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지 않던 것까지 좋아하게 만드는 이름, 아이
엄마는 어느 계절이 제일 좋아?
엄마는 봄이 좋아. 찹쌀이는 어느 계절이 제일 좋아?
나는 겨울. 그치만 이제 안 좋아하려고.
왜?
엄마가 이렇게 추위를 타니까, 겨울이 빨리 가라고 기도해야겠어.
에이~그러면 안 되지. 엄마는 찹쌀이가 좋아해서 이제는 겨울 좋아하는걸?
엄마는 좋아하지 않던 것도 좋아할 만큼 나를 사랑하는구나. 너무 고마운 일이야.
한참이나 말도 없이 책을 보던 아이가 문득, 엄마는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다. 봄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나니 종알종알 봄의 좋은 점에 대해 잔뜩 이야기한다. 봄은 꽃이 피어 좋고, 여름은 물놀이를 해서 좋고, 가을에는 알록달록한 나무가 좋고, 겨울에는 눈이 와서 좋다며 1년 중 360일쯤이 좋은 아이에게 문득, 너는 어느 계절이 좋냐고 물으니 뜻밖의 대답을 한다. “나는 겨울. 그렇지만 이젠 안 좋아하려고”.
이제 겨우 8살이 된 (그마저도 6월이면 다시 두 살을 빼앗길) 아이가 이제부터 겨울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데 이상해 이유를 물으니 엄마가 이렇게 추위를 타니까, 겨울이 빨리 가라고 기도를 해야 할 것 같단다. 하긴, 유달리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집 앞의 유치원에 데려다주면서도 목도리, 모자, 장갑- 참으로 중무장을 한다. 물론 아이에게도 똑같은 갑옷을 입히지만 정작 아이는 추위를 덜 타 살짝 더워하는 날이 많았는데 자신의 불편함이나 눈이 오는 즐거움보다 추위를 타는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이라니, 문득 코끝이 찡하다. 눈물이 쏙 빠지기 전에 얼른 너로 인해 겨울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대답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결국 내 눈에서 눈물방울을 빼내고야 만다. “엄마는 좋아하지 않던 것도 좋아할 만큼 나를 사랑하는구나. 정말 고마운 일이야.”
그래, 맞다. 생각해보니 분명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무척이나 분명했다. 무채색이 좋아 온 집이 하얗고 까만색이었는데 어느새 우리 집은 알록달록 어린이집 같아져 있고, 고기 굽는 냄새를 싫어하는 내가 아이를 골고루 먹이기 위해 생선부터 소와 돼지까지 번갈아 굽고 있다. 그뿐인가. 겨울이면 아예 건물 밖을 나가지 않던 내가 눈썰매장도 가고, 벽에 못질한 번 하지 않던 내가 아이의 작품(!)을 테이프로 죽죽 붙인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그게 전혀 싫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행복하다. 알록달록 꽂혀있는 아이의 그림책과 내 눈에는 무질서지만 자기 딴에는 질서 있게 정리한 장난감들이 사랑스럽다. 정작 내 반찬은 생선 뼈에 붙은 살이 전부가 되더라도 아이 입에 들어가는 밥만 봐도 그렇게 배가 부르다. 눈썰매를 타고 깔깔거리는 빨간 볼의 아이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않으면 무엇인지 모르기도 할 그림들이 그렇게 예쁘고 자랑스럽다. 정말 아이의 말대로 나는, 좋아하지 않던 것들을 좋아할 만큼 아이를 사랑하나 보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문득 겨울이라서 아이와 집에서 더 붙어있을 수 있고, 겨울이라서 서로의 온기가 더 소중할 수 있음이 감사해진다. 아이가 없었으면, 누군가를 사랑해서 그 사람의 볼에 묻은 밥풀까지 사랑스러운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 늘 생각하는 거지만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노력하게 한다.
내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겨울이 이렇게나 좋아지다니- 사랑은 정말 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