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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dion Mar 19. 2021

마을의 바보

The village simpleton




형광 조끼를 덧걸친 경찰이 교통정리를 위해 횡단보도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스무 살 중후반쯤 되어 뵈는 사내가 저만치 뒤에 서 있었다.  사내는 귀 뒤로 넘기고도 조금 남을 만큼의 중단발을 기르고, 녹색 야상에 재색 터틀넥을 받쳐 입고 발목까지 오는 검은 워커를 신고 있었다. 요즘 유행과는 다른 차림새였지만 아주 촌스럽지도 않았고 생김새가 눈에 띄게 이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무심코 본 남자의 가슴께에 시선이 붙잡혔다.


남자의 가슴에는 하늘색의 동그란 인형이 안겨 있었다.  통통한 몸체에 충전제가 폭신하게 들어가 있었고 뾰족한 귀 두 개가 위로 솟아있었다. 플라스틱 구슬과 함께 수를 놓아 표현한 눈코 입의 표정이 깜찍한 인형이었다. 여자친구나 조카에게 선물하려나 보군. 이렇게 생각하고 경찰은 눈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때마침 사내가 인형을 안고 있던 양팔 중 한 팔을 뽑아서 그쪽 손으로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곧이어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배시시 웃었다. 그러더니 곧 어깨를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 높여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꽤 떨어진 횡단보도 앞까지 분명하게 들려왔다.


그 순간, 경찰은 옆구리와 등에 소름이 돋는 감각에 몸을 움츠렸다. 그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이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는 이상한 사내와 눈이 마주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어느새 사내가 바로 등 뒤로 다가온 인기척이 났다. 다행히도 토끼 인형 사내가 도착한 시점에 신호등히 초록불로 바뀌었다.  경찰은 경광봉을 들었고 사내는 웃음을 멈추고 묵묵히, 인형의 발을 한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공원 광장의 초입에서 동네 교회 여집사가  사람들에게 나눠줄 교회 홍보물에 스테이플러로 붙여 놓은 사탕을 헤아리고 있었다. 역시 커피나 물티슈보다 효과가 덜한 홍보 방식 같다고 내심 생각하면서.  평일 오전이라 사람이 거의 없는 터라 그녀는 망중한을 즐기기로 마음먹고  있었지만 곧 예상치 못한 사람의 출현에 서둘러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약 5미터 앞에서 녹색 야상 재킷을 입고 워커를 신은 젊은 남자가 오고 있었다.그녀는 그 남자가 바로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4미터, 3미터, 그리고 사람 키만큼 남자가 가까워졌을 때, 그녀는 남자의 팔에 안긴 하늘색 물체를 발견했다.


그것은 귀가 쫑긋 나온 동그란 토끼 인형이었다. 어려 보이는데, 애가 있나. 그녀는 남자가 아내가 데리고 있거나 유아원에 있는 아이에게 가는 중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슬쩍 눈을 돌려서 근처에 아이가 있나 살폈다. 그러나 아이들이 학교에 있고 직장인들이 한창 업무 중일 평일 오전이라서인지 산보객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곧 남자가 그녀를 지나치기 직전이 되자 그녀는 서둘러 말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구원이요?"

"네"


보통은 조용히 유입물만 받아 들거나 그것마저도 거부한 채 말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이런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남자는 딱히 적의도 호의도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가만히 한 손을 들어 인형의 귀를 주물렀다.


"정말 예수 믿으면 구원받아요?"

"네? 그렇죠. 예수님께서는......."

"우리 토깽이는요?"


그녀가 막 예수님의 전능하심과 사랑을 오디오의 버튼을 눌린 듯 늘어놓으려는데 남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사내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토끼 인형을 두 손으로 잡아 그녀 앞에 들이밀었다.


"우리 토깽이도 예수 믿으면 구원받아요?"


신실한 여집사는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진정 잘못들은 게 아닌지 아니, 하느님의 불가해한 뜻이 깃든 게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도들의 고난에 대해 매일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되풀이해 공부한 덕인지 의심이 걷히고 이것이 그녀의 전도의 사명 앞에 놓인 첫 시련이자 시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최대한 순교를 앞둔 초대 교회 교인의 심정으로 돌아가 비장한 표정으로 결단을 내렸다.


"그럼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아요. "


그리고 그녀는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남자는 커다란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만면에 희색을 띄우더니 손에 든 인형을 부드럽게 흔들며 말했다.


"우와, 그럼 돼지랑 소도 구원받아요?"

"그럼요."

"사탕은요? 사탕도 구원받아요?"


여집사는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남자의 시선이 자신의 손에 들린 홍보지에 가있는 것을 보았다. 아, 사탕이 먹고 싶다는 거구나. 그녀는 남자의 손에 홍보 전단지를 건넸다. 남자는 그걸 받고 읽어보지도 않은 채 사탕만 떼어내어 입에 털어 넣었다. 사탕을 입안 이리저리 굴리며 녹이느라 정신없는 남자를 지켜보며 교회 집사 아주머니가 말을 이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하고 말하면 천국에 갈 수 있어요. 천국이 어떤 데인지 알아요?"

