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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TV Jan 06. 2022

두 개의 구멍

멀리 보는 사람이고 싶다 ①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때는 내 인생에 있어서 참 힘든 시기였다. 각 회사의 모집요강에 맞춰 이것저것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고,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러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도 물론 힘든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사람들의 무한한 관심이었다.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어른들은 왜 이리도 관심이 많은 것인지. 친척을 만나든 누구를 만나든, “그래, 어디 취업은 했고?” 하고 꼭 묻고는 했다.


아니, 때가 되면 어련히 안 할까? 누구는 취업이 싫어서 안 하나? 아무리 이력서를 내도 불러주는 곳이 없어 가뜩이나 속상한데, 그렇게 꼭 확인 사살을 해야 하나? “적당히 좀 하세요!” 하고 화를 내고 싶지만, 동방예의지국에서 그게 가당한 일인가? 그저 그때마다 “그냥 열심히 하고 있어요. 헤헤헤.” 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얼버무릴 수밖에…


그렇게 어른들의 응원(?) 속에서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고 결과 발표를 기다리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한 은행권으로부터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무척이나 기뻤다. 하도 서류전형에서 떨어지곤 했더니, 면접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 감지덕지였다. 남은 기간 동안 나름대로 면접 준비를 하고서, 당일 날 아침, 말끔하게 양복을 입고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 장소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안내에 따라 번호표를 받고 다른 구직자들과 한 공간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곧 어떤 말쑥히 양복을 입으신 분이 우리들 중 몇 명을 호명했다. 면접 보러 들어오라는 신호였다. 나도 그들 속에 섞여서 의기양양하게 면접 장소에 들어갔고, 잠시 후 땀을 뻘뻘 흘리며 나왔다. 면접이란 것이 원래 이런가? 압박도 그런 압박이 없었다. 그때의 면접 결과가 어땠는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저, 나는 지금 은행에 다니고 있지 않다는 것 정도만 말해 두고 싶다.


아무튼, 그렇게 땀범벅이 되어 내 인생의 첫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데 사무실 문을 열고 어떤 낯익은 사람이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보다 1년 먼저 졸업한 선배였다. 학교에 다닐 당시, 항상 재미있는 입담으로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선배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무척이나 기쁘고 반가웠다. 나는 얼른 그 선배에게 쪼르르 다가가 아는 척을 했다.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여기서 만나니까 더 반갑네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난 탓인가? 선배는 약간 당황한 듯 보였다. 친하게 지냈던 기간이 무색하게 선배와 나 사이에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어쩌지? 상황이 좋지 않았나? 여기는 학교가 아니라 회사니까 아는 체하지 말았어야 했나? 정적이 흐르던 그 잠깐 동안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이윽고 선배가 잠시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렇게 조심스레 물었다.


“정규직 면접 보러 온 거야?”


어?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일단 반사적으로 그렇다고 답하긴 했는데, 나에게는 선배의 그 첫마디가 무척이나 이상하게 들렸다. 오랜만에 본 선배가 나에게 했던 첫마디가, "반갑다." 거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가 아니라, “정규직 면접 보러 온 거야?” 라니… 내가 느끼기에 당시 선배의 그런 반응은 뭔가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단지 질문 내용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표정 또한 평소 내가 알던 모습과 다른 느낌이었다. 뭐라고 딱히 표현할 수는 없는데, 뭔가 전체적으로 많이 어색했다.


내가 느낀 어색함은 단지 기분 탓은 아니었다. 실제로 선배는 나와 이야기하는 동안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이유는 오래지 않아 곧 알 수 있었다. 선배는 그 은행에 1년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이번 정규직 모집에서 면접 기회조차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나는 선배에게, “그럼, 우리 앞으로 같이 열심히 취업준비를 해보게요.” 하고 말했고, 선배도 그러자고 했지만, 아무래도 그 선배는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선배가 웃으며 했던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뭐, 일단 돈은 나오니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굳이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이미 나부터도 그러니까 말이다.


마음이야 항상 굴뚝같다.


지금은 어찌어찌 취업해서 회사를 잘 다니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 회사에 다닐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갑작스럽게 기업이 도산할 수도 있고, 어떠한 이유로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기술을 연마하든 경력이나 지식을 쌓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뭔가를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언젠가 예고도 없이 나에게 닥쳐올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어느새 해이해져 있는 나를 보고는 한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딱 오늘만 쉬자. 그래, 내일부터는 정말 열심히 하는 거야.’ 언제나 이런 유혹에 빠져, 모든 것은 항상 내일부터가 되고 만다.


