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지에서 조금 지루하다 싶을 만큼 기다리다 장거리 비행에 오른다. 꽤 많은 이들이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당연히 영국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기하면서 요크에 사는 영국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우리를 중국인으로 알았는지 해마다 영국으로 중국 유학생들이 오 천 명 이상이 온다는 말을 건넨다.
'"저희는 한국인인데요"
"아이고 미안합니다!"
그네들 눈에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구분이 안 가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중국 땅이니 더욱 그랬으리라.
그분의 이야기처럼 학생들로 보이는 이들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2020년 기준으로 해외로 유학 가는 우리나라의 학생 수가 약 195 천 명인데 그중 52 천 명 정도가 미국으로 간다고 한다. 유감스럽게 영국은 7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결과가 왜그런지 사유가 궁금해졌다.
많은 이들이 외국에서 공부하는 경험은 나라의 힘을 기르는 바탕을 든든히 하는 일이다. 다양한 경험과 배움으로 세계인으로서 넓은 가슴과 시야로 세상을 앞서가는 젊은 한국인들이 쑥쑥 커나가기를 응원한다.
본격적인 12시간 비행이다.
어떤 이들은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것이 고역이라 여행을 망설인다고 한다. 나는 다행히 그 시간도 즐겁게 견딜 수 있다.여행체질이 딱이다.
사전에 좌석을 지정하면서 웃돈을 냈음에도 또 비행기 날개 자리다. 어이가 없었지만 '웃으며 보내야지 뭐, 어쩌랴.' 하며 좋은 쪽으로 마음을 먹는다.
기내
좌석에 앉아 영화를 스캔해 보았다. 볼만한 영화들이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자막이 중국어 밖에 없다. 이런! 히어링은 안 되는데 눈치로 영화를 봐야 하는 답답함이 확 밀려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중국 영화에는 중국어 자막과 함께 영어가 병기되어 있었다. 외국인들은 중국 영화만 보라는 것인지.... 더 아쉬운 것은 불어, 이태리어 서비스는 음성이 제공이 되는 데 한국어는 없다는 것이다. 쳇!
그래도 꿋꿋하게 영화 세 편을 보았다. 물론 영화만 본 것은 아니다. 짬짬이 메모장에 글도 세 편을 썼다. 정원의 쓸모라는 책도 다 읽었다.
앞 좌석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과 7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타고 있었는데 엄청난 민폐를 끼쳤다. 지독한 방귀 테러에 갑자기 좌석을 흔들어 대지를 않나, 심지어 게임을 하면서 괴성까지 질러댄다. 그 아이들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전혀 괘념치 않고 독서 중이고 같이 앉은 엄마도 요지부동이다.
참다가 나도 소리를 질렀다. "Be careful!!!" 즐거운 여행에 인상을 쓰기보다 인내하는 수가 최선이었지만 기분은 좋을 수 없다. 나중에 아내와 게임을 하며흥분해서 스크린을 심하게 눌렀더니 아이들 엄마 좌석이 흔들렸는지 눈으로 째려본다. '아이 무서워라'는 아니고 조심은 했지만 자신들이 끼치는 폐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아 어이가 없었다.
두 번의 기내식
기내식을 두 번을 먹었다.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마지막 식사에는 난생처음 먹은 음식이 나왔다. 커피로 만든 묵처럼 생긴 디저트다. 달콤 쌉쌀한 커피 특유의 맛으로 좀 오묘한 맛이었다.
거의 8 천 킬로미터를 날아서 간다.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지겨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내는 넷플릭스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열혈 시청이고 딸은 야무지게 뜨개질 거리를 준비해서 시간을 보낸다.
동쪽으로 가고 있어 시간이 지나도 차장 밖은 대낮이었다. 몸도 피곤을 느끼는지 졸린다. 자연스럽게 눈을 붙이고 자다 깨다 반복하며 시간을 보낸다.
마침내 시간이 흘러 기내방송을 통해 런던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드디어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이다. 조금 충격적인 사실은 외부 온도가 15도까지 떨어진다는 것이다. 완전 한여름으로 긴 옷은 거의 없는데 이를 어쩐다!
히드로 공항을 들어서니 정말로 춥다! 짐을 찾느라 한 시간이 지나간다. 우리 공항의 효율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숙소는 민박을 택했는데 런던 교외라 사장님이 차로 우리를 데리러 나왔다. 선한 얼굴의 사장을 만나 차에 오르니 비까지 뿌린다. 런던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고 하더니 정말인가 보다. 30분을 담소하며 가는데 평지가 이어지고 수목들이 울창하다. 집들이 보이는데 외국이라는 실감이 났다. 눈에 먼저 띈 특이한 점은 집마다 창문이 엄청 많이 났다는 것이다. 벽면이 온통 창문이다. 나중에 보니 주택뿐 아니라 다른 건물들도 유난히 창이 많았다.
깜깜해진 밤, 열 시에 다소 소박한 숙소에 도착했다. 무엇이든 다 좋을 수는 없는 법, 여행은 낯섦과 조우다. 기대하지 않은 일들을 만나는 것이 묘미다. 닥치고 볼 일이라며 스스로 격려를 하면서 염려보다는 기대에 초점을 맞춘다. '자! 이제 시작이다. 가자! 신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