"웅....... 몰라요."

"걱정도 없고 배고프지도 않고 장애도 없이 모두 좋아하는 대로 살 수 있어요."

"그럼, 거기에 가면 사탕 많아요?"

"사탕도 있고 치킨도 있고 피자도 있고. 사실 안 먹어도 되지만 모두 가능하니까요."

"왜 안 먹어요."

"더 좋은 천국의 음식이 있으니까요."

"맛있는 거예요?"

"그럼요. 그리고 영원히 사니까 계속 먹을 수 있어요."

"영원히 사는 게 뭐예요?"

"절대 안 죽는 거예요."

"안 죽으면 뭐가 좋아요?"

" 죽을까 봐 무서워할 필요가 없잖아요."

"죽는 게 왜 무서워요?"

"그야 아프잖아요."

"아픈 건 싫어요."

"그렇죠."


여집사는 청년에게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 가련한 어린양을 향한 개도의 손길을 베풀기 위해 쐐기를 박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천국에는 어떻게 가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면 되죠."

"거짓말!"

"네?"

"우리 삐약이가 죽었을 때 엄마가 삐약이는 천국 갔다고 했어요. 엄마는 나나 삐약이가 죽으면 천국 간다고 했어요."


청년의 갑작스러운 반발에 그녀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이 모자란 젊은이의 딱한 사정을 생각해 좀 더 조곤조곤 말해 주려고 마음먹었다.


"아니 그건 엄마가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죽어야 천국 가는 거 아니에요?"
"물론 죽는 거예요. 그치만 구원받으면 천국 가요."

"구원받고 죽은 후에 천국 가는 거예요?  죽은 후에 구원받고 천국 가는 거예요?

"그게..... 그러니까......"

"어쨌든 죽어야 되잖아요. 난 죽기 싫어요. 구원 안 받을래. 토깽이도 구원받지 마."

"아니, 아니, 안 죽고도 구원받을 수 있어요. 심판의 날이 올 때 살아있으면 돼요."

"그게 언제인데요?"

"어..... 그러니까...... 내일일 수도 있고 백 년 후일 수도 있고. 하지만 내일이라면 오늘부터 예수 믿으면 내일 안 죽고 바로 구원받을 수 있죠."

"그럼 내일 식판의... 심판의 날이오는 거예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그럴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럼 아닌 거예요?"

"내일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건데... 그러니까......."

"싫어요. 내일 당장 심판의 날 오라고 해요. "

"아니,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거니까......"

"내일로 해요. 안 그러면 구원 안 받아. 얼른요."


청년은 발을 구르며 징징거렸다. 그 서슬에 놀란 여집사가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때를 쓸게 따로 있지......"


그녀는 아무리 모자라다지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해서 은근 슬쩍 빠져나갈 구석을 최대한 자연스레 열어놓기 위해 애썼다. 고개를 빼서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다음 상대에게 자연스럽게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구원은 오지 않았다. 그냥 무시하면 달라붙을 거 같은데. 그때였다.


"아줌마는 예수 믿어요?"


의외의 화제 전환에 이 집사님은 드디어 빠져나갈 비 웅덩이 속에 한 조각 마른땅을 찾았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발을 대뜸 내디뎠다.


"그럼, 아줌마는 믿죠. "

"어떻게 믿는데요?"
"매일 교회 다니고, 십일조 내고, 성경공부도 해."

"아줌마 구원받았어요?"

"당연하지요."


여집사는 자랑스럽게, 또 한편으로는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아줌마 아주 착한 사람이겠네요. 우리 엄마가 착한 사람은 천국 간뎄어요."

"그럼, 예수 믿으면 착한 사람 되지요."

"착한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에요?"

"그렇지."

"교회 다니면 예수 믿는 거죠?"

"네."


이제는 짐짓 귀찮아진 집사님은 방금 전까지 사도의 사명으로 불타오르던 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점점 대답이 짧아졌다. 그녀는 이제 슬슬 발을 빼고 볕 좋은 데 가서 커피나 한잔하고 싶었다. 그러나 청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크게 뜬 눈을 위로 굴리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왜요?"

"나 막 아프게 한 아저씨요. 그 아저씨도 교회 다녔는데. 엄마가 그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라 감옥 간 거라고 말했어요."


이 말이 끝나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사이 바람이 불어와 바닥에 낙엽을 굴려 내렸다.  여집사는 그 자리에 굳은 채로 다음 말을 하기 위해 청년의 입술이 벌어지는 모양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그 아저씨도 구원받았겠네. 아, 맞다 천국 갈려면 죽어야 되지. 죽을 때 많이 아팠으면 좋겠다."


동네 교회 아주머니는 황망하게 고개를 돌렸다. 청년은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사탕 하나 더 먹어도 돼요?"


낙엽이 울긋불긋하게 바닥을 수놓은 오전의 공원에서 사탕을 입안에 잔뜩 집어넣고 신이 난 청년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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