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문을 두드리다
4월의 일본 여행에서 아이가 아팠던 경험이 나에게 어떤 생채기를 남겼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온 후 아이는 다시 건강해졌지만 나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괴로운 밤을 보내고 나면 다시 종일 잠에 대한 걱정을 했다. 오늘 밤은 잘 잘 수 있을까. 오늘은 꼭 자야 하는데. 입면에 대한 걱정이 커질수록 잠은 멀리 달아났다.
아이가 어쩌다 조금 아픈 낌새라도 보이면 내 안의 어떤 스위치가 번쩍, 켜졌다. 그건 내 힘으로 끌 수 없는 거대한 불안이었다. 잠이 든 아이의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히고, 창문을 열었다 닫으며 온도를 체크하고, 작은 기척에도 벌떡 일어나 아이를 살폈다. 강박에 가까운 불안이었다. 잠을 자기 틀렸다고 생각한 날에는 반드시 잠을 자지 못했다.
원래도 잠귀가 밝고 잠자리에 예민한 편이었기에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 밤을 새우고 나면 곯아떨어져 버리는 게 패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한 달에 절반 가량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생활처럼 자리잡자 몸 여기저기가 고장이 났다.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와 독감에 걸리니 항생제를 끊지 못했고 오랜 항생제 복용으로 지독한 질염이 찾아왔다. 오래도록 얼굴을 마주한 이비인후과와 산부인과 의사는 때마다 더 독한 약을 처방해주었다.
두 달 만에 삼 키로가 빠졌다. 워낙에도 마른 편이었기에 두 볼이 푹 패이고 뼈만 남을 정도로 보기 흉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부모님과 시부모님이 내 건강을 걱정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이가 아플까봐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꼴인 것 같아서.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1년 이상은 복용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다. 내 발로 정신과를 찾아가 수면제 처방을 부탁했을 때에는 이제 내 힘으로 불안과 불면을 다스릴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였다. 네 달간 겪은 수면장애로 종일 몽롱했고 무엇보다도 아이를 잘 돌볼 수가 없었다. 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고, 내가 편해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답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