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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일기

인생은 한바탕 꿈이려니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읽고

by 정석진

우리 옛 고전 구운몽을 읽었다. 한글 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한자로 쓰인 을사본 원전을 번역한 것이다. 완역을 한 까닭인지 분량이 상당했다. 구태의연한 내용일 것 같았지만 꽤 흥미로웠다. 다루는 스케일이 컸다. 문장마다 감성이 넘쳐나고 고루한 듯해도 풍류가 넘치는 표현들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작자는 김만중으로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다. 조정에 출사 하여 강직한 성품으로 직언을 올리다 유배를 가게 되어 쓴 소설이다. 자신의 심신을 위로하고 모친을 위해 썼다고 전해진다.


이 소설은 요즘으로 비유하면 당대의 베스트셀러다. 당대에도 중국에 수출이 되었고 후에 이 소설이 놀랍게도 많은 언어로 번역이 되었다고 하니 우리 고전의 한류라 할만하다. 가까이 있는 것에는 귀함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번 독서를 통해 우리의 옛 소설 구운몽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는다.


내용은 성진이라는 육관대사의 수제자가 세속의 정에 잠시 눈을 파는 것을 벌을 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다분히 불교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만 당시 사상의 조류인 유교, 도교가 함께 섞여있다. 임금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부부간의 도리를 다하는 가치관이 그대로 풍겨난다.


배경이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이란 점도 흥미롭다. 지리적인 배경이 당나라 수도 장안이다. 저자는 당시 학문에 통달한 면모를 유감없이 책에서 발휘하고 있다. 장자로부터 옛 인물들의 고사는 물론 수많은 고전에 담긴 이야기들을 곳곳에 양념처럼 담아낸다. 주인공들이 문재를 뽐내며 짓는 한시도 아주 서정적이고 유려하다.


이 소설이 당시에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그 시절 사람들이 꿈꾸던 모든 것을 주인공이 실현하고 누리는 서사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태어나면 입신양명하여 이름을 드높여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가문을 빛내는 것이 남자의 도리였다. 주인공은 그것을 완벽하게 이루며 이 땅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처럼 부귀공명을 모두 다 얻게 되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양소유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대장부다. 용모에서부터 학문 지략 용기 그리고 사람들을 끄는 인품과 매력을 다 갖추었다. 한마디로 완벽한 남자의 모습이다. 과거에 급제는 물론 나라의 변고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눈부신 업적을 이룬다. 그 과정 중에 만나는 절세가인들과의 인과 사랑은 소설의 뼈대일 뿐 아니라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빼어난 미모는 물론 문장과 글에 뛰어나고 지혜까지 갖추었다. 8명의 처첩들을 거느리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는 설정은 사람들의 로망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고 소설이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는다. 여주인공들은 모든 것을 다 갖춘 재인들이었지만 다음 생에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염원을 여러 번 드러낸다. 그만큼 여자들이 사회적인 제약이 크고 자유롭지 못함을 빗댄 것이다. 그저 현숙한 아내로 남편을 섬기고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여자의 숙명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판타지 문학으로도 손색이 없다. 허황된 꿈일 망정 양소유의 성취와 이룩한 업적 그리고 사랑스러운 여인들과의 기막힌 사랑은 환상 그 자체다. 술법이 펼쳐지며 신선과 용궁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못하는 게 없다. 그야말로 히어로다.


악인이 등장하지 않고도 몰입감을 끌어내는 점도 흥미롭다. 등장인물들은 제 역할에 충실하고 도리를 지킨다. 여인들도 시샘 없이 우애로 뭉쳐 의자매로 한 낭군을 성긴다. 글만으로 역도들을 굴복시키고 전장마다 혁혁한 전공을 세우는 줄거리는 분명 비현실적이다. 그런들 어쩌랴! 어차피 한바탕 꿈이니 이왕 꾸는 꿈, 마음먹은 대로 이루고 누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주인공은 그렇게 완벽한 삶을 살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 꿈같았던 모든 일들이 그저 한 순간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주인공은 마주하고 무상함을 느낀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다. 많은 것을 성취하고 누리고 가져도 떠날 때는 빈 손이다.


우리의 단순하지 않아 보이는 다단한 일생도 성진이 겪은 일장춘몽, 그런 한바탕 꿈지 않을까?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성경 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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