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안 맞는 부부
회피형 남편과 사는 법
'술 먹고 잠수 타던 남편, 결혼 후 180도 변하다!' 편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우리 남편은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이다.
- 책임지고 구속받는 걸 싫어한다.
-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잠수를 타거나 도망간다.
- 남들에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중시한다.
여러 책이나 칼럼 등 회피형 인간을 소개하는 글과 분석이 많지만
실제로 회피형 인간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딱 한 가지 키워드는
우리 남편은 연애할 때부터 회피형 인간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만약 어떤 일로 싸우게 되면 남편은 이렇게 행동했다.
싸운다 -> 갑자기 연락을 씹고 잠수 탄다 -> 왜 그래? 대화로 풀자!라고 하면 할수록 더 숨는다
-> 혼자 화가 풀리면 연락이 온다 -> 화해한다.
나는 이 과정에서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서는 순간, 아차! 싶어서
재빨리 남편을 잠수함에서 꺼내려고 하지만
이미 남편은 잠수함을 타고 해저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다.
우리의 싸움을 예로 들면
나 : 사과남편아, 컴퓨터 게임은 12시나 1시까지 하고 자면 안 될까?
남편 : 어쩌다 하루 쉬는 날인데~ 늦게까지 해도 되잖아~
나 : 다음 날 출근 안 해? 아침에 못 일어나니까 문제지!
맨날 늦게 일어나서 택시 타고 부랴부랴 출근하잖아.
남편: ... 내가 알아서 할게. 잔소리 좀 그만해
나 : 나도 잔소리 하기 싫어. 그러니까 게임 좀 적당히 하라고
남편 : 하... 몰라!
(대화만 봐도 열 받는 분들 죄송합니다... ㅜㅜ 우리 부부의 진짜 대화인데
전형적인 아내, 남편의 싸움이 아닐까 싶다)
서로의 의견 차이로 사소한 말다툼이 시작되면
남편은 다시 회피 스킬을 발동하기 시작하고
저렇게 싸우고 나면 남편은 이틀 동안 말을 하지 않는다.
'대화 거부'의 단계에 들어섰다면 그다음 단계는 '거리 두기'이다.
코로나 19로 거리 두기가 필수인 시대가 되었지만,
회피형 인간은 뭔가가 마음에 안 들면 가차 없이 '거리 두기'를 한다.
말을 안 하고,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으려고 하고
밥도 같이 안 먹고 잠도 따로 자려고 한다.
후에 남편한테 물어보니 이 과정에서 남편의 심리는
'더 상처 받기 전에 벽을 치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연애할 때는 이 단계에서 잠수 탔더랬다... (지금은 같이 사니까 잠수 탈 곳이 없다)
회피형 인간은 어떤 문제에 직면하면 곧바로 피해버리고
혼자 마음을 삭히고 감정을 정리한 다음, 쨔잔~하고 나타난다.
처음에는 남편이 회피형 인간인지 모르고
싸우고 나면 연락이 안 돼서 톡도 보내고 전화도 보내고 해 봤지만
결국 본인 마음이 풀리니까 연락이 오더라.
그 과정에서 참을성 없는 분들은 화가 '푸악!!!'하고 날 테지만
회피형 인간과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선 '푸악!!!'하고
터지는 화를 억누를 필요가 있다.
연애 기간 포함하여 약 6년간 남편을 관찰하며
회피형 인간과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연구한 결과!
함께 지내다 보면 싸울 일이 참 많다.
그러다 보면 '내가 이 말을 하면 싸우겠지?' '내가 이 행동을 하면 싸우겠지?'
생각이 드는 순간 그냥 안 하는 거다.
중요한 건 나의 어떤 행동이 상대방에게 화를 유발하느냐를 잘 알아야 한다.
싸움을 피하고 숨는 것은 회피형 인간의 본성이고 습성이 바꿀 수 없는 천성이다.
싸우고 난 뒤에 대화를 하자, 만나서 풀자, 전화받아라 등등 닦달을 하지 말고
적어도 하루 이틀은 혼자 마음 정리를 할 수 있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한 번은 내가 싸우고 나서 "얘기 좀 하자"라고 했더니
남편이
"왜 너는 싸우고 나면 자꾸 얘기 좀 하자고, 대화로 풀자고 하는 거야?
나는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혼자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얘기를 하고 대화로 풀자는 건 너 편하자고 하는 행동 아니야?
나는 그게 더 불편해. 너는 왜 나를 배려하지 않아?"
라고 했다.
사실 싸우려 들자면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왜 나를 배려하지 않아?!?!"
라고 맞받아칠 수 있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맞춰가겠다 다짐했던 나이기에
남편의 천성과 성격은 바꿀 수 없는 부분이기에
내가 한 걸음 물러나기로 했다.
그리하여 우리 부부는 싸울 일을 만들지 않고
(6년간 쌓인 데이터베이스로 싸움이 일어날 것 같으면 재빨리 대화를 중단한다)
싸우게 되면 남편이 화가 풀릴 시간을 충분히 준다.
(이 동안에는 최소한으로 필요한 연락만 한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겪고 나면
오빠가 퇴근길에 치킨을 사 오거나 나를 조용히 데리고 인근 맛집으로 간다.
그리고 조용히 나한테 말한다.
'나를 이해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