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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udentJ Apr 11. 2021

나를 당황시키는미국 문화 몇 가지

팁 문화, 타 인종에게 조심해야 할 것, 그들만 아는 것

내가 아무리 외국인으로서 관찰자로 미국 문화를 바라본다고 해도 나를 당황시키는 미국 문화들이 있다. 팁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 인종 간의 차이, 그리고 캐도 캐도 모를 그들 만이 아는 이야기들이다.

팁 문화는 16세기 영국에서 하우스 파티를 할 경우 호스트의 하인에게 수고한다는 의미로 돈을 주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유럽보다는 미국에서 더 깊이 자리를 잡은 것 같다. 팁이라는 말도 미국에서 웨이터가 따로 없는 카페나 펍에 손님이 팁을 줄 수 있도록 ‘신속한 서비스를 위함(To Insure Promptitude)’라는 사인이 달린 접시를 마련해 놓은 데서 왔다고 한다. TIP은 To Insure Promptitude의 줄임말이다.

처음 팁 문화를 접했을 때 돈으로 친절을 사는 저급한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어려웠다.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음에 내키는 만큼 하면 되는 거지만 마음이 안 내키는데 그리고 그닥 서비스도 못 받았는데 돈을 내라고 하니 내기는 하지만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도 영 마음이 찜찜했다. 미국에 20년 이상 살았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아깝지만 그냥 주는 거란다. 한국사람만 구두쇠 정신이 있는 건지 그것도 모르겠다. 


나 혼자 애매하고 헷갈리는 것은 문제도 아닌 것이 미국 내에서도 팁 문화가 꽤 논란거리이다. 고용주가 노동자의 팁에 관여를 할 수 있나? 없나? 이 부분은 ‘통 크게 관여 안 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식당에서 크레디트 카드로 낼 때 자기 테이블에서 카드를 웨이터에게 주어 음식값을 먼저 계산하고 팁을 나중에 적어 두고 나오는 시스템을 생각하니 그걸 고용주가 일일이 계산해서 나중에 돌려주어야 하는데 좀 어렵겠다 싶었다. 그리고 신용카드는 수수료도 있는데 팁 부분의 수수료는 누가 내는지도 궁금해졌다. 또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데도 서빙을 담당하는 사람은 팁을 받지만 그릇을 치우거나 설거지를 하는 종업원은 팁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기본급이 높을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팁으로 받는 금액이 많을 경우 불평등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팁을 고용주가 관리하여 재분배를 한다면 문제가 없을까? 오랫동안 팁 수입에 의존해 왔던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은 손해가 당연해진다. 공유경제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도어 대시, 아마존의 플렉스 운전기사에게 플랫폼이 주어야 할 임금에서 팁 부분을 차감하는 것도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얼마 전에는 팁 크레디트 폐지 법안도 문제가 되었는데 뭔가 봤더니 팁을 많이 받는 식당 종업원에게는 그동안 고용주가 기본급을 좀 적게 줬던 모양인데 그러지 말고 기본시급도 꼭 줘야 한다는 법안이었다. 취지는 좋지만 식당 주인은 어려움이 생기고 아무래도 인원을 감축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 입장에서도 불안감은 있다. 게다가 이런 모든 논의와 법 제정이 또 주마다 다르니 그야말로 팁 문화를 지금의 상황에 맞춰 정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돈문제는 어디서나 예민하다.


처음 뉴욕에 왔을 때 나는 딸과 함께 왔다가 나는 일을 더 봐야 해서 아이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었다.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정했었는데 시내 중심의 도어맨이 있는 건물이었다. 아이를 공항에 보내려고 택시를 잡으려는데 도어맨이 건물 밖으로 나오더니 자기가 택시를 잡아준다고 설쳤다. 중심가 대로변이라 뉴욕 택시가 여러 대 지나갔는데 그가 이미 택시를 불렀다고 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우리는 차가운 거리에서 그가 부른 택시를 기다리느라 더 떨어야 했다. 결국 택시는 도착했고 나는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아침저녁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도어맨은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추운 날 더 오래 택시를 기다리게 한 대가로 그에게 팁을 주었어야 했다. 그에게 큰 잘못을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그의 반응에 대해 이미 눈치를 챘지만 나는 그에게 팁을 안 준 걸 후회하지 않았고 이 문화가 싫었다.

