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고려해야 할 사안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더욱 그렇다.
평소에 여행을 좋아하기에 기회가 주어지면 미련 없이 여행을 선택했다. 요번 여행도 그렇다. 이것저것 쟀더라면 갈 수 없을 이유들이 비온 후 죽순처럼 마구잡이로 삐죽삐죽 솟아났으리라.
그래서 단단히 마음을 먹었고 가고 싶었던 나라들을 이 번 기회에 가기로 결정했다. 정원의 본 고장 영국과 파밀리아 사그라다 성당으로 대표되는 가우디 건축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스페인을 가기로 했다.
기회는 언제나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유럽에 폭염이 심하다는 이야기에 걱정이 되는 바도 없지 않았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한 일정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딸아이가 함께 갈 수 있어서 결정하기가쉬웠다. 딸이 여행 일정전부를 전담해서 짰다. 티켓팅부터 숙박에 돌아볼 장소까지 우리 부부는 그저 몸만 가면 되었다.
떠나기 전 기껏 내가 한 일이라곤 어디를 가고 싶냐는 채근에 생각나는 대로 툭툭 정보를 던져 주는 정도일 뿐이었다.
진짜 나의 여행 준비는 샌들과 옷을 사는 일이었다. 신고 있던 샌들이 오래되어 바닥이 닳아 떨어지고 가죽이 헤어져 더 이상 신기가 어려웠다. ABC마트에 들러 할인 중인 상품중에 쿠션이 좋은 것으로 골랐는데 사이즈가 작았다. 다른 샌들은 바닥이 편치 않았다.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는데 출발 하루 전이라 곤란했다. 그래서재고가 있는 베이지색을 골랐는데 신발을 보고는 딸이 여자용 샌들같 단다. 젠더리스 패션이라나 뭐라나....
워낙 덥다고 해서 시원한 남방을 한 두 벌 사려고 갔다가 폭풍 쇼핑을 했다. 숏팬츠 두 장에 상의를 네 장을 샀다. 쇼핑을 좋아해서 아내와 함께 가면 제발 그만 좀 사라고 핀잔을 들었는데 아내 없이 딸과 갔기에 마음껏 질렀다.
돈을 치를 때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살짝 무서웠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이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내에게 살살 눈치 보는 나에게 '무슨 옷을 이렇게 많이 산거냐' 며 한차례 혼나고는 지나갔다. 패션을 좋아하는 아들은 멋지다고 엄지 척이다.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던 아들이 오늘만큼은 예쁘다.
정작 갈 곳을 공부를 하고 가야 했는데 교육 중이던 숲해설가 공부가 막바지여서 그럴 수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시간을 들이지 못해 걱정이 되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낯선 곳에서 낯선 것과 조우하는 일이니 기쁜 마음으로 출발을 준비한다.
Air China 항공을 이용해서 김포공항을 통해 출발이다. 코로나 시기를 뒤로하고 오랜만에 외유라 기대와 설렘이 있다. 10박 11일의 여정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