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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삶의 심리학 mind Jun 16. 2020

난임 여성들에게 보내는 글 (1)

권정혜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신은 개인의 선택이며 누군가는 비출산을, 누군가는 출산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난임을 경험하고 있는 분들 또한 많습니다. 난임으로 인한 불안과 슬픔으로 잠시 멈춰 서 있는 분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글입니다.


난임, 누군가에게는 참 지난하고 지독한 스트레스


난임은 난임 여성의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난임 여성의 63% 정도는 이혼의 스트레스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난임 치료를 인생의 가장 큰 위기로 경험합니다. 한국인 평균의 우울감도 상당하겠으나 난임 여성의 우울감은 일반적인 한국인과 비교할 때 4배가 넘습니다. 그 우울감의 길이도 길어, 보조생식 시술 후 임신에 실패할 경우 평균 18개월간 우울감과 불안감이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치료과정이 길어지거나 임신 실패로 그 시도가 끝났을 경우 스트레스 수준은 더욱 높아집니다. 임신 이외의 목표나 요구는 뒤로 한 채 오로지 임신에 몰두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난임 여성들은 자녀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경험하면서, 마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가진 듯 파국적 고통으로 인식하기도 하고, 평범한 행복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과 느낌으로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난임클리닉에서 만난 정희 씨는 마음이 두려움과 공포로 꽉 찬 것 같다고 했습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걱정을 잊으려고 퇴근 후 운동과 모임을 다니면서 바쁘게 지내는데도 밤에 누우면 원하지 않는 생각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몰려온다고 합니다. 주로 임신, 아기에 대한 생각입니다.


“이번에도 안 되면 어떡하지? 아기가 없는 삶, 남편과 둘이 사는 삶이 과연 이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새벽까지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어요. 직장 다니면서 ‘내가 병원 가야 하니까 이 일은 다음에 할게요’라든지 급하게 잡힌 미팅을 ‘제가 병원을 가야 해서 못 하겠어요.’라고 할 수 없잖아요. 업무에 마음이 잡히지 않고 집중도 안 돼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수도 있겠다. 처음 2년 동안은 ‘안 되면 또 하면 되지’라는 생각 때문에 괜찮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늘 불안해요. 시술 전에는 아이가 없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아이가 있어야 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 같아요.”


난임 여성의 불안


불안은 앞으로 닥칠 문제나 위험에 대한 감정 반응입니다. 느닷없이 닥칠 어려움을 미리 예상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 상태입니다. 즉, 어려움이 실제로 닥치기도 전에 불안을 먼저 느끼게 되고 두려움의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기도 전에 긴장을 먼저 느낍니다.


불안은 위험에 처해 있고 위협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지각할 때 생겨납니다. 그 위험이나 위협은 신체적인 것일 수 있고 심리적, 또는 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난임은 이 세 가지 위협 모두를 받는 불안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신체적 위협은 난포를 키우기 위한 호르몬 주사, 배주사, 난자 채취를 위한 시술, 자궁과 관련된 각종 시술 과정에서 일어나며, 심리적 위협은 시술 실패에서 오는 좌절감, 시술 결과에 대한 불안감, 대인관계에서 오는 서운함, 분노감, 수치감 등을 통해 나타납니다. 사회적 위협은 ‘자녀 없는 가정’을 미완성의 외로운 가정이라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에서 경험될 수 있습니다.


정희 씨는 매번 생리 기간이 다가올수록 몸의 반응에 스스로 민감하게 되고 마치 시험 보기 직전처럼 가슴이 조여 오고 긴장되었다고 합니다. 불안이 높으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을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라 예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이러다가 숨을 못 쉬게 되면 어떡하지? 불안 때문에 아기를 못 가지게 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으로 밤에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생각의 습관은 그대로 뇌에 각인되기 때문에 단순히 걱정을 많이 하는 습관도 점차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이 클수록 스트레스 호르몬도 더 많이 분비됩니다.


불안하면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좋은 소식을 보거나 듣기보다는 누군가의 임신 실패 소식이나 어려움을 보면서 걱정을 한 가득 안고 오기도 합니다. ‘나도 저 사람처럼 저렇게 실패하면 어떡하지?’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두통이 생기고 긴장 때문에 목과 등의 근육들이 조여 오고 피로가 쌓이게 됩니다. 불안이 몸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들입니다. 만약 습관적으로 두통을 앓는다면 그것은 신체에 이상 반응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즉 너무 긴장하고 걱정이 많아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쌓인 상태를 말합니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호흡하기


이렇게 불안이 자신을 옥죄어 올 때, 복식호흡법이나 명상훈련을 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복식 호흡법은 (쉽게 말하자면) 천천히 호흡하는 방법입니다. 복식 호흡은 근육의 이완을 돕고 뇌의 신경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서 통증이나 스트레스를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복식 호흡법은 하루에 두 번, 10분 이상 꾸준히 하여 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켜서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긴장된 상태를 평안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복식 호흡을 같이 해 볼까요? 처음에는 조용한 곳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한 손은 가슴 위에 한 손은 배 위에 놓고 가볍게 호흡을 시작합니다. 숨을 들이쉴 때는 배가 부풀고 숨을 내쉴 때는 바람을 빼듯 배가 들어갑니다.


