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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양 May 20. 2021

컵라면 먹던 아내, 10첩 반상 차리는 우렁각시가 되다

참 안 맞는 부부





컵라면 먹던 아내,  10첩 반상 차리는 우렁각시가 되다!



나 오렌지, 자취 경력만 무려 11년!

그간의 자취 경험담을 떠올려보자면....


# 자취 인생

스무 살, 집과 멀리 떨어진 타지에 있는 대학에서 (버스로 3시간 30분 거리) 

하숙집, 자취집을 전전하며 살아오다  

스물다섯 살, 서울에서 방송작가 일을 하며 

본격 500에 40 서울 원룸 자취살이의 삶을 시작했다. 


처음 자취할 때만 해도 '밥 해 먹고살아야지~' 하며 

밥 잘해주는 누나가 되겠노라 결심했지만  

자취생활이 길어질수록 '쿠쿠가 밥을 완성했습니다'라는 정겨운 목소리를 들어본 지 오래, 

즉석밥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고 

대부분 컵라면이나 빵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렇게 10년을 컵라면, 빵만 먹다 보니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시간을 쪼개서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음식이라고 해봤자 시장에서 반찬을 사서 밥, 김, 반찬, 참치 이렇게 차려놓고 먹는 것이다.


가끔 내 자취방에 놀려오던 남자 친구 (지금의 남편)은 내 음식을 맛보더니

'너랑 살 거면 밥은 사 먹어야겠네'라고 할 정도로 

내 음식 솜씨는 형편없었고 딱히 음식을 잘하기 위한 노력 역시 하지 않았다. 


# 결혼 후, 10첩 반상에 도전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즉석밥 + 참치 + 김만 먹을 수 없는 법! 

나 오렌지,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


아주 간단한 반찬 만들기부터 시작했다. 

콩나물 무침, 미나리 무침, 버섯볶음, 팽이버섯 볶음 등! 

실패할 각오를 하고 재료를 사서 매일매일 뭔가를 만들었다. 



결혼 초기에 만든 반찬들, 이래보여도 맛은 없다.


매번 요리를 하고, 하다 보니까

백종원 대표님의 참 쉽쥬~~? 가 처음에는 되게 약 올랐는데

계속 요리를 하다 보니 참 쉽쥬~~? 가 나오긴 하더라!


왜냐면,

참 쉬운~~ 반찬 만들기 공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반찬 양념 공식

볶음, 조림 → 고추장 + 고춧가루 + 다진 마늘 + 간장 + 설탕 

나물 무침→ 간장 + 소금 + 매실청 + 참기름 +(깨소금)

나물 무침 → 된장 + 간장 + 소금 + 참기름

겉절이 → 고춧가루 + 간장 + 매실청 + 참기름 +(깨소금)


대충 이 공식을 적용하면 어떤 나물이든, 어떤 무침이든 다 해낼 수 있었다. 

이 양념을 조금 더 발전시키면 돼지주물럭이나 불고기 등 고기 양념도 할 수 있었고

부재료를 조금 더 넣으면 닭볶음탕, 갈비찜과 같은 음식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점점 상차림에 올라가는 반찬 가짓수가 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메인 메뉴도 늘었다. 



# 요잘못, 요알못이 되다

요리 잘 못하는 사람에서 요리 잘 아는 사람으로 폭풍 성장!

깻잎, 잡채같은 고급 반찬(!) 부터 각종 10첩 반상을 뚝딱 차려내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만든 깻잎과 잡채



내가 직접 차려낸 음식들! (뿌듯뿌듯)


회사에서 밥을 먹던 남편이 집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고

결혼 2년 만에 처음으로 '맛있다' 라며 칭찬해주었다.


"오빠, 그 전에는 맛이 없었어?"


"당연하지. 진짜 못 먹을 수준이었어"


"에이~ 거짓말~ 아무리 그래도 음식인데~"


"오렌지야, 나 진짜 진지해. 

그거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니었어"


쳇... 말이라도 잘해주면 좀 좋은가

아참! 우리 남편은 '지키지 못할 말은 안 하는 사람'이었지?


#7전 8기

그렇다, 사람은 뭐든 해보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눈 감고도 음식을 뚝딱 만들어낸다.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차린 사진을 SNS에 올리면

종종 친구들이 이렇게 말한다.


"왜 그렇게 힘들게 차려~ 그냥 사 먹지"


사실 사 먹는 게 더 저렴하다! 

하지만, 집에서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도마에 양파를 썰다 보면 

이게 집이구나~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때는 남편이 차려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가 차려주기도 하고 

같이 도와가며 밥상을 차린다. 

그게 사람 사는 '정'인 것 같다. 


같이 사는 것만이 부부가 아니라 

궂은일도 하고 재미난 일도 하고 그렇게 사는 게 부부인 것 같다.


그리고 쑥스럽지만 남편을 잘 먹이고 싶고 남편과 좋은 걸 먹고 싶고

남편을 '사랑'하니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10첩 반상을 뚝딱! 차리는 거 아닐까? 

(닭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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