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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연 Oct 25. 2024

서른-1

서른이 오기 전에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다. 무언가를 생각한다면 역시 글이었다. 열아홉부터 끌고 오던 것. 내내 열망해왔던 것. 그건 글이었다. 나는 운 좋게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이십 대 초반과 중반을 보냈다. 그곳에서는 너무나 많은 비교 대상이 있었고, 그럼에도 내 것을 잘 만들어나가야 했었고, 미래도 생각해야 했다. 모든 대학이 다 그렇겠지만. 노력으로 가닿을 수 없는 지점이 분명하게 눈에 보였기 때문에 그 안에서 더 미쳐갔던 것 같다. 칭찬 한마디 한마디가 귀했고, 주변의 평가가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나는 처음에는 소설 전공으로 들어갔으나, 학기가 거듭되며 소설은 감도 잡지 못했고, 그나마 시에서 조금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 수업에서만 칭찬을 들었다. 소설을 조금은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며 들어왔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소설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때는 문장의 정확성보다는, 개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던 때라 문장도 엉망이었다. 구조가 뭔지, 인물의 내면이 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시점에 대한 고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생각할 줄 몰랐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무엇을 어떻게 쌓아올려가야 하는지 모른 상태로 내 개성이 담긴, 독특한, 낯선 소설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나는 소설이 아니구나. 시를 써야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소설을 놓기 시작했다. 소설인지, 시인지 하나를 정해야 할 것 같았다. 둘 다 쓰는 건 나한테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소설을 썼다 시를 쓰는 일은, 몸을 바꾸는 일과 동일했다. 그래서 학사학위 과정인 1년의 시간 동안 시를 더 많이 읽고 시를 더 많이 썼었다. (하지만 그때도 소설을 잘 쓰고 싶었다.)

그렇게 학사학위까지 마치고 친구와 떠난 유럽여행에서 나는 어쩌면 소설을 쓰고 싶은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스스로도 놀란 깨달음이었다.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봤던, 미술로만 봤던 풍경을 눈앞에 매일 마주하면서, 오랜 건축물과 작품을 누비면서 과거의 시간을 그리게 되었다. 사람들에 대해, 서사에 대해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뭉뚱그려지는 막연한 세계를 풀어놓고 싶었다. 그건 시의 언어가 아니라 소설의 언어였다. 인물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서사와 장소가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소설이어야 했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와 취업을 준비하고, 입사하여 회사 일에 매달리는 사이 소설을 완성한 일은 1번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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