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신팀장 Jul 09. 2021

제안서와 메이크업의 상관관계

내용이 중요할까 디자인이 중요할까?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의 화장은 진해져만 간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어려보이고 화사해 보일까를 궁리하며 아이라이너도 조금 더 길게 빼 보고 볼터치도 해 보고 아이섀도도 조금 더 화사한 색으로 바꿔본다. 옆에서 보는 나의 남편은 무슨 화장이 그렇게 진하냐고 그럴 시간에 내면에 더 신경 쓰라고 잔소리를 하고 나는 “오빠가 여자가 아니라서 이해를 못 해.” 라며 응수한다. 여느 날처럼 애는 썼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화장을 마치고 출근을 하던 길에 번뜩 이 화장이라는 것이 제안서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안서가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라는 궁금증이 피어오를 분들을 위해 잠시 제안서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한마디로 잠재 고객 회사에 “우리 회사는 고객님이 원하시는 oo을 제일 잘 할 수 있는 곳이니 우리의 oo, oo, oo 역량을 보시고 우리 회사에 일 할 기회를 주세요.” 라고 구애하는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연구원 및 비즈니스 컨설팅, 광고마케팅 회사 등의 경우 자체적으로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해서 수익을 내는 회사와는 달리 다른 회사의 필요를 채워주어서, 다시 말하면 ‘가려운 곳을 긁어 주어서’ 수익을 내는 회사이기 때문에 일 할 기회를 얻기 위한 ‘제안서’는 회사의 매출로 연결되는 황금 열쇠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연구원으로 오기 전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에서 일 할 때 처음 제안서라는 것을 접했는데 한 마디로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이 제안서 쓰는 일이었다. 


   쓴다고 해서 100% 붙어 그 일을 할 기회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승률은 대략 30% 정도였다.) 그 일에 대한 전문 역량이 없는데 있는 것처럼 소설을 쓰는 것도 괴로웠고 무엇보다도 파워포인트로 장표 (파워포인트의 각 페이지를 업계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를 만들어내는 것이 현재 이 글을 쓰는 창작의 고통보다 열 갑절은 더 심했다. 제안서를 쓸 때마다 ‘도대체 이놈의 파워포인트는 어떤 놈이 개발한거야? 이 망할 xxx...’ 이라는 욕 아닌 욕을 해댔다. 일을 실제로 따낸 후 고객에게 제출하는 보고서도 신경을 많이 써서 만들지만 일 할 기회를 얻기 위한 제안서로 신규 매출을 창출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상사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제안서 작성은 ‘두뇌를 젖 먹던 힘까지 총력 가동’ 해야 하는 두뇌 노동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멋진 전략을 짜내었다 하더라도 이것이 장표에서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심미적으로 표현되어야 했다. 글자체를 맑은 고딕으로 했다가 코펍으로 했다가 글자 크기도 14pt 로 했다가 16pt로 했다가 네모 도형도 모서리가 둥근 형 날카로운 형으로 이리저리 바꿔도 보고 도형 색깔도 하늘색, 회색, 연두색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문안한 회색으로 선택하는 등 한 장의 장표가 탄생하는 데는 적어도 3~4시간이 소요되었다. (물론 선배가 오케이 했을 때의 일이고 수정 사항이 생기면 추가로 1~2시간이 더 소요되었으니 보통 노동이 아니었다.)


   장표의 레이아웃을 짜는 건 얼굴에 파운데이션 칠하기, 장표의 헤드라인 (제목)을 잡는 건 눈썹 그리기, 장표의 주요 도형 모양을 잡는 건 아이라이너 그리기, 도형의 색깔을 정해 입히는 건 아이섀도와 볼터치 하기, 주요 문구가 잘 보이게 볼드체로 표시하는 건 립스틱 바르기 등 장표 작성의 프로세스는 화장의 프로세스와 매우 유사한 과정을 띄고 있는 것이다. 어떤 날은 화장이 잘 먹는 날이 있듯이 장표가 매우 만족스럽게 맘에 드는 날이 있고 어떤 날은 아이라이너도 번지고 립스틱 색깔도 맘에 안 들 듯이 장표라 만족스럽지 않은 날도 있다. 나의 남편은 화장 할 시간에 내면에 신경 쓰라고 했지만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고객 입장에서 그 장표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고 디자인이 좋지 않으면 고객의 마음을 살 수 없는 것이다. 나의 남편도 나의 내면만 보고 결혼한 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시대를 관통하는 명언이다.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나는 여전히 제안서를 썼지만 반대로 제안서를 받아보는 고객의 입장이 되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거의 평생 ‘을’로 살아 왔는데 ‘갑’이 되어 남이 낸 제안서를 평가하는 일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나의 첫 번째 제안서 평가 기회는 작년 초 대한민국테마여행10선 사업을 맡으며 찾아왔다. 나는 본 사업의 홍보마케팅 팀장으로서 홍보마케팅 업무를 지원해 줄 회사를 뽑아야했고 4~5개의 업체가 제안서를 제출했다. 도대체 다른 회사들은 제안서를 어떻게 쓸 지 궁금했고 제안서 제출 종료일, 설레는 마음으로 제안서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유독 부실해 보이는 한 제안서가 있었다. 이 제안서를 작성한 A 업체는 사실 내가 먼저 찾아내어 연락을 했고 회사의 과거 사업 역량을 보았을 때 충분히 우리 일을 잘 도와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사전 미팅도 하며 제안서 작성을 요청했던 회사였다. 그런데 다른 제안서들이 화려한 도형과 컬러, 그리고 일러스트로 중무장을 한 데 반해 이 제안서는 무채색 느낌에 도형도 찾아보기 힘들고 그저 글이 적혀 있었다. ‘으응? 왜 이러지?’ 회사의 역량이 100이라면 그 제안서는 역량의 반도 표현을 못 하고 있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이 아니었다. 회사 이사님도 이 제안서를 보시더니 “아니 A업체 제안서는 왜 그래? 안 되겠는데?” 라고 한마디 하신다. 


