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조언을 듣는 경우가 많다. 꼭 필요한 인간관계, 예를 들어 배우자, 직장동료 등등에서 고민이 생겨 누군가에게 어떻게 할지 조언을 구하면 상대방이 달라지는 것을 바라지 말고 차라리 내가 생각을 고치는 게 더 쉽다고들 했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 자신도 이제까지 하던 방식을 버리고 바뀌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바꿔보려고 애쓰다가 힘이 들어 짜증 내며 때려치운 적도 많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 거의 50년간의 한국생활에서 굳어진 생각이 많이 달라진 것이 있는데 원래 알고 있었던 성격이 달라진 것, 이전에 몰랐던 나의 특성 중 달라진 것, 그리고 접할 기회가 없어 남들 말하는 대로 생각하던 것이 달라진 적이 있다.
세상을 살면서 부러운 사람 중의 하나는 계산이 정확하고 빠른 사람이다. 나는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서도 계산이 느렸다.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큰 낭패를 겪은 적은 없지만 나 스스로 부끄러운 기억이 많았다. 제조업을 하다 보면 재료를 사 와야 하고 그걸 제품화해서 납품을 해야 한다. 얼마나 싸게 잘 사는지, 어떤 유리한 조건으로 구매할 수 있는지를 순식간에 계산하고 협상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또, 바이어에게 물건을 팔 때도 적당한 선에서 가격을 내려주고 대신 나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등 내가 만약 조금만 빠릿빠릿했으면 이익을 많이 봤을 거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이게 빨리 개선되지 않았다. 우스운 예로 회사일과 관련된 걸로 정부지원사업을 신청해서 우리 회사가 채택된 적이 있었는데 지원금의 숫자를 잘못 읽어 조금 실망하고 ‘그래도 받는 게 어디냐. 그럼 어느 부분에서 예산을 줄이나’ 궁리하던 와중에 숫자 0 하나를 빼고 읽었었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하며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내가 숫자를 잘못 읽었다는 건 내가 스스로 깨달은 것도 아니고 회사분이 깨우쳐 주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부끄럽고 이런 종류의 일이 이것 말고도 더 있다는 사실이 더 어이없다.
이런 내가 미국에 살면서 좀 바뀌었다. 뭔가 실수를 하면 다시 그것을 복구할 수는 있지만 너무 많은 노력, 관심, 열정과 시간이 드는 것을 알고 난 후 내 몸과 머리는 꼼꼼해지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아주 작은 물건도 가격을 외울 수 있게 되었고 비교분석도 빨리 됐다. 심지어 식료품점에서 세일을 한다고 써 붙인 상품을 고르고 캐셔의 실수로 세일 혜택을 못 받을까 봐 영수증을 확인하는 것은 버릇이 생겼다. 이전의 나는 물건을 고를 때는 세일 품목을 좋아하지만 계산대 위에 물건을 올린 다음에는 얼른 계산을 끝내고 집이나 회사로 돌아갈 생각만 했었다. 실제로 이런 확인 과정에서 캐셔의 실수를 잡아내고 정정한 적이 여러 번 있어서 그 이후로 영수증 다시 보기는 완전히 루틴이 되었다. 애플 와치의 기능 중에 핸드폰 찾는 기능을 제일 많이 이용할 만큼 물건 놓은 장소를 못찾던 내가 아침마다 집을 나갈 때, 한 주먹 들고나가는 집과 사무실 열쇠, 휴대폰, 도시락과 물을 챙기고 이걸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건 나로선 엄청난 변화이다.
