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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Mar 16. 2024

첩첩산중과 라떼 사이

원래 일은 별거 아닌 일로부터 시작된다

* 첩첩산중이란 산을 넘으니 또 산이 나오듯 어려운 일을 지나고 나니 눈앞에  또 다른 어려운 일이 생김을 뜻한다. 나에게 첩첩산중이란 보이지 않는 테트리스가 엄마인 나와 딸 사이 그 틈을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 전 불임가능성이 있다는 말 한마디에 무턱대고 엄마라는 단어에 판타지가 생겼다. 마치 어린아이가 마트에서 원하는 물건을 살 때까지 조르는 그 마음이랄까. 엄마가 되면 내 앞에 모든 인생이 드라마처럼 아이로 인해 행복함만 가득할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확신으로 가득 찼다. 아니 임신만 되고 건강하게 아이가 태어난다면 무슨 일이든 잘 해내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슬기롭고 지혜롭게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엄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에 들었던 외동이니까 예의 바르고 착하게 알아서 뭐든 잘 해내는 그런 아이로 자라라고 부담 주지 않고 친구 같은 엄마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친구 같은 엄마는 무슨, 어린 시절 엄마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나고 오히려 아이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하는 라떼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말이야! 네 나이 때, 너처럼 안 했다. 얼마나 착했다고..."


나는 매일 밤 잠든 아이의 이마를 쓸어내리며 내일 다가올 첩첩산중 육아와 오늘의 라떼 사이에서 후회와 고민에 잠을 뒤척인다.




"숙제했니?"

"... 아 할 거야..."

"엄마가 먹으면 바로바로 치우라고 했잖아!"

"아! 치우려고 했어..."

"하고 싶은 거 먼저 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지!"

"아... 알았다고..."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투야! 엄마는 어릴 때 그랬으면 혼났어!"

"... 네"


아이가 12살이 되고 가을로 접어들 때부터 보이지 않는 테트리스 벽돌이 하나하나 틈을 메우며 우리 사이를 가로막기 시작했다. MBTI부터 다른 우리. J인 엄마와 P인 딸은 눈만 뜨면 모든 게 불만 투성이 팩트폭격이 시작된다.


아이가 사춘기로 접어들기 전에는 말대꾸가 뭣이란 말인가. 오히려 엄마가 이래라저래라 하기 전에 알아서 해줬던 착한 딸이었는데 그 딸은 이제 없다. 오히려 엄마가 애정을 구걸하기에 이르렀다. 정서적 독립시기라는 걸 알지만 갑자기 반항의 기질이 생기고 엄마의 말이라면 무조건 청개구리 가면을 쓰고 말대꾸부터 하는 딸에게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현재 진행 중)


오은영 박사의 책도 몇 권 읽고,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의 사춘기 자녀도 있으면 찾아보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엄마인 내가 더 많이 참고 이해해야지 무슨 답이 있을까.'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나도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인지라 그 '정도'가 지나칠 때는 화가 치민다. 이렇게 이해만 해주고 공감만 해주다 보면 어느새 버릇없는 아이로 자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불쑥불쑥 마음 깊숙한 곳에서 튀어 오를 때면 주체 없는 화가 활화산처럼 터져버린다.


어느 날 일이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등교를 시작하며 출근 준비를 하는 나와 등교를 해야 하는 딸은 매일 아침 분주하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아침에 샤워를 하고 간다며 출근 준비와 겹치기 시작했다. 거기에 아침마다 벌이는 패션쇼란... 나의 속마음은 '저렇게 옷에 신경 쓰고 외모를 가꿀 시간에 공부를 더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인가 싶지만 어쩔 수 없다. 갑자기 나를 부르는 목소리.


"엄마! 이거 봐바 어때?"

"뭐?..."


출근 준비로 바쁜 내게 딸이 보여주는 것은 등교할 때 입을 옷이었다. 사실 초등학생의 패션이란 청바지와 면티가 다 이거늘. 변화를 준다면 컬러의 다양성이 끝이다.


"괜찮은데... 그래도 어제 회색 입었으니까 오늘은 아이보리 어때?"

"후드티잖아. 그럼 후드 집업 입어야 하는데 모자가 2개란 말이야. 싫어."


딸의 의견은 명확했다. 하지만 모자가 2개면 어떤가. 모자 2개를 잘 겹치면 1개가 될 텐데.


"괜찮아. 모자를 잘 겹치면 이상하지 않아. 오히려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아! 싫어!... 안되는데... 이상한데..."


우선 엄마 말대로 입어는 보는 딸. 하지만 거실 바닥을 디디는 발소리에 내쉬는 숨소리에 온갖 짜증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를 보는데 옷이 바뀌었다.


"모야... 다른 옷 입을 거면서 엄마한테는 왜 물어봤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옷은 아니야..."


옷도 갈아입었으면서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이다.


"근데 왜 짜증을 내니... 아침부터!"

"아... 내가 언제 짜증을 냈어."

"짜증 냈잖아. 엄마도 기분 나쁘다고 너처럼 짜증내면 좋겠니?"

"아... 알았다고."


여기서 차라리 끝났다면. 아직 나도 철이 덜든 엄마인가.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엄마가 네 나이 때는 말이야. 할머니가 하라고 하면 말대꾸 안 하고 다했다! 어디서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니?"

"... ... 아..."


아이의 답변에 더 기분이 나빠진 나는 결국 짜증을 시작한 딸을 앞에 두고 등교하기 전 잔소리를 시작한다. 아이의 표정과 눈빛에서 '알았으니까... 이제 제발 그만요.'라는 말을 하는 듯했지만 브레이크 없는 나는 멈추질 못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테트리스 벽이 틈을 메우며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다.


아이는 친구를 만나 등교를 했고, 걸어서 회사로 출근하는 길. 왜 그리도 씁쓸한지. 이 또한 지나갈 사춘기라는 걸 알지만 용납을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또 한편으로는 나의 어린 시절에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하셨던 친정 엄마에게 걱정 끼치는 게 죄송스러워 마음껏 누리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서 괜히 아이에게 더 많은 화를 낸 것은 아닌가 후회까지 밀려들었다. 이런 날은 회사에서 일은 하지만 나의 온갖 정신과 마음상태는 아침에 아이와 일에 멈춰 무한 재생이다. 그리고 마무리는 항상 이렇게 정리가 된다.


'사춘기도 금세 지나갈 텐데 엄마인 내가 조금 더 이해했어야 했어. 등교하는 아이에게 뭐 하는 짓이었지. 그냥 긴 말을 피하고 될 수 있으면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줬어야지. 그래 퇴근하고 만나면 싸우지 말아야지. 꼭!'


그런데 어디 엄마의 각오와 의지가 그대로 실천되기가 쉬운 일인가. 한 가지 문제를 이해하고 다시 시작된 아이와의 만남은 또 다른 문제로 재점화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 또한 지나가리. 부디 예의 바른 아이로만 커주길 바라며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본다.


"... 엄마야?..."

"응 잘 자..."

"엄마도 잘 자요~"


나의 손 길에 아이가 잠에서 깰 때 내 품에 파고드는 모습은 여전히 사랑스런 딸이므로.

'엄마도 너의 성장통처럼 성숙해지고 있는 과정이구나'로 정리하며 아이의 방문을 조용히 닫는다.


부디, 너의 사춘기 성장통이 조용히 막을 내리고 테트리스 벽이 사라질 때 나의 라떼도 끝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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