   제안서 평가 당일, 나 말고도 여러 명의 외부 심사위원들이 제안 발표를 듣고 제안서를 평가하는 날이다. A 업체의 제안 발표 순서. 부실해 보이는 제안서와는 달리 발표자는 발표를 잘 하셨고 질의응답도 잘 마쳤다. 그럼 과연 결과는? 제안서도 보기 좋게 만들고 발표도 잘 한 B 업체에게 1등이 돌아갔다. A 업체의 순위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렇게 나는 B 업체와 작년 한 해 홍보마케팅 과업을 진행 했는데 B 업체가 잘 하는 부분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 하는 부분도 있어 고민하다 올 해 초 A 업체에 이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ooo팀장님. 작년에 이런 이런 부분 때문에 제안서가 탈락되어 아쉽게 같이 일을 못 했네요. 올 해 H 자동차 회사와의 협력 마케팅을 진행하고 싶은데 이 부분을 담당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리고 하루 이틀 뒤 답변이 도착했다. ‘당시 제안을 했던 ooo 팀장은 퇴사했고 저는 A본부장입니다. 저희도 그 때 일 할 기회를 놓쳐 아쉽네요. 말씀하신 내용 H사와 협의하였는데 진행 가능합니다. 그런데 제안서 제출 없이 바로 계약해서 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라는 내용의 답변이었다. H 회사는 많은 회사들이 같이 마케팅 하자고 러브콜을 보내는 곳이어서 과연 우리와의 협력 마케팅이 가능 할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선뜻 가능하다 하니 한껏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A 업체의 역량을 높게 평가한 게 (제안서를 보기 전...)실수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H사와의 협력마케팅을 논의하는 사이 A 본부장님은 회사를 나와 본인의 회사를 차리시며 A 대표님이 되셨고 나는 대표님 회사가 제안서 제출 없이 우리와 계약을 맺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H사와의 협력마케팅이 흥미진진하게 추진되고 있는 요즘 A대표님을 보며 내가 찾아 헤매던 홍보마케팅의 고수를 드디어 찾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A 대표님의 전문성에 하루하루 감탄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작년의 제안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B업체가 아닌 A업체가 홍보마케팅 대행사로 뽑혔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작년 한 해 이루었던 성과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인간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하지 않은 선택에 대해 아쉬워하는 다소 미련한 습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정말 과거를 되돌려 실험해보고 싶은 선택이다.   


   그리고 제안서와 관련된 일련의 일들을 상기해보며 제안서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외양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마주하게 된다. 젊은 시절 소개팅을 할 때 그 사람을 또 볼지 말지는 사실 그 사람의 내면이 아닌 외양이 더 큰 영향을 주지 않는가?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듣고 보니 이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고 정말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종종 제안서에 속지 말라는 말을 주위에서 듣는다. 그런데 어떻게? 나에게 눈이 달린 이상 못생긴 떡보다는 보기 좋은 떡을 먹고 싶은 건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래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라는 제목의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모두 알 것이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구절이지만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제안서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내면까지 간파하며 오래 봐 줄 사람이 없다. 짧은 시간 평가 받고 운명이 결정 나 버린다. 그래서 결국 제안서만큼은 예쁘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야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도형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색깔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며 제안서를 작성한다. 적어도 제안서의 본질이 외양 때문에 폄하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외모지상주의자는 아니다. (우리 남편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하지만 난 오늘도 열심히 화장을 하고 옷을 갖춰 입는다. 나의 역량이 나의 겉모습 때문에 폄하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화장을 하지 않으면 어디 아프냐는 말을 듣는 게 싫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뉴욕과 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