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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양 May 28. 2021

이것 때문에 부부 싸움을 한다고?

참 안 맞는 부부




# 시작은 수건 한 장

신혼집에서 알콩달콩 신혼 생활을 시작한 지 며칠이나 됐을까,

깨가 쏟아져야 하는 신혼집에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불만은 곧 부부싸움으로 커졌다.

이 모든 싸움의 시작은 수건 한 장이었다. 


수건에 대한 아내 입장 

나는 아침에 수건을 쓰면 수건걸이나 문고리에 걸어놨다가

저녁에 한 번 더 쓴다. 


수건에 대한 남편 입장

수건을 왜 두 번 써? 수건은 딱 한 번만 쓰는 거야.

아침에 샤워할 때 수건으로 닦았으면 바로 세탁기에 넣어야지.


반박하는 아내 입장 

수건을 한 번 쓰고 세탁기에 넣으면 물 낭비다, 세제 낭비다


반박하는 남편 입장 

수건을 많이 사놓고 세탁을 한 번에 하면 되지 않냐

초기 자본만 투자하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하는 게 더욱 청결하다.


우리 집에서는 수건을 쓰고 나면 말려서 이틀까지도 쓴다. 

그런데 남편 집에서는 수건을 쓰고 나면 바로바로 세탁기에 넣는다.

그래서 남편 집 화장실 찬장에는 수건이 거짓말 안 하고 한 50개는 있다. 

우리 집? 우리 집은 많아봤자 열댓 개?


나는 당황스러웠다. 

다른 것도 아니고 '수건' 한 장으로 이렇게까지 의견이 다를까 싶었다. 

이렇게까지 싸울 일인가 싶었다.


근데...

싸울 일이더라. 


알면 알수록 우리는 참 다른 사람이었다.

다른 가정에서 자라왔고 다른 생활 습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과 계속 얘기한 끝에 결국, 남편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

어쨌든 청결한 건 맞으니까. 청결하게 산다고 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평일에는 일하느라 시간이 없고 주말에 밀린 빨래를 세탁하는데

이건 뭐, 매일매일 수건이 기본 7장에 많으면 10장까지 나오니까

다른 세탁물 하고 합쳤을 때 양이 심각하게 많았다.


양이 많은 건 둘째치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점점 하다 보니 수건을 세탁기에 넣는 사람도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사람도

그걸 말리고 정리하는 사람도? 

딱 한 사람인 거다. 

정답은?

바로 아내! 딩 동 댕 동~


# 수건 한 장의 파급력   

결혼하고 세 달 정도 지났을까, 

수건 때문에 쌓여있던 불만이 서서히 차오르다가 화산처럼 펑~ 폭발해버렸다.


나 : 오빠,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

같이 사는 집인데 왜 나만 청소, 빨래, 설거지를 다 해?

오빠는 뭘 하는데?


남편 : 나는 쓰레기 버리기, 화장실 하수구 뚫어주기, 전구 갈아주기 등등 

집안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내가 해결하잖아


나 : 그건 어쩌다 한 번 있는 일들이고. 왜 나만 매일 집안일을 해?

오빠는 내가 사는 집에 얹혀사는 하숙생이 아니잖아. 

집안일 같이하면 안 돼?


남편 :.... 


나 : 이대론 안 되겠어. '집안일 분담 회담'을 시작하자


그렇게 남편과 집안일을 나누었다. 


# 집안일을 분담하다


빨래 

아내가 빨래를 돌리고 

남편이 빨래를 널고

같이 빨래를 개서 정리한다.


집 청소

아내가 청소기를 돌리고

남편이 바닥을 닦는다.

화장대, 책상, 책장 등의 먼지는 아내가 닦는다. 


화장실 청소 

아내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남편이 하수구를 뚫는다


설거지

아내가 대부분 담당하고

요청 시에 남편이 군말 없이 도와준다


기타 잡무 

전구가 나가거나 뭔가 고장이 나면 남편이 담당한다.

일반 쓰레기는 남편이, 음식물 쓰레기는 아내가 버린다.


예전에 KBS '스펀지' 방송에서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남편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청소 좀 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해야 할 일과 마감시간을 알려주면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실험이었는데

놀랍게도 남편들은 그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지금도 커뮤니티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캡처본. 


나도 놀랐던 게 집안일을 분담하면서도 

'제대로 하긴 할까?' 싶었는데 

남편한테 정확한 역할을 주고 책임감을 부여하고 나니 

남편이 아무리 바빠도 제 역할을 하긴 하더라! 

(가끔 미룬 적도 있지만) 


요즘은 집안일을 먼저 도와주기도 한다. 

설거지거리가 쌓여있으면 혼자 쓱싹 해놓기도 하고

나한테 '잘했지? 잘했지?' 라며 자랑도 한다. 




'수건' 한 장으로 시작된 부부 싸움이

결국 '집안일 분담'이라는 평화로운 엔딩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건 빙산이 일각이고 우리는 매번 다른 주제로 신선하게 싸운다. 

하루 삐지고, 이틀 삐지고, 삼일 째가 되는 날 같이 치맥을 먹으면서 풀고

삼겹살에 소주를 한 잔 마시면서 푼다. 

그리고 똑같은 일로 또 싸운다. 아주 대단하다...


우리는 싸우면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에 대한 양보와 배려를 배워가는 중이다. 


아직 갈길이 한참 멀어 보이지만 

그래도 조금의 변화가 생겼으니 

앞으로의 날들이 더욱 좋아질 거라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10년, 20년, 30년 넘도록 오~~ 랫동안

화목하게 살고 계신 모든 부부님(?)들, 정말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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