그러니, 그 선배의 마음을 이해 못 할 것은 없다. 그도 분명 마음속에서는 지금의 불안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었을 것이나, 나와 같은 이유로 좀처럼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배의 마지막 말처럼, 당장은 돈이 나오니까.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그것으로 어떻게 든 지금 생활하고 있으니까. 미래에 닥칠 “계약 종료”가 너무도 확연히 예정되어 있어 조금 불안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지금 당장의 일은 아니니까.


당장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준비 없이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그 선배를 비난할 수도 없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어릴 적 나는, 방학이 되면 언제나 미리미리 방학숙제를 해 두겠다고 결심하고는 했지만, 단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한꺼번에 몰아서 하고는 했었다. 매번 겪어서 그것이 나중에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할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 선배처럼, 아무리 그 끝이 명확히 예견되어 있어도, 당장 내게 닥친 일이 아니었으니까.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미래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미래이고, 따라서 예측해 볼 수는 있어도 실제로 일어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설사 미래의 결과가 예정되어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 예정된 결과가 또다시 어떻게 뒤바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을 미리 대비해 뭔가를 준비한다는 것이 과연 말처럼 쉬운 일일까? 애써 준비했는데 도중에 상황이 바뀌고, 바뀐 상황에 맞춰 다시 준비하면 또다시 상황이 바뀌고. 그런 지난한 과정을 언제까지나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이 단지 강한 의지만으로 되는 일일까?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라고 쉽게 조언하지만, 그건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어렵다는 말이지, 그 조언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그것이 절대 쉽지 않은 일일지라도, 우리는 사람들의 그 흔해 빠진 조언대로 그 어려운 일을 해 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내 인생에서 난 을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을이 되어 누군가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으니까.


모 자동차 제조회사에서 경영악화로 구조조정을 강행했을 때, 많은 근로자들이 철탑 위에 올라 계속고용을 요구하며 처절하게 투쟁하는 것을 보았다. 오랜 투쟁에도 성과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포기하고 다른 직장으로 발걸음을 돌린 이들도 있었지만, 문제는 다른 일부의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삶을 비관하여 자살하기도 했고, 일부는 몇 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철탑 위에서 농성을 계속하기도 했다. 회사에 남고자 사활을 거는 그런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왜 거기에만 온 힘을 다해 목을 매고 있는 것일까? 가장만 바라보고 있는 다른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가망 없는 일에 목을 매기보다는 당장 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가장으로서 책임이 아닐까?’


물론, 이해 못 하지는 않는다. 몇십 년을 다닌 직장에서 한순간에 쫓겨나게 된 그 절망적인 심경을 어떻게 모르겠는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그 회사에 매달리거나, 현실을 비관하여 자살해야 할 정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개개인의 여러 사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상식으로는 결코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혹시, 자신도 모르게 자기 인생에서 어느새 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너무 현실에 안주해서 미래를 위해 준비해 둔 다른 도망칠 구멍이 없으니, 그렇게 속절없이 을이 되어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이미 을이 되어 휘둘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다른 생각 같은 건 전혀 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 모든 것이 막막했을 테니까.


물론, 잘난 척 평하기는 했지만, 같은 입장이 되었을 때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 단정할 수는 없다. 나 또한, “을이 되고 싶지 않아.” 하고 생각만 할 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언제나 갈팡질팡하기만 하고, 그나마 계획했던 것조차 갖가지 이유를 들어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경험을 통해 이것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지금 뭘 어떻게 해야 인생의 갑이 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성장했던 때는 언제나 여기저기 일을 벌이며 바쁘게 살았던 때라는 것을. 대학교 때도 그랬고, 해외유학을 갔을 때도, 그리고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그랬다. 항상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일을 벌이며 바쁘게 살다가 어느 순간 문득 뒤를 되돌아봤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성장해 있음을 느끼고는 했다.


그러니 미래를 위해 당장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그저 바쁘게 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바쁘게 살다 보면 어느새 지금 내가 가진 구멍 외에 또 다른 두 번째 구멍이 자연스레 생기지 않을까? 과거 내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나에게 당장 일을 때려치우라고 했을 때, 인생의 갑이 되어 멋지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을 그저 바쁘게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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