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u Jul 18. 2019

물어요, 문다고요!



나는 두 마리 개의 보호자다.


첫 째는 포로리, 올해 13살이  시츄다.


포로리는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에 낯을 가린다.
특히, 처음 만나는 ‘개’를 유난히 싫어한다.

산책길에 만나는 다른 견주들은 반갑다고 다가오지만
포로리는 최대한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려 한다.


포로리는 고독한 흙파기 좋아한다.


녀석은 구의 방해도 없는 곳에서 초당 5회의 앞발 곡괭이질을 하며 흙을 파낸다. 그리고는 온몸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냄새를 묻힌다. 물기 가득 머금은 흙에 하얀 주둥이가 새까매지도록 얼굴을 묻고 땅의 기운을 흡수하기도 한다.


집에 돌아가 목욕을 시켜줘야 하는 나로선 마냥 달가운 모습은 아니지만 포로리가 가장 행복해 보이는 순간인 것은 확실하.


둘째는 보노, 올해로 5살이 된 비숑이다.


보노는 포로리와 달리 살아 움직이는 모든  관심 사랑을 준다. 처음  사람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워하고, 화면에 나오는 동물들을 봐도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 애달파한다.


보노의 산책은 포로리보다 열 배는 더 힘이 든다. 그의 넘치는 힘과 애정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늘 긴장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보노의 산책이 끝나면 나의 체중은 어김없이 1kg을 내어준다.




좌) 포로리 / 우) 보노 - 너무 다른 성격의 멍멍이들



포로리가 2살 정도 됐을 때의 일이다.


가족들이 바닥에 상을 펼쳐놓고 백숙을 먹고 있었다.

 냄새를 좋아하는 포로리는 먹이를 노리는 상어처럼

밥상 주위를 맴맴 돌며 군침을 삼켰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도 온 몸으로 포로리를 저지했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녀석의 공격은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아주 잠깐.


포로리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서 볼이 넓은 그릇에 담긴  닭고기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안 돼!!"


삶은 닭의 뼈는 쉽게 부서지고 또 날카로워서 그대로 삼키는 순간 동물의 위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서툴었던 나는 다급해진 마음으로 무작정 손을 뻗었다. 목적을 달성한 포로리가 재빠르게 현장을 떠나려고 했을 때 냉큼 붙잡아 억지로 입을 벌렸다.


아야아


평소에는 얕은 바람이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에도 깜짝 놀랄 만큼 겁이 많던 포로리가 내 손을 ‘아주 사납게’ 물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놀란 마음에 상처 난 손을 거즈로 누르며 포로리를 쳐다봤다.


주인을 물어버린 개는 커다란 눈을 이쪽저쪽으로 돌리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순하디 순한 포로리의 이빨도 내 손에 상처를 낼 수 있을 만큼은 날카롭다는 것을 말이다.




순둥이 포로리



보노는 동글동글한 헤어스타일 덕분에 유난히도 인기가 많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쉬운 만큼 녀석과의 산책길은 늘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전투적인 산책시간이었다.

6살이나 됐을까 싶은 여자아이 한 명이

보노를 발견하고 신이 난 얼굴로 폴짝폴짝 다가왔다.


아이는 우리가 서 있는 근처까지 다가와서는 처럼 생긴 보노 신기한 듯 쳐다봤다.


나는 긴장했다.

목줄을 더 꽉 잡았다.

보노가 언제 앞발을 들어 올려 아이의 관심에 화답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10kg이나 되는 중형견이 반갑다고 몸을 일으켜 세우면

몸집이 작은 아이는 쉽게 뒤로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목줄을 잡고 서 있었는데

뒤에서 느릿느릿 걸어오던 아이의 부모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멍멍이가 너무 예쁘네. 그치? 한 번 만져봐.”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보노를 쪽으로 밀착시켰다.


"물 수도 있어요.”


나의 명스러운 말투와 표정에, 그들은 살짝 기분이 상한 얼굴로 돌아섰다.


“멍멍이가 문대. 이리 와.”




백곰인가 비숑인가 - 보노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은 다음 다섯 가지의 견종을 '맹견'으로 정의하고 있다.



1. 도사견과 그 잡종의 개

2. 아메리칸 핏불테리어와 그 잡종의 개

3.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와 그 잡종의 개

4. 스태퍼드셔 불 테리어와 그 잡종의 개

5. 로트와일러와 그 잡종의 개



또한, 법에서 정한 맹견은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개'로 정의하여,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 및 특수학교'에 출입할 수 없고, 3개월령 이상의 맹견을 데리고 산책을 할 경우  의무적으로 '입마개'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 실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개 물림 사고'

다섯 가지 에 해당하는 '맹견'에 의해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형견서부터 '사납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순둥이 개로 인해서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공포를 느낄 때,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몸이 아프거나 보호해야 할 새끼가 있을 때, 사냥감과 같은 움직이는 물체를 쫓기 위해' 사람을 물 수 있다.


물론 적절한 시기의 강아지올바른 방법을 통해 사회화 교육을 받는다면 사람을 물 가능성은 확연히 낮아지겠지만, 세상에 '물지 않는 개'는 없다는 말이다. 개는 그럴만한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물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보노의 산책시간





나는 일터에서 하루에도 몇십 건씩 동물과 관련된 사안을 마주한다. 요즘 나의 업무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은 반려인과  비(非) 반려인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일이다.


'우리 개는 착하고 순하다'는 말을 반복하사람들

'더 많은 개들이 입마개를 하고 다녔으면 좋겠다' 말하는 사람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노라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래 싸움에 허리 디스크 터지게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생각할 때 분명한 사실이거 하나 뿐이.


동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애초에 사람들의 문제라는 것.


그 개가 얼마나 사나운 종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개가 사람을 물었던 있었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개가 입마개를 했는지 안 했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반려견 보호자로서의 '자격미달' 문제이고,

타인의 동물을 함부로 대하 '예의 없음'의 문제이며,  

무조건 입장이 옳다고만 우기 사람들의 '이기적인 태도' 문제일 뿐.


언제나, 동물은 잘못이 없다.



   


포로리의 산책시간





반려인들이 더 이상 '우리 개는 순하고, 착하고, 어쩌고, 그러니까 괜찮아'라는 말을 하지 않고, 견주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할 때.


비(非) 반려인들이 다른 사람의 동물을 '허락 없이 만지거나, 함부로 다가가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 될 때.


그 때야 비로소 개로 인해 발생하는 물림 사고가 줄어들지 않을까?


몇몇 종을 맹견으로 규정하고 입마개  씌우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당신의 개가 '착하고 순하'는 사실 역시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을뿐더러 당신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딱히 중요한 일도 아니다.


반려동물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사회화 교육을 받듯이, 사람들도 나와 다른 사람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다같이 살아가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규범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참고자료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1조의 2

동물보호법 제13조의 2

"Why Do Dogs Bite", American Veterinary Medical Association.

작가의 이전글 개는 좋아하지만 악어는 무서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