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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Nov 04. 2019

미안해요, 고기반찬을 좋아해요. PART 2

동물보호단체에 입사한 이후로 나는

제법 오랜 시간 동안 고기를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정확히 말하면,  

눈에 보이는 고깃덩어리를 먹지 않으려고 했다.      


고기를 펄펄 끓인 육수로 맛을 낸 요리를 먹을 때마다  


이 음식엔 '큼지막한 고기'가 들어있지 않으므로

'나는 지금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다'라며

눈 가리고 아옹을 했으니 말이다.     


온전히 나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식생활이 통제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몇 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자아냈다.     


우선, 육고기를 먹지 않는 만큼

많은 양의 해산물을 소비했다.     


각종 생선과 갑각류, 조개류 등을

인정사정없이 먹으면서

소와 돼지를 소비하는 것보다

연어와 쭈꾸미를 열렬히 소비하는 것이

분명 더 나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었다.     


때로는 '콩'으로 만들었다는 돈까스나 불고기 따위의

고기 대용 식품을 찾아다니며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기도 했다.     


27년 동안이나 고기를 먹어온 내게

고기와 비슷하게 만들어졌다는 식품들은

스펀지를 씹는 느낌밖에 주지 못 했다.     


자발적이지 않았던 나의 채식 도전기는

당연히 만족스럽지 않은 경험들로 채워졌다.   



                            

해산물을 먹는 일이 '더 나은' 일일까?




식육 생산과 소비 이데올로기를 연구해 온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Melanie Joy)는

'맛'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은 대부분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특히


우리가 동물성 식품을 먹고 '맛있다.'라고 느끼는 것은

육식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의 상징적인 기호일 뿐이라고 말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것은 '늘 그렇게 해 온 자연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이렇게 아무런 의심 없는 자연스러운 행위 근저에는

보이지 않는 '신념체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이것을 육식주의(carnism)라 정의했다.   


그러나 이미 고기 맛에 잔뜩 길 들여진 나에게

나의 입맛 또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은

큰 의미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

내가 고기를 멀리하고자 노력했던 정확한 이유는


동물보호단체에서 일을 하며

언제라도 의심받을 수 있는 '진정성'에 대한 자기 검열이자 외부의 비난에 대응할 논리를 쌓아놓기 위함이었다.


나는 동물보호를 업(業)으로 하는

'활동가'였기 때문에


당연히 고기 섭취를 중단해야 한다는

타인의 신념에 아무 의식 없이 따라갔을 뿐


충분한 고민과 결심으로 스스로의 행동을 만들어 낸 쪽이 아니었다.     


내가 해야만 하는 행위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반드시 '지키겠다'는 약속과 의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채식은

늘 어려운 숙제 같은 일이었다.     


고기 한 점 없는 식탁을 꾸리는 일은

언제나 만족스럽지 않았고

의도치 않게 고기를 먹게 되는 날에는

스스로 죄지은 자가 되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변명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진정 염려스러웠던 것은

살아있는 동물들의 열악한 사육 환경이 아니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 중에는


현대사회의 가축들이 놓여있는 비윤리적이고

열악한 사육환경을 알게 된 뒤로


고기가 전혀 맛있어 보이지도

고기를 먹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고기 냄새가 맛있게 느껴졌고

나의 식습관을 바꾸는 일은 계속 어려웠다.   



입맛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거라고?



그로부터 2년 뒤.      


동물보호단체를 퇴사한 후

'한국의 동물보호운동'을 주제로 한

석사논문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다시는 동물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동물운동을 업(業)으로 삼을 만한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헐적으로 느꼈던 죄책감을 완전히 덜어내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살아가던 중


동물보호에 관심이 많은 국회의원의 SNS에서

함께 일할 보좌진을 공개 채용한다는 글을 읽었다.


그는 국회에 입성하기 전부터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나 역시 언론 매체를 통해 그를 자주 접했고

한 번쯤은 꼭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동물보호뿐 아니라 아동,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정책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는 국회의원과 함께 일하는 것은 내가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선택했던 이유와 가치에도 부합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동물보호단체에 지원했을 때와는 달랐다.


국회라는 대한민국의 입법 기관에서

동물보호법을 개정하거나

동물복지를 위한 정책을 만들고 싶었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오히려 동물이 아닌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접하며

람들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단순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총 세 번의 테스트를 통과한 나는


운 좋게 국회의원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상태로 입사한 후

내가 처음으로 담당하게 된 업무는 '국회 토론회'였다. 


이미 여러 단체와 다른 의원실의 공동주최가

확실했던 순간이었다.


선임  비서관이 내게 물었다.



"OO에서 토론회 하자던데 읽어보고 관심 있으면 의원님께 보고 드려 보세요."



보통 국회의원실에는

해당 의원이 소속된 상임위원회와 관련한

각종 토론회의 공동주최 요청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를 담당할 보좌진이 의지를 가지고

의원에게 참여를 제안하는 경우가 다.   


의원실 주최의 토론회가 확정이 되면

담당 보좌진은 장소 대관, 축사 작성, 보도자료 배포 등을 맡는다.


그리고 만약 의원이 토론회에서 직접 발표를 하는 경우에는 발제문과 PPT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


보통 토론회 개최를 제안하는 민간단체에서

참고할 한 논문 등 여러 자료를 의원실에 전달하지만


당연하게도 토론회를 담당하는 보좌진이 직접

해당 이슈에 대해 공부를 하것이

보다 의미 있는 글을 작성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내가 담당한 첫 국회 토론회의 주제는

공교롭게도 '가축 살처분의 실태'였다.


동물단체에서 일할 때에는

할 수만 있다면 외면하고 도망쳐버린 이슈에 대해

나는 글을 써야 했다.






 

<미안해요, 고기반찬을  좋아해요, 마지막 이야기>에서 계속.









** 작가의 한 마디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작가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업로드가 많이 늦었습니다.


앞으로는 가능한 자주 올리도록 노력할 테니

재밌게 읽어주시고 다양한 의견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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