였다.


아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마찬가지로 정성스럽게 머리를 땋아 주면서 장모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때와 달리 세월이 흘러 이제는 희끗희끗해진 딸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모르는 사이에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구나… 그렇게 느꼈을까? 아니면, 장모님의 눈 속에서는 여전히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였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렇게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모님의 눈빛은 곤히 잠든 갓난아기를 보는 것처럼 무척이나 따스했고, 머리를 땋는 그 손은 한없이 조심스러웠다는 것이었다.


문득 내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의 나이가 올해로 몇이더라? 어머니가 스물한 살 때 나를 낳으셨으니 이제 예순일곱인가? 어머니 나이가 예순일곱이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던가? 내 일에 몰두하며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나 흐른 줄도 몰랐다. 언젠가 뉴스에서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여든세 살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다면 어머니의 남은 생은 이제 겨우 열여섯 해 정도인가?


너무 짧다.


매년 어머니의 얼굴을 한 번씩 본다고 가정하면 겨우 열여섯 번이면 영영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다. 세상일은 또 어찌 될지 모르니 어쩌면 그 시간이 내 생각보다 더 앞당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어머니의 그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몇 번이나 더 어머니가 손수 해주신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당신의 부재를 감당하기엔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더구나 시간은 상대적임을 나는 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빠르고, 점점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다섯 살 아이에게 5년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만큼 많이 남은 것이겠지만, 오십 년을 산 사람에게 그 시간은 그저 십 분의 일에 불과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고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그렇다면, 어머니의 시간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죽음을 향해 가고 있겠지?


갑자기, 참을 수 없이 슬퍼진다.




어머니의 시간 속에 내가 가득하도록,

그리고, 내 시간 속에 당신을 가득 담기 위해,

지금 바로 어머니에게 가봐야 하겠다.



이전 16화 미리 사서 걱정한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