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스톰, 공황장애, 교통사고
영 적응이 안될 것 같던 뉴욕 생활이 보일 듯 말 듯 아주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씩씩하게 회사와 집을 오가며 가끔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주면 기쁜 마음으로 쪼르르 만나러 가기도 하고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특히 이웃과 점점 친해지는 것이 좋았다. 여러 세대가 사는 아파트인데 내가 커다란 TV나 네스프레소 커피 캡슐을 주문하면 집 앞에 둔 택배 상자를 이웃들이 보관했다가 주는 경우도 있었다. 박스에 속에 든 물건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있어 누가 훔쳐갈까 염려되어서 그러는 거였다. 도어맨이 있는 고급 콘도에선 택배박스를 도둑맞을 일이 없겠지만 우리 아파트는 도어맨은 없어도 서로 배려를 해주는 이웃이 있어 좋았다. 하지만 눈물이 찔끔 나는 고통스러운 기억도 몇 가지 있다. 다시 겪을 일은 아닌 것 같지만 미우나 고우나 내가 지내온 시간이므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2019년 1월 어느 날, 뉴저지 사무실에서 퇴근시간이 다가와 밖을 내다보니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새에 눈이 꽤 쌓이기도 했다. 로비에 나와보니 다른 사무실 분들이 걱정스레 밖을 내다보며 운전이 어렵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계셨다. 나도 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나는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지 않았으므로 눈길을 좀 걷겠구나 하고 조금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옷도 든든히 입었고 철통 같은 부츠에 우산도 들었으니 눈을 뚫고 가볼까 하며 맨해튼으로 가기 위해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건너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갔다. 미국 동부는 눈도 화끈하게 오는구나. 그런데 도로의 눈은 언제 치우려고 눈 치우는 차도 안 나오나? 하며 마침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뭐 이 정도 눈은 내가 이제껏 헤쳐왔던 인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용감한 표정으로 나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는데 그때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어야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유난히 많았다. '이 정도로 많은 사람은 처음인데' 라고 생각하며 한참을 지난 후 멀리서 버스가 천천히 다가왔다. 뉴저지에서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정류장이기 때문에 버스 번호는 볼 필요도 없고 타기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아서 버스를 발견하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에 올라타고 나서 30분이 흘렀다. 버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의 신호를 기다리던 버스기사가 버스는 운행을 안 한다고 소리친다. ‘어라 그러면 어떻게 집에 가지?’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맨해튼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걸어서 건너기 시작했다. George Washington Bridge는 짧은 다리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은 눈폭풍이 나를 날려버리려고 불고 있다. 하지만 마치 전쟁난민처럼 나는 앞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따라갔다. 필사적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사무실 동료에게 문자도 쳤다. 혹시나 내가 실종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서다. 우산을 들고 문자를 치느라 장갑을 잃어버리고 마침내 우산도 살이 모두 꺾여 버려야 했다. 맨해튼은 좀 사정이 나았지만 차들이 정지를 하지 못하고 빙빙 도느라 횡단보도를 건널 수 없는 상황이었다. 2시간을 걸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 델리에 들러 맥주 한 캔과 아이스크림을 샀다. 그러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나는 울어버렸다. 다음날 사람들에게서 뉴저지 안쪽에 집이 있고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사람 중에는 8시간 걸어 집에 간 사람이 있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뭐 나라가 이러냐 싶었다.
한 번은 좀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브루클린 쪽 동네 답사를 하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찾기 전에 동네의 느낌을 먼저 보고 싶어 차를 빌려 브루클린으로 향했다. 차가 막히고 또 막히더니 브루클린으로 가는 해저 터널에서도 차가 막힌다. 그런데 이 터널이 또 문제다. 너무 좁고 차는 2대만 교행할 수 있다. 여유공간이 전혀 없다. 그리고 길다. 공포증이 몰려오며 정신이 아득했다. 나는 세월호 사건 이후 지하철을 잘 못 타는 증세가 생겼는데 그런 답답함이 왔다. 아득하고 겁이 났다. 거의 정신이 나갈 즈음 차는 터널을 빠져나왔다. 천만다행이었다. 터널 때문에 브루클린은 안 되겠다고 마음먹고 돌아올 길을 찾아 다시 집 쪽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좀 늦어져서 어둑어둑해진 게 문제였다. 맨해튼은 교통체증도 문제지만 주차난이 말도 못 한다. 조금 늦어졌더니 아무 데도 주차할 곳이 없었다. 맨해튼에서 많이 주차를 해본 게 아니어서 눈치가 빠르지도 않은데 혼자 글씨만 몇 글자 적힌 주차 안내판을 봐가며 자리를 잡는 게 너무 어려웠다 게다가 좀 전에 터널 공포증을 겪고 온 내가 아닌가?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온 동네를 헤집고 갔던 곳을 또 가며 주차할 곳을 찾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주차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렌트 기간이 일주일 이상 남은 차는 그다음 날 바로 반납했다.
차에 관련된 내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공포는 교통사고를 목격한 거였다.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히 목격한 사고는 차가 사람을 치는 것이었다. 공중에 붕 떴다가 떨어지는 덩치 큰 남자를 보는데 그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나는 나도 걱정되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이곳에서 나에게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바로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교통사고 시 내가 처할 행동을 정리해 두었다. 끔찍하게 겁이 나는 상황에서 나만의 최소한의 대책이었다. 이 사회가 아직 나를 잘 보호해 주리라는 확신이 전혀 들지 않아 무서운 상상이 계속 커졌다.
예전에 그러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무서움이 과장될까? 말이 안 통할까 봐 무서운 것인가? 가족이 없어서 인가? 어린아이는 무서움이 많다. 어린아이와 같이 세상이 무서운 내가 안쓰럽다. 뉴욕은 낯선 곳이고 서울과 다른 점이 많다. 하지만 뉴욕은 세계의 여러 곳과 비교했을때 내가 이렇게 두려워할 곳은 아니며 선진화된 도시다. 천재지변은 어디서나 있을 수 있고 도시라면 교통란 주차란은 당연하고 교통사고도 피할수 없는 일이다. 뉴욕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 먼저다.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 멀었다니 실망스럽지만 기억에 남는 사건 몇 개가 나중에 좋은 수다거리가 될거라 위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