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지겨운 삶에 아무튼 얼마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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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알지 못하는 작가님의 싸인을 받았다. 무려 40분 줄을 서서 받았다. 맛집에서조차도 줄을 서는 일이 없는데 그날은 갑자기 줄을 섰다. 들인 시간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어디에서 좋게 말할 자신이 없는 나를 알지만 그 작가님을 좋아하는 친한 동생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 한 명씩 줄어드는 앞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조급하고, 뒤에 이어지는 끝없는 줄을 바라보며 그래도 저들보단 앞이라 안도하며 40분을 기다렸다. 그렇게 이름만 알던 작가님과 나는 책으로 우정을 기록했다.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싸인을 받았단 이유로 그날 구매했던 책 사이에서 제일 먼저 꺼내 읽기 시작했다. 산문들로 구성된 책 한 권에서 작가님과 나의 닮은 점도 다른 점도 찾으며 대화하든 글을 읽어 내려갔다. 작가님의 어머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사진도 남겼다. 나의 엄마와 작가님의 엄마는 이름이 같았다. 잊고 있던 이름이라 처음에 바로 기억하지 못했다.
'아 그랬지, 나를 낳아준 엄마가 그 이름으로 존재했지!.'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 꽤 흔한 이름 같은데 이렇게나 잊고 살았나 싶었다. 우연히 마주친 잘 알지 못하는 작가님의 글에서 나는 작가님 어머님과 같은 이름을 가진 나의 엄마를 꺼내었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와 동생은 할머니 집으로 이사를 했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학을 갔고 엄마에겐 전화가 두 번 왔다. 울지 않겠다고 했지만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저항할 수 없는 물이 차올라서 뚝뚝 흘렀다. 8살이란 나이는 원래 그렇다. 엄마는 미국에 있다고 했다. 그 시절에는 부모가 이혼을 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내게 왜 할머니랑 사냐고 물었고 나는 엄마가 미국에 있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선생님께 달려 나가 이 소식을 알리며 소리쳤고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정말 들은 대로 믿었고 말했는데 놀림을 받는 줄도 몰랐다. 아주 오래 시간이 흐르고 개명을 위해 엄마와 아빠의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했다. 엄마랑 20년을 못 보고 살았지만 나는 엄마의 피를 나눈 딸이라 너무 쉽게 가족관계증명서를 뗄 수 있었다.
상상을 해봤다.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드라마처럼 어쩌면 엄마가 보고 싶은 딸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교문을 살피기도 했다. 자유연기를 준비하면서도 엄마이야기에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눈물을 저항할 힘이 생겨버릴 만큼 커버린 딸이다.
엄마에게는 남편과 쌍둥이 딸 두 명이 있었다. 양재역 사거리에서 잠시 멈추어 엄마 이름이 적힌 흰 종이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주님.' 정말 제일 먼저 나온 말은 감사기도였다. 엄마가 더 이상 맞지 않는 곳에서 예쁜 딸들을 17년 동안 키우면서 평범한 가족을 이룬 것에 감사기도를 했다. 나와 동생을 평생 품고 살 그녀의 아픔을 알 있다. 아니, 알고 있나? 어쩌면 잊거나 무뎌졌을 테다. 뭐가 됐든 어딘가 살아있다. 나의 존재를 만들어 낸 사람이 정말로 있다. 어쩌면 모든 게 꿈일지도 모른다고 이 세상조차도 없는 허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만져지는 내 몸은 어쩌면 로봇일지도 모른다고 영화 속 이야기들이 그냥 나올 일 없다며 생각했다. 그 종이 한 장에 나의 존재를 확인받았다.
잘 알지 못하는 작가님은 그렇게 나를 가장 잘 아는 작가님이 되었다. 듣지 못할 그 이야기를 속으로 주저리 뱉으며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