몇 년 전 후배와 들른 어떤 일식집은 계산서를 읽어보니 팁이 포함된 금액이라고 쓰여 있었다. 팁을 주는 게 별로 맘에 들지 않고 최소한으로 주려고 휴대폰 계산기까지 동원하는 게 귀챦았는데 이런게 더 나아 보였다. 그리고 계산서를 읽지 않아 모르고 팁을 더 주고 나왔으면 어쩔 뻔했냐며 후배와 가슴을 쓸어내렸다. 특히 뉴욕의 옐로캡을 타고 계산을 할 때도 기본적으로 15%, 18%, 20% 중에 꼭 택해야 하는 건 택시비를 일부러 더 받으려 만들어 놓은 계략처럼 느껴졌다. 그 와중에도 한인타운의 코리안 바비큐집에서 기가 막히게 잘 구워 주는 고기를 먹노라면 팁이 안 아까운 가게도 있기는 했다. 내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다. 내가 쩨쩨한 사람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 지인들 대부분도 계산서를 받으면 계산기를 꺼내 든다. 가끔 팁을 좀 넉넉히 주는 친구들도 있는데 여유 있어 보여 보기 좋기도 하고 약간 허세가 있어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내가 팁에 대한 조금 다른 시선을 가지게 해 준 일이 있었는데 Comedians in cars getting coffee라는 넷플릭스 시리즈 중에 쇼의 호스트인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Jerry Seinfield가 섹스 앤 더 시티의 유명한 여배우 Sarah Jessica Parker에게 ‘쇼 비즈니스 팁’은 넉넉해야 한다고 하는 부분과 자기 대신 음식값을 내게 된 유명 토크쇼 진행자 Seth Meyers에게 팁을 좀 넉넉히 주라고 부탁하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이 시리즈를 매우 즐겨 보았고 Jerry Seinfield를 좋아하기도 하는 중이었다. 그가 팁을 넉넉히 주고 웨이트리스의 이름을 부르며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이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베푸는 것으로 내 눈에는 비쳤다. 한국에서 매장을 할 때 가끔 연예인이 매장을 찾을 때면 밑도 끝도 없이 연예인디씨는 없냐고 요구하는데 진저리를 낸 적이 있던 터라 제리 사인필드의 태도는 신선하게 느껴지고 팁이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020년은 전 세계가 팬데믹으로 고통받았고 특히 가장 타격을 받은 업종은 소매업과 레스토랑이다. 식당 안에서 아무도 식사를 할 수 없으니 그 많던 서빙을 담당하는 이들은 어찌 되었을까? 그러다 2020 달러 팁 챌린지라는 움직임을 기사를 통해서 보았다. 몇몇 셀럽들이 $2,020의 팁을 주며 어려움을 가지는 식당 종사자들에게 힘을 주자는 운동이었다. 중산층은 거기에 행동을 같이 할 수 없으니 $20.20을 팁으로 내기로 하는 것인데 귀여운 선물 같았다. 구두쇠가 손을 바들거리며 억지로 내는 팁이 아닌 감사를 마음으로 표현하는 팁을 나도 한번 시원하게 쏘고 싶어 진다.


한국에서 못 느꼈던 인종 간의 차이도 내 눈에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Jordina라는 흑인 아가씨와 친해졌다. 독일 출신이었는데 할렘에 살며 할렘 문화를 무척 즐기는 중이었다. 어느 날 그녀의 귀여운 컬의 머리카락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여 한번 만져봐도 되냐고 가볍게 물어봤는데 그녀는 그러라면서 자기가 헤어와 피부관리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흑인에게 헤어스타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 주었다. 헤어스타일은 일종의 왕관 같아서 그걸 망칠 것 같은 일은 절대 금기시되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 말은 나에게만 머리카락을 만질 수 있게 허용해 줬다는 말이다. 나는 꽤 놀랐다. 자라면서 스스럼없이 친구의 손을 잡고 머리카락을 잡고 했던 것이 어떤 문화에서는 안 되는 것이고 무례한 것이었던 거다. Beyonce의 여동생 Solange Knowles의 Don't Touch My Hair라는 노래에도 Jordina 가 나에게 말해준 그들의 생각이 담겨 있었다. 나는 내가 Jordina에게 실수를 한 거였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런 것임을 이해하고 차분히 설명해준 그녀에게 고마움이 더 컸다. 너와 나 모두가 아름다운 인간임을 알고 서로를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새삼 느낀다. 배려를 위한 선이 우리에겐 있음도 생각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자면, 어리지 않은 나이에 영어를 좀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거의 사치에 가까운 것일까? 많이 부족하지만 이리저리 노력하면서 영어에 대한 갈망이 점점 높아질 때 영어 완전 정복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뉴스에서 뉴욕의 어느 비누 가게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여성이 자신은 일을 잘 해내고 있으며 자신이 ‘Mary Tyler Moore’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Mary Tyler Moore가 뭐지? 나는 검색을 통해 그녀가 오래전 TV 시리즈물의 주인공 이름이며 일하는 여성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국어에도 한국 문화에도 이런 설명할 필요도 없이 누구나 아는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담요라는 말인 ‘blanket’도 우리가 인디언이라고 알고 있는 네이티브 아메리칸과 같이 쓰이면 병을 옮기는 무서운 죽음의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데 이런 것은 어쩌다 알게 된 게 신기하다. 앞으로 이런 식의 깨달음이 얼마나 많을까? 아마도 무한할 거다. 끝이 없게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세계가 커지고 보는 눈이 넓어지는 거라고 고맙게 여기기로 했다. 내가 모르는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싫기도 하지만 좋기도 하다. '모르는 걸 언제 다 깨우칠까?'라고 낙담하면 좀 괴롭겠지만 모르는게 많다는 것은 내가 다 아는 사람인척하는걸 놔버려도 되는거라 편하다. 그동안 한국에서 기성세대가 되어가며 아직도 깨달음이 부족한걸 숨기고 아닌 척하느라 전전긍긍했었나 보다. 어깨에 지닌 짐을 내려놓은것처럼 편안한 심정으로 무지의 세계를 실컷 유영해 볼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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