이전에 나에 대해 착각하고 살던 것 중의 하나가 내가 누군가에 의존한다기보다는 꽤 독립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오래 해 왔고 아이들 양육도 남의 도움 없이 해냈고 교육 부분도 남들 하는 식을 따라가거나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의존적이었었다는 걸 완전히 지인들과 떨어져 혼자 살면서 알게 되었다. 뉴욕 아파트의 스모크 알람은 예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생선구이나 삼겹살 구이는 여간해선 집안에서 시도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냄새가 걱정이었다면 뉴욕의 아파트에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고막을 뚫을 것 같은 스모크 알람 소리에 못해 먹는다. 못 먹는 건 그렇다 치고 이게 배터리 교환식인데 6개월에서 1년 정도 되면 배터리 교환이 필요하다. 연기를 알리기 위한 알람만큼 큰 소리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신경을 거스르는 큰 소리가 배터리가 교환될 때까지 나는데 나는 운이 없게도 이 소리가 어느 날 새벽 3, 4시경에 시작되었다. 불편한 뒤척임 후에 잠을 깼는데 천정에 딱 달라붙은 스모크 알람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웃에 사는 집주인에게 연락하거나 건물을 관리하는 슈퍼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그러기에 불가능한 시간이 아닌가? 얼마나 쩔쩔맸던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이런 문제는 나 혼자 해결해 본 적이 없는 거였다. 별로 빠르지도 않고 돈만 많이 내는 인터넷도 가끔 잘 안될 때가 있는데 미국 특성상 전화로 서비스 신청하는데 거의 서너 시간 그리고 서비스 기사가 온다면 언제 올지 알 수 없는데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의 가족에게 화상전화를 해서 셋톱박스를 이것저것 건드려 보는 거였다. 알게 모르게 분담되어 진행되었던 많은 자질구레한 일에서 나는 별로 역할을 해본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가를 즐기는 일에서는 혼자 사는 건 좀 애로가 많았다. 등산을 가고 싶었는데 좀 막막해서 동호회 같은걸 찾아보니 솔로들을 위한 동호회와 전문 산악인을 위한 모임, 그리고 부부동반이 많은 동호회 이렇게 분류가 되었다. 내가 갈 곳은 없었다. 남편이랑 가볍게 가던 등산은 갈 수 없었다. 먹는 걸 좋아하던 딸은 언제나 가고 싶은 식당을 먼저 제안하고 메뉴도 나 대신 골랐었다. 나는 의지를 가지고 식당을 고를 자신도 없고 어떤 메뉴가 그 상황에서 어떤 메뉴가 가장 잘 어울리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장을 보러 갈 때도 자연스레 나를 호위해주고 짐을 들어주던 아들이 없으니 예전 버릇대로 물건을 좀 많이 사기라도 하는 날이면 남들 보기 가여울 정도로 짐에 끙끙대는 동양인 중년 여성이 되었다.
다른 사람보다 결혼을 일찍 하고 출산도 일찍 한 편이라 내 나이에 비해 아이들이 좀 큰 편인데 나는 언제나 아이들에게는 어설픈 엄마였고 대신 아이들은 어설픈 엄마를 잘 이해하며 자랐다. 너그럽고 원숙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나의 아이들은 나를 통해 인간이 성숙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의 아이들은 내 인생의 증인인 셈이다. 나는 부끄럽고 부족하지만 가족이 있어 행복한 온실 속 화초였던 거다. 그럼 나만 그런가? 내 생각은 다른 이에게 의지하고 사는 게 나만은 아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외롭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주변을 돌아보면 반드시 누군가가 있다. 단 다른 사람을 내 편으로 믿을 수 있어야만 도움을 받는 게 가능하다.
한국에서 나는 성소수자를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접할 기회가 없어 남들 말하는 대로 그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살았었다. 그냥 그다지 밝은 모습이 아닌 채로 한국 매스컴에 등장하는 모습이 그들 모습인 걸로 받아들였고 나랑은 너무나 거리가 먼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여겼었다. 나랑 연관성이 전혀 없었다. 그런 내가 트레이드 쇼 전시를 위해 뉴욕에 와서는 성소수자를 만나는 일은 너무 흔했다. 게이들은 보통 미적 감각이 뛰어난 경우가 많고 무뚝뚝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소품샵을 운영하거나 예쁜 물건을 제조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 많다. 주변 부스의 대표님 중에도 게이가 많고 찾아오는 바이어 중에도 게이가 많았다. 그들은 나이스하고 뭔가 다정하여 말도 잘 통하는 것 같다. 이상한 느낌은 전혀 없이 나는 그냥 다정한 외국 남자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중에 Queer Eye라는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즐겨 보게 되었는데 5명의 게이 남자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위로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한다더니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극복하고 사는 그들은 개성은 모두 매우 강하지만 인생의 깊이가 꽤 있어 보였다. 내가 세상을 한 가지 톤의 색으로만 바라봤다면 그들은 여러 아픈 경험을 딛고 무지개색 세상을 비로소 보게 되었을 것 같다. 인지하지 못하지만 나는 현상의 한쪽면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변하려면 힘들다. 급하게 변하려면 더 힘들다. 변하는 과정에서 힘들지만 재미있는 것은 모르던 나자신을 알게 된다는 거다. 알았더라도 그냥 지나쳤을 나의 부족한 점을 혹독히 마주치면 절로 겸손해지고 마음이 순해지는걸 느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날카로운 눈매를 지우고 순한 눈빛과 둥글둥글한 마음으로 다른이를 보게 된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 한번 한다면 해!'이런 잘난척 하는 말 혹은 행동은 나 말고도 해본적이 있는 사람이 꽤 될거다. 일관성 있고 고집있어 보여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바꾸기로 했다. 50이 넘었어도 바꿔보니 좋더라. 나를 알게되어 내가 더 좋아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