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소설] 물 만난 물고기

by 암시랑

그를 만났던 건 TV 속 앳된 얼굴로 더 앳된 여동생과 기타를 둥둥거리며 밝은 모습으로 서글픈 노래 한 소절 들려준 후 인터뷰하는 장면이었다. 정확한 인터뷰 내용이었다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 "선교사이신 부모님을 따라갔던 몽골에서 노래를 부르며 놀았어요."라는 대답. 몽골, 자유로움, 노래는 그들의 삶 일부였음을 기억한다.


그랬던 그들은 악동뮤지션이란 이름으로 돌풍을 일으켰고 이 책은 그들의 앨범 '항해'에 대한 스토리를 담은 소설이다. 그리고 찬혁의 작품이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글을 쓴다는 게 요즘 내 초미의 관심사이다 보니 그저 노래를 만드는 일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뮤지션의 소설 넘보기 수준일 것이라는 부러움을 앞세워 대놓고 질투를 했다.


"손수건을 든 그녀의 손에서 토스트보다 더 토스트 같은 포근한 향이 올라왔다." p28


사연이야 어쨌건, 시니컬해 보이는 양이 씨의 토스트를 보고 이런 미사여구를 만들어 내다니. 이런 그의 재능이 나를 주책없는 속물로 만들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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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와 선아의 대화에서, 그러니까 해야가 얼룩말을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싶다는 소원에 선아의 백만랩을 지닌 공감 능력에 뜬금없이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라던 그 초원이가 떠올랐다.


앞서 걷는 얼룩무늬 치마를 입은 여성의 엉덩이에서 아프리카의 너른 초원을 자유롭게 달리는 얼룩말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느낄 수 있었던 초원이의 순백의 능력이 어쩌면 해야와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찬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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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런 장소를 혼자 지나쳤을 때는 단지 어둡고 조용한 곳이라고만 생각했어. 지금 이 바람 소리를 들어봐. 난 너를 만나고 모든 게 음악이야." p53


누군가를 만나고, 그것도 인생의 방향이, 항로가 보이지도 결정되지도 않은 지점에서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끝도 없이 잠기는 침잠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던 선아는 음악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막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 해야를 만나고 다시 항로를 발견한다. 그건 그저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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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나도 네 나이로 돌아가고 싶구나. 그럼 모든 시작했을 텐데. 너도 현실을 경험하면 알게 될 거야. 꿈은 서커스에서 쓰는 붉은색 커튼과 같다는걸. 화려하고 잘 찢어지지도 않지. 하지만 현실이라는 창문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것을 옆으로 걷어야 하는 날이 오고야 만단다. 밤이 되면 다시 그것으로 창문을 가리고, 지쳐 울 든 꿈을 꾸 듯 맘대로 해도 돼. 하지만 아침이 오면 다시 걷어 내는 거야. 우린 꿈보다 하루를 살아야 하니까. 지금 나에겐 비둘기, 자전거 그리고 모자밖에 없어. 그리고 내가 준 돈으로 햄버거를 먹을 예정이지. 고맙구나." p106


다른 그 어떤 것보다 무거운 '이기적인 마음'이 타이어같이 생겼다는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선아의 음악 여행 아니 살짝 정확히는 예술가의 길을 찾는 여행은 어린 왕자의 여행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 또 살짝 정확히는 항해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항로를 끊임없이 찾고 고민하고 만들어 가는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현오 형과 나누는 대화는 지금 그가 너무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소회가 아닐까 싶고 예술이 아닌 대중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슬픈 일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그의 소속사와 관계된 항해일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그의 진지한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엿보여 묘한 바다의 울렁임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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