한 손은 가슴 위에 다른 손은 배 위에 올려놓습니다. 아래쪽 손의 새끼손가락이 배꼽 위 3cm 정도 위치하게 하십시오. 이 호흡을 정확하게 한다면 가슴 쪽 손은 거의 움직이지 않아야 합니다. 들숨과 날숨으로 배 위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숨을 들이쉬면서 1,2,3을 세고 숨을 내쉬면서 1,2,3을 셉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몇 분 동안 호흡이 안정될 때까지 계속하는데 충분히 연습이 되었으면 숫자 대신에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단어, 예를 들어 ‘편안하다’로 바꾸어 호흡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복식 호흡은 긴장을 완화시키고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때 무엇보다 인터넷 사용 시간을 줄이고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임신 블로그나 카페에서의 지나친 활동은 불안감, 우울감 등을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가상공간 속 소통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 소리에 집중해 보세요. 자기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부정적인 녹음기를 끄고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마음의 상태를 체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현재 불안한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우리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예능이나 뉴스에서 아이 관련된 이야기를 볼 때마다 많이 힘들어요. 애 없는 게 부럽다는 이야기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아요'
불안한 세기말을 살았던 구스타프 클림프는 임신의 불안과 희망을 이렇게 그려냈다. Gustav Klimt (1862–1918), 'Hope II', 1907 - 1908, Oil.

마음의 소리를 듣기


'내가 불안하구나! 내 마음이 현재 힘들다고 말하는구나!’

불안을 부인하거나 없애려고 노력하기보다 인정해주세요. 그리고 나에게 기쁨과 사랑을 가져다준 사람들과 상황들을 떠올려봅시다. 과거에 일어났던 충격적이고 부정적인 사건들에 집중하기보다 좋은 일들을 기억하면서 감사와 고마움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집중해서 질문해봅시다.


‘내 마음이 진정으로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 왜 그렇게 느끼는가? 진정으로 기대하는 좋은 일은 무엇인가?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가?’


잠시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지금 내가 경험하는 불안은 실제 상황보다 더 과할 수 있고 오류 투성이일 수도 있습니다. 난임과 자신의 삶을 조금은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난임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불행하다고 여기고 현재의 삶을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 채울 것인가? 아니면 난임으로 물론 힘들지만 내 삶에 여전히 기쁨과 행복이 존재함을 감사할 것인가?


사실 정희 씨는 두통과 불안감이 심했습니다. 두통약을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혹시나 임신이 되지 않았을까? 기다리는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먹지 못했습니다. 늘 자기보다 아이가 먼저였죠. 사실 정희 씨는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죠. 자기만을 위해 균형 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잘 되지 않았고 남편이 늦는 날에는 혼자 간단하게 때우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증상이 계속되면서 드디어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내 마음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왜 내가 조급해하고 있는지, 마음이 진정으로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면서 ‘자신을 챙기기’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잠시 휴게소를 들러서 기름을 보충하고 차 한 잔의 여유를 갖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그러한 휴식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기를 갖기 위해 의무적으로 먹거나 식단을 과도하게 신경 쓰기보다는 정성 들여서 음식을 준비하고 자신에게 대접하듯 식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오기도 하지만 그것을 없애려고 노력하기보다 ‘내가 다시 불안하구나’라고 느끼면서 자신을 받아들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문화센터 다도 강좌에 등록을 했습니다. 늘 병원 시간에 쫓기고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중간에 그만두어야 할지 몰라서 시작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죠.


정희 씨는 얼굴빛이 바뀌고 화색이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불안해서 손을 만지작거리지도 않고 편안하게 차를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긴장감에서 벗어나 편안해졌지요. 정희 씨는 생리 기간을 자신도 모르게 잊고 지나갔습니다. 며칠 후 정희 씨에게 찾아온 것은, 두 줄의 임신 소식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화분에 씨앗을 심고 매일 들여다본다고 해서 더 빨리 싹이 나지 않는 것처럼 햇빛과 적절한 영양분, 그리고 물을 공급받을 때 그 시기에 딱 맞게 싹이 타오르지요. 물론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닐 수 있어요. 또 그때를 알 수 없어서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희망은 어느 순간에 선물처럼 찾아옵니다. mind


권정혜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 임상심리 Ph.D.

우리나라 최초의 난임 전문 상담센터인 인구보건복지협회 난임상담센터에서 일한 세 명의 상담자(이수향, 최민정, 김은량)와 자문심리학자였던 임상심리전문가 권정혜 고려대 교수는 난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할 때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난임은 절대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인생의 복병일 수 있지만 때로 나를 찾아가고 더 친밀한 부부관계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이 여정을 함께 한 경험이 귀하고 보람 있었던 만큼 더 많은 분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같이 씨름하고 길을 찾아간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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