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

지치고 지겨운 삶에 아무튼 얼마나 고마워

by 이윤서

_

누구나 삶을 지탱하는 생각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없다면 눈치채지 못할 뿐 분명 존재한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생각들을 적으면서 누가 읽어줄까 하는 그런 글들을 적으면서 나는 언제나 늘 사랑에 대하여 적고 싶었다. 또 말하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일이 모호해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분명 느끼는 감정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감정들의 정의를 각자의 생각으로 기록한다. 가장 와닿았던 기록은 '롤랑바르트 [사랑의 단상]'_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라는 문장이다. 또 누군가는 사람은 자신밖에 사랑할 줄 모르기에 타인을 사랑한다는 건 자기 확대라고 말하던데 이 또한 와닿았다.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면 '너무 어렵네요.'라고들 말한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임에도 말로 설명하는 일이 이렇게 어렵구나 싶다. 사랑은 상대가 알아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지구력이고, 지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가장 명확하게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일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사랑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아마 우린 숨이 너무 차겠지. 항아리에 있는 사랑을 한 번, 두 번 퍼내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소모가 큰 일이니 그 사랑을 스스로 품고 있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사랑은 변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퍼내어낸 사랑의 모양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랑을 스스로에게 계속 펌프질 하여 항아리가 비어있지 않도록 하는 일이 더 어렵지 사랑을 나누는 건 어렵지 않다고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간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떠나간다. 생각했다. '사람과의 만남에는 유통기한이 있구나!' 나름의 법칙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누가 떠나가더라도 '그래, 유통기한이 여기 까지구나. 그렇구나.' 마음을 달래면서도 또 그 한켠에는 사랑하는 스스로를 불쌍하다 생각했다. 마음을 주지 않는 법을 알지 못한다.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관계로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인사치레로 말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많이 말하고 싶었다. 우리의 관계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이런 마음과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마음과 생각과 다르게 떠나보내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내 속에서 다른 모양의 사랑으로 존재한다. 더 넓고 큰 사람이라면 좋았을 텐데 다른 모양의 접시들이 더 정교하게 겹쳐졌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 텐데 점점 공간이 줄어든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책임을 느끼고 그 책임을 표현하면서 산다는 건 가끔은 참 외로운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 한없이 작아만지고 싶은 순간에 또 누군가가 사랑하는 일을 언니를 보면서 배운다고 말해주면 '나도 어려워'라고 속으로 말한다. 근데 그 말이 또 나의 항아리를 채워줘서 그릇 하나를 놓는다.


떠나간다. 남겨진다. 맺혀있다. 채우고 마르지 않게 한 번씩 또 채워준다.


사랑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아픔이었던 경험을 하고선 사랑의 표현이 서툰 누군가가 있을 수 있으며 나의 사랑 방식 또한 누군가에겐 폭력이 되었을 수 있다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온전한 사랑을 할 수가 없구나. 그건 신의 영역이구나. 연신 놀라워 복잡한 마음을 나열해 보았다. 역시나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만 담아두고 한정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구나. 나라는 사람은 사랑을 말하고 싶었는데 그 마음이 나를 아둔하게 만들었구나. 지키고 싶은 것들에 애써 이유를 만들어 기어코 또 걸어 들어간 시간들을 나열해 보았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할머니집에 있는 모든 사진에서 엄마를 오렸다. 분명 아빠가 다 치우라고, 잘라내라고 했는데 그래서 그 어린 손에 가위를 들고 싹둑싹둑 잘라냈는데. 아빠는 그 어린아이가 사진을 혼자 자르는 모습을 보면서 '독한 애'라고 생각했단다. 누구의 기억이 맞는지 모르지만 아빠도 나도 사랑을 하고 싶었다. 엄마에게서 사랑을 받고 싶었다.


연출은 나를 분명 사랑했다. 온갖 죽이는 말들과 폭력적인 행동에서도 나는 그 사랑을 분명 느꼈다. 그럼 사람을 받은 것일까? 스스로를 낮춰가며 그 여자의 평생을 사랑하리라 마음먹었던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나?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선생님들은 그곳에서 사랑을 추억하실까?


사랑을 하고 싶었다. 사랑을 말하고 나의 사랑이 누구에게든 사랑으로 닿기를 원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십자가에 두시고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실 때의 사랑, 어떤 상황에서도 내치지않는 그 마음을 배우고 싶었다. 신에게 받은 사랑이 항아리를 채워도 듣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어떤 순간에서도 너의 탓을 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그런 사랑을 듣고 싶었다.


이전 03화몸부림이라도 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언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