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나비 Aug 04. 2024

미움에 매달린 삶

아귀가 잘 맞았다

그가 대체 왜 그러는 지는 사실 잘 알 수가 없다.


내가 아이를 보내고 있는 어린이집은 부모들이 참여해서 함께 만들어 가는 어린이집이다. 그래서 부모들과의 교류가 활발하다. 같은 연령을 보내고 있는 부모들과는 특히 더 가까워서 같이 여행을 가기도 하고 가까운 곳에 놀러가기도 한다. 


그날도 같은 연령 아이들과 엄마 아빠들이 놀러간 날이었다. 우리 아이와 아이의 친구가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일이 발생했고 내가 발견해서 몇 차례 혼을 내었으나 내가 보지 않는 중에 또 그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 다른 아이의 엄마는 갑자기 울먹이면서 집에 가려고 했고 내가 다른 엄마들에게도 이야기를 해서 우리 아이와 아이의 친구는 다시 혼이 나고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 일로 엄마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 이제 서로 어려운 점은 감추지 말고 이야기하고 아이들끼리의 갈등도 같이 이야기하고 풀자고 합의했다. 워낙 어린이집에서도 부모들끼리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이 일을 남편에게 이야기하는 중에 실은 그 괴롭힘 당했던 아이가 먼저 우리 아이를 괴롭힌 무리 속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가 괴롭힘 당하기 전에, 우리 아이가 그 아이의 친구들에게 먼저 괴롭힘을 당했던 것이었다. 여럿이서 '우리 공간에 오지 마'라고 하면서 우리 아이를 따돌린 것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자 좀 억울한 마음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엄마들끼리 모여서 '앞으로 우리 다 가리지 말고 서로 이야기하자'는 합의가 없었다면 나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냥 사과만 하고 그 사건을 넘겼을 것이었다.


나는 그 엄마에게 가서, 실은 우리 아이가 당신의 아이를 괴롭히기 전에 이러이러한 상황이 있었음을 말해 주었다. 괴롭힘이라는 자극적인 단어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그 상황을 전달했고 최대한 그 아이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저 무리에 함께 있었음을 강조했다. 그런데 그 엄마가 대뜸, '그럼 00이(우리 아이)가 잘못이 없다는 건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며 나는 우리 아이가 당연히 잘못한 거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찜찜함을 견디지 못해서 나는 메시지를 보냈다. 아까 한 말에 대한 사과를 전하고 아이를 좀 더 잘 단속하고 교육시키겠다. 기분 나빴다면 정말 죄송하다고 서로 불편한 것이 있다면 이야기하고 풀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담아 보냈다. 원래는 전화로 했을 것인데 시간이 늦어서 어쩔 수 없이 메시지로 보냈다. 그랬더니 한 시간 후에 '저도 죄송합니다'라는 답이 왔다. 나는 잘 풀었구나 생각하고 안심했다. 메시지 내용은 딱딱했으니 사과를 했으니 시간이 흐르면 풀리리라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두 달이 넘게 내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있다. 노골적으로 나를 미워하며 내가 인사를 해도 겨우 답만 하고, 카톡을 보내면 아예 답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다른 엄마들에게는 더없이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데, 그래도 다른 엄마들에게 이 상황을 말하고 공유하는 것은 차마 할 짓이 아니라서 그냥 속앓이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 누구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사람이 이상한 거야, 무시해.' 하지만 무시가 안 되니 그게 참 힘든 거다.


그는 갈등을 풀 생각도 없고, 나와 소통할 생각도 없다. 그저 기분이 나쁘니 마음을 닫아 버리고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이다. 잘못은 분명 그에게 있는데, 나는 '내가 이랬다면 그가 안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가 아무래도 그 말을 한 것은 잘못이었을까'를 생각하면서 구렁텅이에 스스로를 밀어넣고 있다. 이것은, 그가 건강하지 못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건강하지 못한 내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달 동안의 내면 훈련으로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인정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을 때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무조건 미안하다고 하고 맞춰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를 비난하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를 대할 때마다 자꾸만 얼마 있지도 않은 자존감이 깎이는 것 같고 이제는 나도 그를 그가 나를 미워하는 것 못지 않게 미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그에게 휘둘리는 것 같아 싫다.


그가 나를 미워하는 것과 상관 없이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잘못은 없고,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으니 더는 죄책감 느끼지 않고 그저 이 사건에서 놓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시리즈도 쓰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글을 쓴다고 해서 이 마음이 얼른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 버티고 버티면, 나도 이 미움을 이기고 행복해질 수 있는 멘탈을 가지게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미움을 받는 것의 유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